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내 주특기는 포다리였다.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썼다는 155㎜ 견인포의 쇠다리를 옮겨 포를 쏘기 좋도록 고정하는 일이다. 구경과 포신이 큰 만큼 포탄 한 발의 무게가 43kg이나 나간다. 고참은 이 무거운 포탄을 지워 신병을 ‘뺑뺑이’ 돌리는 걸 즐겼다. 포탄을 떨어뜨리면 폭발해 모두 같이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장약을 장착하지 않은 이상 해머로 두들겨도 포탄이 터질 리 없는데도.

‘은는이가’ 빼놓고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욕이었던 까마귀(별명)라는 선임이 어수룩하고 고지식한 신병 한 명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가 신병 눈을 보고 ‘자동’이라고 외치면 신병은 알아서 포탄을 지고 앉아 일어서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또 그 짓을 시키는데 신병의 눈이 뒤집히더니 포탄을 우리 쪽으로 집어던지면서 “다 뒈져버려라” 하는 것이었다. 포탄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물론 포탄이 우리 몸뚱이를 찢어발기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 신병의 마음속에서 모두 죽은 것이었다. 그때 어느 사단 어느 내무반에서 총을 난사했다는 그 누구누구가 결코 ‘괴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성원 그림

‘평창 바람’이 미치도록 거셌던 탓에 벌써 다 잊혀가지만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이 좀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평범한 청년이 또래의 전우 4명을 황천으로 보내고 자기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 만큼 크나큰 분노를 키우게 됐을까. 내가 군대에 가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똥별’이 사병의 일종(쌀)을 빼돌리던 전설 속의 군대에서부터 세안제로만 얼굴을 씻는다는 요즘의 초민주 군대에서까지, 규모만 다를 뿐 비슷한 참사가 꼬리를 무는 까닭은 뭘까. 분명 일간지나 방송이 지치지도 않고 수십 년간 병창해온 ‘군기 타령’ 보다는 심오한 어떤 사정이 있음에 틀림없다.

내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수색 중대 중대장을 지냈다. 전쟁 막바지 육군본부에 잠깐 있었을 때를 빼고는 거의 6년 내내 최전방에서 보냈다. 아마도 크고 작은 근접 전투를 수십 차례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겪은 전투상황에 대해서는 해골을 깔고 앉아 얼어서 돌덩이처럼 변한 주먹밥을 먹곤 했다는 말밖에 들은 일이 없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취재 중 만난,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적과 직접 맞붙었던 사람치고 당시 경험을 떠벌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그때의 기억을 애써 봉인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살인을 배움으로써 치르는 값비싼 대가

군 출신이며(예비역 중령) 미국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아칸소 주립대학 군사학과 교수를 지낸 데이브 그로스먼이 쓴 〈살인의 심리학〉(플래닛, 2011년)은 군대에 대한 나의 오래된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그는 군인이, 특히 참전한 군인이 겪는 끔찍한 고통은 모두 살인을 배움으로써 치러야 하는 값비싼 대가라고 말한다.

20년간 군에서 복무한 그는 수많은 참전자를 인터뷰한 뒤 이 책을 썼는데 “여기서 당신이 알게 될 언어, 즉 군인들 자신의 언어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전사와 전쟁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내가 어려서 즐겨 봤던 〈컴뱃〉이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미국 드라마, 그리고 할리우드가 제작한 모든 전쟁 영화는 엉터리이다. 


〈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플래닛 펴냄
2차 세계대전 중 유럽과 태평양 전투에 참가한 400개 중대 수천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미군 소총수 가운데 15~20%만이 적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이 드러났다. 동족에게는 치명적인 이빨이나 독을 사용하지 않는 피라니아나 방울뱀처럼 대다수 인간도 동족을 죽이는 데 큰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미국의 남북전쟁과   1차 세계대전에서도 총격전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비효율적이었다. 결코 총기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중대 병력이 열다섯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마주 서서 총격을 주고받았는데도 단 한 명도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전쟁 때 수거된 소총 2만4000정 중 거의 90%가 장전된 채였다. 적어도 1만2000정은 한 번도 발사되지 않았다. 무려 23번이나 장전만 된 총도 있었다. 장교들이 지켜보니까 쏘는 척하면서 계속 장전한 것이다. 미디어나 영화가 용감하게 싸우지 않는 것이 비정상인 것처럼 떠들 때 정상적인 대다수 병사는 적을 일부러 빗맞히거나 아예 쏘지도 않은 것이다. 사상자는 여럿이 협업하는 기관총 소사나 포격 탓에 주로 발생했다. 전쟁의 이면에 도사린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이 참전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의 역사는 병사가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한 타고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미군이 참전한 20세기의 모든 전쟁에서 적의 포화로 전사할 가능성보다는 정신적 사상자, 즉 군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해 상당 기간 심신의 쇠약을 겪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차 대전의 특정 시점에서는 전장에 새로 투입되는 병사보다 정신적 사상자가 되어 후송되는 병사가 더 많았다. 1973년 중동전쟁에서도 이스라엘 군 가운데 전투력을 상실한 자의 3분의 1은 정신적 사상자였다. 정신적 사상의 근저에 도사린 것이 바로 같은 종을 죽이는 데 대한 거부감이다. 


노숙자가 된 베트남 참전자들

2차 대전 때는 15~20%에 불과했던 미군 소총수의 사격 비율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90~95%까지 올라갔다. 현대적인 훈련 기법으로 인간적인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기법은 둔감화와 조건 형성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군 병사들은 매일 아침 PT(체력단련) 체조를 하면서 왼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라고 외쳐야 했다. 적군은 자신과 다르고, 인간도 아니라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모든 사격 훈련의 표적지는 인간 모양의 것으로 교체되었다. 사람에게 주저 없이 속사할 수 있도록 조건 형성 기법을 응용한 것이다. 명중률이 높으면 특등 사수 휘장과 3일 휴가를 받았다. 사람 모양의 타깃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총알을 박아넣는 병사가 영웅시되었다. 그리고 군의 구성원 사이에 아내보다도 동료에게 더 애착을 가지는 특별한 애정 유형이 형성되도록 유도했다. 그런 속에서 ‘기수열외’가 얼마나 끔찍한 형벌인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뛰어난 군대가 다 이런 식으로 훈련한다. 이런 현대식 훈련을 받은 군대가 게릴라를 상대하면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기계는 언제든 동료에게도 총부리를 돌릴 수 있다.

군은 현대 기법으로 병사에게서 인간미를 제거해 정신적 사상자를 현격히 줄이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가는 크다. 전쟁 사상 최초로 약물 치료까지 받은 데다 귀환해서 살인마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자가 겪는 후유증은 혹독하다. 최대 150만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이혼·실직률과 심장질환·고혈압·궤양 등 질병 발생률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다. 베트남 참전자는 미국 노숙자의 상당수를 점하며 이들의 자살 확률은 날로 높아간다.

저자는 더 끔찍한 일이 민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자비로움을 없애는 기법이 서든 어택 같은 인터넷 게임에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살인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짐작한다. 세계 주요 국가가 신병 훈련소에서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을 살인자로 키우는 것도 모자라 사이버 공간에서 그보다도 어린 아이들까지 살인에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 옳으냐고 그는 묻는다. 베트남 전쟁 참전자에 대한 변변한 역학조사도 없었고, 매년 수십만 청년이 신병 훈련소에 입대하며, 게임 강국이기도 한 대한민국은 그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까.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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