북·중 협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까닭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중국의 동북지방을 둘러보면서 현장에서 느낀 조급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발전을 위해 북·중 협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옌볜 대학에서 만난 한 조선족 출신 교수는 황금평과 나진·선봉 개발계획을 중국이 만들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이 계획의 입안에 자신이 참여했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치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대신한 것처럼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1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동북지방의 주요 도시는 상전벽해를 무색하게 했다. 사실상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계획과 연계된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계획은 2002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동북공정’의 결정판으로 보였다. 역사 지키기로 시작된 동북공정은 서서히 동북진흥전략으로 진화되었다. 2004년 시작된 동북진흥전략은 낙후된 동북지역의 재건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고, 나아가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한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은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세 번의 중국 방문에서 논의의 중점 주제는 후계 체제, 경협, 핵문제 해결 등 방문 때마다 달랐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서울과 도쿄를 거쳐 워싱턴으로 가는 전략을 추구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전략 구도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고 대안으로 베이징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는 전략(協中通美)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중 간에는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정세 변화 속에서 북한은 G2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에 의존하는 생존 전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 협력의 강화라는 명분을 활용해 한반도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월20일 9년 만에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의 하산 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일의 북방 외교가 본격화한 것이다. 북·중 관계의 심화를 지렛대로 북·러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김일성 시대의 등거리 외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배경과 내용은 판이하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심사가 에너지 협력, 가스관 건설, 철도 연결 등 모두 남한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선(線) 잇기’ 사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내년 9월 APEC 회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극동지역 개발과 동북아 진출을 적극화하는 전략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북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해 나가면 이는 우리에게 압박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 급속히 편입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이다.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 중인 실리 추구적 협력 구도에 우리가 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남북 간 ‘공생 발전의 길’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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