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섬이다. 대륙에 연결되었으되 분단으로 대륙과 소통이 단절되었다. 3면은 바다요, 남은 한쪽은 철책으로 막혔다. 철책 너머는 미지의 세계이다.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가 그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설파한 유라시아 지정학과 그에 기초한 전략적 상상력은 우리와는 먼 얘기 같다. 아니,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 이론가들의 사유 속에서 잠깐 그 일단이 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햇볕정책에 숨겨진 풍부한 전략적 내용이 사라지고, 동북아 중심국가 운운하는 말의 성찬으로 도식화되어버렸다. 이 정부에서는 그나마도 아예 사라졌다.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1월1일)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1월5일), 그리고 조평통 대변인 담화(1월8일)를 통해 연거푸 쏟아낸 ‘대화의 총폭탄’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다는 정부의 대응은 고작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비핵화에 대한 북쪽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열자고 역제의’하는 것이었다. 결론이 그렇더라도 상대의 말에 대해 말로 받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전문가들의 분석 역시 천편일률적이다. 1월19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주도권 잡기, 남쪽의 경제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얄팍한 수단,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두고 김정은 후계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의도 등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이 정도면 북한의 어떤 행위도 설명하는 만병통치 처방이라 할 만하다.

북한의 대화 제의와 ‘민족의 중대사’

〈시사IN〉은 연평도 무력 도발 직후 분석 기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도박판을 벌였다고 지적하며(제168호 기사 참조), 그의 사업 작풍을 ‘여러 가지 계교를 복합적·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하는’ 연환계(連環計)에 비유했다. 1월6일자 〈조선신보〉가 이번 일련의 대화 제의를 ‘영도자의 결단’이라고 지적했듯이, 현재와 앞으로 이뤄질 북한의 모든 대외 행동은 김 위원장의 이 최후 승부수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안에 숨은 트릭과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북한의 세 차례 대화 제의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북 간 적대 관계 해소를 내건 신년 공동사설이 서론이라면, 1월5일의 연합성명은 본론, 1월8일의 조평통 담화는 결론이자 구체적 제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세 차례 발표된 북측 성명의 원문을 읽어보면 상투적인 어휘나 단어들의 숲속에서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된 문제’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이 말은 본론 격에 해당하는 연합성명에서 “북·남은 당리당략 주의주장을 초월하여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된 문제 토의에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며 최대한 합의점을 모색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문장 자체가 전체 문맥에서 도드라지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 점을 우려한 듯, 1월8일 조평통 담화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담화문 모두에 “연합성명에서는… 과거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만나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한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데 대해 천명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북한 의중이 궁금할 때마다 등장해 해설해주는 〈조선신보〉가 1월6일자에서 이번 ‘대화와 협상에 대한 파격적 제의는 영도자의 결단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대화 의제도 특정하지 않았고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협의 해결해 나가자고 열린 자세를 표명’했다고 지적했다. 세 번의 대화 제의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민족의 중대사와 관련된 문제가 있으니 무조건 만나서 얘기하자”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중대사라는 게 과연 뭘까?

일본의 발빠른 움직임에 담긴 뜻

일본의 ‘지적 풍토’는 한국보다는 좀 낫다. 그렇다고 일본이 외교를 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식 사회에서는 지정학적 상상력이 느껴진다. 일본의 시사 잡지들에 등장하는 전문가 기고를 보면, 그들이 미국·중국·러시아 등 대륙과 해양의 강대국들 동향을 유라시아 지정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륙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기에 유리한 것일까.
 

구글 지도에 모습을 드러낸 나진항 모습. 현재까지 모두 3개 부두가 있다.

2011년 새해가 되자 일본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의 서울 나들이가 분주하다.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이 1월10일 한국을 방문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회담했다. 이른 시일 내 양국이 군사비밀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대해 구체적 협의를 진행하기로 공식화했다. 또한 1월14~15일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무상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바로 그 마에하라 외상이 내놓은 일련의 대북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월4일 그는 “올해 하나의 큰 테마로서 일본과 북한 간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일본의 주권에 관련된 납치자 문제도 있기 때문에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양국 간 직접 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며칠 뒤(1월11일)에는 몇 걸음 더 나갔다. 6자회담과 관계없이 ‘백지 상태’에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즉 “6자회담 개최의 시비에 관계없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재작년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만큼 향후 (북한과의) 논의는 백지 상태로 임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이 특히 여운이 남는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방북 당시 평화선언을 확인하면서 직접 대화를 확실하게 진전시키고 싶다”라고 한 것이다. 북한은 물론 환영한다.

마에하라 외무상은 국토교통상과 민주당 대표 등을 역임한 6선 의원이다. 성향은 보수적이지만,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1월19일 미·중 정상회담 결론도 안 나왔고, 한국 정부 역시 대화에 유보적인데, 일본이 고이즈미 평양 선언까지 들먹이며 6자회담과 무관하게 직접 대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도대체 일본이 왜 이렇게 분주해졌을까. 방위상은 한국과 군사협정 체결에 나서고, 외무상은 북한과 무조건 대화하겠다고 치고 나온 형국이다.

얘기를 쉽게 하기 위해, 마에하라 외상이 언급한 고이즈미 총리의 2002년 평양 선언 전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깐 짚어보자. 2002년 4월 초, 당시 임동원 특보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마주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등 현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던 중 김 위원장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남북 간에 그동안 거론돼온 경의선 외에도 동해 북부선을 연결하자는 것이었다. 동해 북부선은 한국전쟁 전까지 강원도 양양에서 원산을 왕복하다가 전쟁으로 중단되었는데, 당시 러시아 측이 동해 북부선 연결을 위해 60억 달러 지원 의사를 밝히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중국 군함 동해에 출몰할 수도

이 제안은 당시 국내에서는 다른 현안에 묻혀 더 이상 조명을 받지 못했고 진전도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동해 북부선이 연결되면 청진까지 내려온 러시아 세력이 이를 계기로  원산까지 밀고 내려올 수 있다. 원산은 예로부터 일본 열도의 한복판을 겨냥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원산이 일본의 적대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은 결국 심장부를 노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지정학을 활용한 김 위원장의 성동격서 전략이 적중해,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런데 마에하라 외무상이 바로 그 고이즈미의 평양행을 끄집어낸 것이다.

기자는 연말연시 며칠간 일본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 중 하나는 일본에 사는 오랜 지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동북아 지정학에도 밝은 인물이다.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지난해 12월25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북한과 중국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뭔가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바로 이날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합작투자위원회(북한식 표기로는 합영투자위원회)’와 지린성국제경제기술합작공사 관계자들이 북·중 경협에 대한 협약서를 체결한 것을 일컫는다.
 

ⓒ뉴시스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일본의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이 지난 1월10일 국방부 대회실에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당시 협약서는 5개 항목으로 되어 있었다. 북·중 양국은 북한 함경북도 나진을 △자유무역지대로 육성한다 △이를 위해 나진항 4호·5호·6호 부두 건설에 합의하며, 중국이 50년 사용권을 취득한다 △중국 취안허(권하)-나진항 간에 고속도로 및 철도를 건설한다 △북한이 유엔개발계획(UNDP) 사업에 참여하고 △이를 위한 중국사무소를 평양에 둔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진항 4·5·6호 부두의 개발권 및 사용권이 중국에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일본 측 반응이 궁금했다. 기자가 특히 그의 견해를 듣고자 한 것은 중국이 나진항 1호 부두의 1호선석(1호 부두에 배를 접안할 수 있는 3개의 선석 중 첫 번째 선석. 위 사진 참조)에 대한 10년 사용권을 겨우 획득했던 지난해 초, 그가 소개한 일본의 반응이 생각나서이다. 그는 당시 중국의 동북 3성 및 나진·선봉지대 연계개발 전략은 1930년대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조선 북부지역과 만주를 ‘만선일여(滿鮮一如)’라는 개념으로 연결해 개발했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복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의 안보 담당자들 사이에 있었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소개했다. 약 3년 전부터 일본의 안보 당국자들은 중국 해군의 제1 도련선(第1島線;일본식 표기로는 第1列島線)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마침 중국이 나진항 1호 부두 사용권을 획득했다는 소식에 신경이 곤두선 일본 측 안보 전문가가 중국 당국자들에게 물었다. “중국이 제1 열도선을 이익선으로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이나 미국은 신경이 날카롭다. 나진에 진출할 경우 앞으로 일본해(동해)도 중국의 이익선에 포함되나?” 중국 측 대답이 걸작이다. “제1 도련선은 중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해군 전문가의 견해에 불과하다”라며 이를 일축한 뒤 “그러나 앞으로 나진항을 통해 중국 동북지역 화물과, 북한 북부의 석탄·철광을 실은 화물선이 상하이 등 남부 산업지대를 왕래하게 될 것이다. 석탄이나 철광만 실으라는 법도 없는 것이고, 앞으로 얼마든지 중요한 물자가 오갈 수 있는데, 그때 그 항로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게 되나?”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화물선을 호위하기 위해서는 중국 군함이 동해를 오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얘기를 돌려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익선·생명선 개념의 유래를 설명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 내부는 강온파로 나뉘었다. 온건론을 주장한 인물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로, 그는 러시아와 협상해 북만주를 떼어주고, 일본은 남만주와 한반도를 확보하는 선에서 그치자고 주장했다. 그때 일본 군대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들고 나온 게 바로 이익선·생명선 개념이었다. 즉 조선은 일본의 이익선이고, 만주는 생명선이기 때문에 절대 러시아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마가타는 자신의 주장대로 러·일전쟁 때 육군 총참모총장으로 만주에서 러시아와 일전을 벌여 승리했다. 야마가타의 논리를 지금 중국이 한반도와 동해에 거꾸로 대입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즉 일본에 한반도가 이익선, 만주가 생명선이었다면 이제 중국에는 한반도가 이익선인 것은 같지만, 동해(일본해)가 생명선이라고 거꾸로 주장하는 형국이다.

미국, 나진항에 가장 먼저 접근했지만…

중국이 겨우 나진항 1호 부두 한 선석의 사용권을 확보했을 때도 일본이 그토록 예민하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 3개 부두를 동시에 개발해 50년 사용권을 획득한다고 나온 형국이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3년 전에 중국의 제1 열도선 전략에 대한 검토가 끝났다. 중국의 제1 열도선 전략이 궁극적으로는 일본해까지 확장되어 일본해에 중국 군함이 오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 상황을 과연 미국이 책임져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결국 역내 국가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데, 그게 바로 한국과 일본 양국이다. 한국을 어떡하든지 설득해 군사동맹 내지는 군사협력 관계를 만들어, 유사시 쓰시마해협(대한해협)을 봉쇄하는 길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서울을 찾은 일본의 방위상하며, 마에하라 외무상의 무조건적인 대북 대화 메시지, 한·미·일 3각 군사동맹 얘기 등 동북아 지각 변동의 저 밑바닥에 자리 잡은 구도의 일단을 지켜본 느낌이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의 군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왼쪽은 2009년 한·미 연합해상훈련 당시 세종대왕함의 호위를 받는 미국 핵항모 조지워싱턴호이다. 오른쪽은 1월11일 중국 언론이 보도한 중국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20’.

사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일본의 안전을 지켜온 것은 북한이었던 셈이다. 북한이 중국의 거듭된 두만강 출해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은 덕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러시아까지도)이 자신들이 일본해라 부르는 동해를 옆에  두고 살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 문호를 열어 중국 군함이 동해를 누비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건 고이즈미 시절 동해 북부선 연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얘기다. 일본 외무상이 일본의 주권 사항을 내세우며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일본 방위상이 한국에 날아와 앞으로 언젠가 있을 대한해협 봉쇄를 위한 초석을 깔기 시작한 것도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미국은 어떤 생각일까. 사실 1990년대 이래 나진항에 가장 먼저 접근한 쪽은 바로 미국이었다. 1990년대 초 미국 에너지 회사 스탠턴그룹이 당시 나진·선봉의 승리화학공장을 재가동시키는 조건으로 북측과 나진항 사용권 교섭에 나선 적이 있다. 만약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하고, 그 여세로 북·미 관계가 순항했다면 나진항은 미국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사실은 남측에 내려온 고위급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직접 확인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 시대부터 북한 고위층들 사이에서는 ‘나진항은 절대 중국에 주지 않는다. 앞으로 미국과 협상해 비싼 값에 팔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 당국은 오래전부터 나진항의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를 중국에 넘길 경우 중국 영향력이 동해로 팽창하면서 북한이 그에 종속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소련이 무너진 이후 미국을 끌어들여 견제하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북한의 그 같은 구상은 부시 정권 8년을 거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냉전 이후 단일 패권의 위용을 자랑하던 미국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점을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에서 찾는 데 거의 이견이 없다. 그처럼 지정학에 대한 안목 없이 강경하기만 한 정권은 결국 자신의 발등을 내려찍을 뿐 아니라,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중국이 급부상한 시점 역시 제1기 부시 정권 시기인 2000~2005년 사이라는 점을 볼 때 오늘날 G2 체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부시 정권이다. 그런데 그 부시 정권 시절, 이번 나진항 사태를 연상케 하는 비슷한 일이 미국과 파키스탄-중국 간에 벌어졌다.

바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둘러싼 미·중 간 경쟁과 미국의 패배, 그것이 불러온 혹독한 결과 등이다(17쪽 상자 기사 참조). 과다르항이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의 시발점이었다면, 나진항은 중국의 제1 도련선 전략을 둘러싸고 현재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패권 갈등의 끝내기 수와 같다.

미국, 중국의 열도선 전략 인정 안 해

일본 이종판 미키전략연구소 연구실장의 기고문을 보면, 중국이 마오쩌둥 시대의 ‘인민전쟁 전략(광활한 국토로 적을 끌어들여 게릴라전으로 싸우는 전쟁 형태)’을 버리고, 국토 밖에서 적을 맞아 싸우는 ‘적극방위전략’으로 전환한 것은 1980년대 덩샤오핑 시대이다. 덩샤오핑의 전략 개념을 해군 총사령관 류화칭이 1980년대 중반 바다에 적용해 ‘근해 적극방위전략’을 제창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제1, 제2 열도선(중국식으로는 도련선) 전략이다. 그에 따르면, 쿠릴열도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타이완·필리핀·말라카해협에 이르는 중국의 근해 지역이 ‘제1 열도선’이며, 그 바깥의 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선이 ‘제2 열도선’이다(17~18쪽 지도 참조). 국내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제1 열도선 완성 시기를 현재 다롄에서 수리 중인 항공모함 진수 시기인 2012년으로 잡고 있고, 제2 열도선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 완성하는 것으로 잡는다.

따라서 당장 문제는 제1 열도선인데, 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바로 미국이 금융위기에 들어간 2008년 이후 본격화됐다. 일본 연구자들에 따르면 오바마 정권 초기인 2009년 초 미국이 중국에 G2 체제를 제안하자 중국은 그 첫걸음으로 중국이 자국 내라고 주장하는 타이완·티베트·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의 3T 지역과 대륙붕 연장설에 입각해 중국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권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동지나해와 남지나해 그리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사군도에 대해 중국만의 국가 주권(패권) 행사를 인정하라고 미국에 요구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이 제1 열도선이라고 주장하는 규슈로부터 오키나와 서쪽-타이완 동쪽-필리핀 서쪽-남지나해에 대해 다른 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군사 진출 및 자원 탐사를 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한다(일본의 프리 저널리스트인 다나카 씨의 웹사이트 〈다나카 리포트〉에서 인용).
 

ⓒAP Photo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지난해 12월16일 평양을 찾았다.

다나카 씨는 위의 글에서 미국이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썼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국 전문가 이희옥 교수(성균관대)는 “오바마 정권 초기에는 금융위기로 인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 잠깐 그런 얘기가 나왔지만, 미국이 한숨 돌리면서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또 다른 전문가 역시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와 서해에 진출한 것을 신호탄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복귀가 시작됐다”라며, “지난해 7월25일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포럼에서 남지나해와 동지나해에서의 미국 항공모함의 자유통항권을 주장하고, 남사군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의 국익이라 천명한 것이야말로 미국이 중국의 열도선 전략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입장 표명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남지나해와 동지나해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서는 와중에 중국 함대가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미국 처지에서는 바로 배후의 허를 찔리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나진항 진출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그 자체로서 엄청난 사건이다”라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이 동해 진출하면 한국 ‘섬’으로 고립

이제 마지막으로 한반도 문제로 돌아와보자. 왜 김정일 위원장이 신년 벽두부터 ‘민족적 중대사와 관련한 문제’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썼을까.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헤커 박사를 통해 농축우라늄 시설을 공개하고 연평도 무력 도발을 감행하며, 지난해 12월9일 다이빙궈의 방북 때 2011년에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중국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말 등을 종합하면 그의 관심사가 어디에 꽂혀 있는지 명확하다. 평화협정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고, 그가 얘기한 민족적 중대사 역시 이 문제와 직간접으로 연동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왜 이렇게 이 문제에 목을 맬까.

한마디로 현재의 정전 체제는 사실상 전쟁 상태의 계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후계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이 언제든 역진이 가능한 북·미 수교보다 평화협정 체결을 우선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국내에서도 2011년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평화문제를 제기해 나름의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으로 예상치 못한 안보 위기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문제 제기가 이미 공론화된 바 있다. 바로 지난해 11월16일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스님) 창립 6주년 기념 심포지엄(‘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에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논문(〈포괄적 안보 교환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에서다. 조 연구위원은 이 논문에서 “중국이 제1 도련선을 완성하는 2012년 이후 한반도 문제에 본격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판으로 북핵 폐기와 미군 철수를 맞교환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의할 경우, 미국도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평화재단 세미나 이후 벌어진 북한의 나진항 중국 진출 허용과 그것이 우리에게 줄 영향을 살펴보면, 조 박사가 논문을 통해 한 경고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생명선 개념을 뒷받침하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이미 천명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동해는 중국의 내항이라는 규정이다. 권영경 교수(통일교육원)가 지난해 4월 평화재단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중국의 동진정책과 북·중 경협 전망)에 따르면 2005년 발표된 중국 국무원 판공실의 제36호 문건에 바로 ‘지린성-나진항-중국 동남 연해 항로를 중국 내항으로 취급할 것을 확정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지를 부연하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지난해 3월과 8월 거푸 나왔다. 배종렬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이 수출입은행에서 발행하는 〈수은 북한경제〉 2010년 겨울호에 발표한 논문 〈최근 북·중 경제관계의 특징과 시사점〉에 그 내용이 상세히 실렸다. 배씨는 2010년 11월15일자 〈연변일보〉 보도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2010년 3월16일 중국 국가해관총서는 중국 동북지역 화물이 나진·청진 등 북한 항만을 통해 중국 남방으로 수송될 경우, 이를 수출입 화물이 아닌 국내 화물로 간주하는 문제를 정식 비준’했다. 그리고 ‘2010년 8월4일에는 국가해관총서와 교통부가 이에 대한 공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2005년 중국 국무원이 이미 동해를 중국의 내해라고 규정한 것에 따라, 이곳을 오가는 중국 화물은 수출입 화물이 아니라 국내 화물에 준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얘기다.

동해가 중국의 내해가 되면 한국은 중국에 갇힌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섬’이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중국이 눈엣가시로 여겨온 주한 미군과 한·미 동맹 문제가 당연히 그 다음 타깃이 될 것이다. 이희옥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중국은 한 번도 주한 미군이나 한·미 동맹을 인정한 적이 없다. 다만 남북관계와 한·중 관계 등이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굳이 이 문제를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한·미 동맹 일변도 정책으로 북한·중국과 긴장 관계에 들어서면서 동맹의 해체 문제가 중국의 우선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2008년 8월 이 대통령 방중 때 ‘한·미 동맹은 냉전의 유물’이라고 밝혔고, 지난해 9월 양제쓰 외교부장이 미·일 동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냉전의 유물’이라고 낙인찍었으며, 지난해 10월25일 시진핑 부주석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한국전이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성격을 부여한 바 있다. 동북아에서 사실상 G2의 자리에 오른 중국의 다음 타깃이 뭔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최근 이명박 정부 내외의 보수 세력들이 하고 있듯, 한·미·일 3각 동맹 올인 정책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한 중국과의 관계 역시 개선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다급한 것은 바로 2012년 이전에 한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우리 몸에 맞는 안전보장 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이는 곧 중국의 부상 앞에서 동병상련 처지의 북한과 허심탄회하게 대화 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북한과 소원한 관계였던 일본이 열 일 다 제치고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는데 우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유가 뭔가. 유라시아의 지각판이 요동치기 시작한 이때 지정학에 입각한 상상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부시 정권 사례에서 보듯 지정학에 어두운 맹목적 보수는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을 뿐 아니라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야 만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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