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이면 민선 5기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1년이 된다. 생활밀착형 의제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지방권력의 ‘여소야대’ 현상이 대규모로 등장하는 등, 민선 5기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한국 지방자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시사IN〉은 민선 5기 취임 1년을 맞는 14곳 광역자치단체장(시장·도지사)에게 공통 질문지를 보냈다. 4·27 보궐선거로 취임해 갓 임기를 시작한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특별자치도 지위여서 재정 문제 등에서 일반 시·도와는 사정이 다른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제외했다. 첫째,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5대 성과를 스스로 꼽아달라고 했다. 둘째, 지방정부 재정의 과제와 해결 방안을 들어보았다. 셋째,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LH공사 입지 선정, 과학벨트 입지 선정 등 국책 사업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소통이 원활했는지 평가를 받아보았다. 

5기 지방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여소야대’다. 모두 5곳(서울·경기·강원·충남·경남)에서 시장·도지사의 당적과 광역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여소야대’가 형성됐다. 시장·도지사 후보를 따라 ‘한 줄 투표’를 하던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민선 4기까지와 견주어보아도, 민선 5기 시장·도지사들은 좀 더 본격적인 리더십 시험을 받는 셈이다. 지난 지방선거의 최대 화두였고 지금도 전국에 걸쳐 여야의 대립이 가장 첨예한 주제인 무상급식을 통해, 민선 5기 시장·도지사들의 리더십 유형을 검증해보았다.

올해 1월 지사직을 상실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만나봤다. 이 전 지사는 지방자치에 큰 관심을 가졌던 참여정부에서는 권력 핵심에서 ‘지방자치 디자인’을 지켜보았고, 지난해 지방선거 당선 이후 6개월간은 직접 지사직을 수행했던, ‘책상’과 ‘현장’을 모두 거친 보기 드문 인사다. 그에게서 한국 지방자치가 지향하는 모델과 오늘의 현실을 들었다. 

 

 

 


다섯 차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도 적잖이 바뀌었다. ‘때깔 나는’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 새 길과 다리가 생기면 ‘우리 지사 일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던 시절은 점차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유권자는 주거·보육·교육·일자리·노인부양 같은 생활밀착형 정책에 좀 더 민감해졌고,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민선 5기 광역자치단체장(시장·도지사)들은 이런 유권자의 요구를 읽고 있을까. 민선 5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도지사가 꼽는 ‘홍보 포인트’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외자 유치에 쏠려 있었다. 이런 경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사IN〉이 보낸 질문지에 답하며 스스로 내세운 ‘5대 성과’만 살펴봐도 변화 기류가 읽힌다.

생활·복지 분야의 성과를 내세우는 시장·도지사가 크게 늘어난 것이 먼저 눈에 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김두관 경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김완주 전북도지사, 염홍철 대전시장이 생활·복지 업적을 내세웠다. 

 

 

 

 

 

ⓒ뉴시스대규모 국제대회 유치는 지금도 단체장들이 선호하는 업적이다. 위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업적으로 꼽은 영암 F1 대회.

 


무상급식·친환경 정책도 강조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노인 틀니 보급사업’을 5대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40억원 예산을 들여 올해 노인 2000명에게 틀니 시술을 하겠다고 했다. 예전이라면 ‘좀스럽다’며 제쳐놓을 법한 일이지만, 생활밀착형 정책이 대세가 된 지금은 쏠쏠한 홍보 포인트가 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을 성과로 제시했다. 현행법상 복지 수혜 대상은 아니지만 이혼·실직·질병 따위로 급작스럽게 위기를 맞은 가정에 생계비·의료비를 지급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초선 시절인 2008년 시작해 올해 3월 현재 5만 가구에 574억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초선 때부터 추진한 ‘자립·생활형 복지’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며, 희망플러스통장 시범사업 참여자 98명 중 52명이 적립금을 수령했고 6명이 창업을 통해 자립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민관이 함께 ‘전북일자리종합센터’를 만들어 20011년 목표인 청년 500명 취업을 초과 달성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1순위로 꼽았다.

2010년 지방선거의 최대 화두였던 무상급식을 업적으로 내세운 시장·도지사도 여럿 눈에 띈다(32~33쪽 딸린 기사 참조). 송영길 인천시장, 김두관 경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성과로 꼽았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충북도·도의회·교육청이 합의해 전국 최초로 도내 16만명 초·중학생 모두에게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했다”라고 밝혔다. 지자체 예산 340억원, 교육청 예산 401억원이 투입됐다.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흐름도 읽힌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형 축산정책을 도입해 구제역 청정지역으로 인정받았고, 친환경 농산물 인증이 전국의 51%를 차지하는 등 친환경 농·수·축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가고 있다”라고 자랑했다.

도시 재개발은 특히 대도시의 시장이 자랑해온 단골 메뉴다. 집값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주택 소유자에게 인기가 높았다. 민선 3기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 광폭 행보는 이 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뉴타운 공약으로 국회에 입성한 ‘타운돌이’가 양산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바뀐 지금은 뉴타운 사업지정 취소청원이 쇄도하는 등 도시 재개발 정책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일까. 도시 재개발을 성과로 꼽은 지자체 세 곳(서울·부산·인천)은 하나같이 ‘원주민 중심의 따뜻한 재개발’을 내세웠다. 원주민 재정착률이 10%대에 그치던 ‘묻지 마 재개발 정책’의 ‘약발’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국제 대회·행사 유치는 여전히 ‘인기 품목’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일변도로 가는 기존 재개발 정책에서 보전과 개발을 양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주거정비 5대 방향’을 세웠다”라고 밝혔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원주민 중심의 다양한 도시 재생 모델을 개발했다”라며,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내세웠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민간 회사의 수익성 기준에서 탈피해 공익성을 갖춘 구도심 재개발을 추진했다”라고 답했다. 실제 내용이야 어떻든, 최소한 재개발 정책을 포장하는 수사만은 확실히 바뀌었다.

흥미로운 변화도 있다. 사실상 토건·SOC 성격을 띠는 사업도 문화·생태·생활·복지 용어로 포장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쉽게 눈에 띄는 토건 사업에 기대어 업적을 추진하는 기존 경향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포장만은 새로운 흐름에 맞춘 셈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업적 중 하나로 내세웠다. 세부 내역을 보면 역사관·미술관 개관, 전문 공연홀 착공, 문화창조발전소 착공, 대구야구장 건립 협약 등 ‘문화’보다는 ‘SOC’에 방점이 찍혔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지금 경북의 강·산·바다는 국가 녹색 성장의 생생한 현장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연말이면 정말 멋진 낙동강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라며 4대강 사업을 치적에 포함하기도 했다. SOC 사업이지만 생태·환경 사업처럼 표현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저서 〈프리 라이더〉에서 “문화정책이라며 도서관은 짓는데 도서 구입비는 안 쓴다”라며 하드웨어형·토건형 지출이 소프트웨어형·문화생태형 지출로 포장되는 이 같은 경향을 꼬집기도 했다.

예전만큼 일방적이지는 않지만, 투자 유치나 국제 행사 개최와 같은 좀 더 ‘전통적인’ 공적도 여전히 인기다. 전남·전북이나 경북처럼 산업 기반이 부족하거나 축소되는 지역일수록 이런 성과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보였다. 지역민의 수요가 더욱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특히 국제 대회·국제 행사 유치는 좌와 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시장·도지사가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과다. 유권자의 지지가 높은 편이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일 명분도 생긴다. 송영길 인천시장(민주당)은 2014년 아시안게임 시설 착공을 5대 업적에 포함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민주당) 역시 F1 자동차 경주대회 개최를 내세웠다. 김관용 경북도지사(한나라당)는 G20 재무장관회의 경주 유치를 꼽았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강원도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세 번째로 도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4명 시장·도지사가 스스로 내세운 성과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14곳 광역단체가 실제로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업적으로 내세우는 ‘홍보 포인트’와 ‘포장법’이 적잖이 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민선 5기 지자체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유권자의 요구에 직면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기자명 이숙이·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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