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임재성 지음그린비 펴냄
2007년 11월, 내가 맡은 수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해 얘기해줄 특강 강사로 임재성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을 택한 이유와 스스로 총을 내려놓았던 사람들에 관해 얘기했다. 그 학기에 학생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시간이었고, 여러 학생들이 수업 후기를 남겼다. 모두가 그의 얘기에 공감한 건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는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목소리가 듣는 상대를 고려하는 절제된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학생들의 곱지 않은 시선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했던 그를 온전히 보지 못하고 섣불리 감동을 얘기했던 건 아닐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슬펐다. 그는 대체복무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36개월 합숙 복무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섞인 한이 마음을 후볐다. 그리고 ‘그날 널 보내면서 정신 반쯤 나간 아버지’ ‘창살 안에서 삶은 달걀이랑 우유 맛있게 먹어주던 내 새끼’ ‘규정이 아니라면서도 허용한 순경 아저씨’라는 비극적인 풍경을 담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울컥 눈물이 났다.

병역 앞에서 이성이 마비되는 우리 사회

또 책을 덮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병역이란 주제 앞에서는 이성이 마비되는 우리 사회’에서 ‘전쟁 없는 세상’의 활동가로, 평화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를 마주하는 게 버거워서는 아니다. 재성씨는 “군사 훈련을 거부하는 신념의 성격, 거부하는 행위의 범위, 대체 복무의 용인 여부 등과 같은 기준으로 병역 거부를 구분하고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체제의 언어’로 병역 거부에 접근하는 것일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나 역시 그동안 체제의 언어로 병역 거부를 논했던 건 아닐까? 그냥 싫어서 군대를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뉴시스5월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한국에서도 행사가 열린다.
책 한 권을 읽으며 미안하고 슬프고 부끄러워지기도 오랜만이다. 하지만 임재성씨는 우리가 이런 마음만 가지고 책을 덮기를 원치 않는다. 외려 자신과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사는 시민임을 강조한다. ‘감옥행까지 감수할 정도로 강고한 평화주의 신념을 가진’ 투사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그는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평화의 언어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공감의 능력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메마른 사막에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돕고 있다. 군대가 약한 나라는 망할지라도, 군대가 없는 나라가 망한 경우는 없다. 내가 겨눈 총부리가 내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먼저 총을 내리려는 사람들, ‘폭력에 마취되지 않는 감수성을 통해서 폭력의 맨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민들이다.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모순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가해의 기억이 병역 거부를 평화의 권리로 인정하게 만들었던 독일과 달리, 피해의 기억을 가지고서도 ‘더욱더 강력한 무장을 갈구하면서 병역 거부를 범죄시’하는 한국의 군사주의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비인도적인 무기로 분류된 집속탄을 비롯해 온갖 무기를 수출하며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서의 병역 거부는 일상적인 삶보다 총체적인 거부와 대안적인 삶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거부의 권리를 일상 속에 뿌리내릴 방법은 여전히 과제이다.

기자명 하승우 (경희대 NGO대학원 겸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