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 커피 시장은 공룡들의 싸움판이다. 스타벅스·팀호튼스 같은 대자본의 무대에 맥도날드가 가세해 공룡들은 말 그대로 ‘피 터지게’ 싸운다. 가장 많은 점포를 가진 맥도날드가 핑계 거리(예를 들면 밴쿠버올림픽)를 내세워 공짜 커피 전략을 구사하는 캐나다에서는 스타벅스가 휘청거린다. 미국에서는 가격 경쟁에 불이 붙어 천하무적 스타벅스가 그로기 상태로 몰렸다.

한국에서도 공룡들의 싸움이 한창이다. 외국산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 운영, 아니면 커피와 관련 없는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이 나서서 마케팅 경쟁을 벌인다. 대자본들의 뜨거운 경쟁 속에서 에스프레소 프랜차이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할리스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외국산 혹은 대자본이라는 배경을 가진 데 비해, 할리스는 국내에서 순전히 커피만으로 성장해온 거의 유일한 프랜차이즈이다. 커피 하나로 스타벅스·커피빈에 이어 매출액 3위(2009년 873억원)를 기록하며 선전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특해 보이기도 한다.

 

ⓒ시사IN 백승기서울 강남에 1998년 1호점을 낸 할리스커피는 ‘신선한 커피, 로맨틱한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90년대 초 새로운 개념의 커피 프랜차이즈 자뎅이 있었다. 자뎅은 깔끔한 인테리어로 커피 시장에서 붐을 일으켰으나 변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인테리어로 승부하던 커피점이 범람하던 1998년, 인테리어에서 커피로 눈을 돌린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등장했다. 할리스이다. 할리스는 서울 강남에 1호점을 내면서 새로운 커피 문화의 문을 열었다.

1999년 미국의 스타벅스가 신세계백화점과 손잡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던 그즈음 할리스는 서울 압구정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경쟁에 돌입했다. 2011년 현재 불황 앞에서도 끄떡없다는 커피 춘추전국시대는 그때 그렇게 열렸다.

먼저 뛰기 시작했으나, 자본과 광고를 앞세워 이미지 싸움부터 하고 보는 공룡들의 전쟁에서 할리스가 뒤처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할리스는 예상을 깨고 줄곧 선두권을 유지했다. 그 기반을 다진 시점은 2004년이다.

2004년 대표 자리에 오른 정수연씨는 할리스커피에 두 가지를 도입했다. 개선된 맛과 이미지. (주)두산 OB맥주 마케팅팀장 출신인 그는 부동의 1위 OB맥주가 하이트에 밀리는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히 체험한 바 있다. 천연 암반수라는 이미지와 좋은 맛. 시장은 역전되었다.

신선도와 진한 맛이 강점

커피의 맛과 이미지는 한 가지로 결정 난다. 정수연 대표는 바로 그것을 짚어냈다. 커피는 좋은 원료를 구해서 잘 볶기도 해야 하지만, 볶은 후 원두의 선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다. 할리스커피는 이미지 경쟁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국산’이라는 것을 강점으로 전환시켰다. 생선회 같은 커피의 특성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볶아 들여오는 외국산 브랜드 커피는,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기간이 적어도 3∼4개월은 걸린다.

 

 

 

ⓒ시사IN 백승기정수연 할리스커피 대표(위)는 “스타벅스는 경쟁사이지만,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 마케팅 타깃도 스타벅스였고, 신선도의 타깃도 스타벅스였다”라고 말한다.

정 대표는 “우리는 마케팅 이슈로 숫자를 던졌다”라고 말했다. 1·1·1이다. 볶은 후 1개월, 포장지 개봉 후 1주일, 분쇄 후 1시간 이내의 신선한 원두만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신선하다는 이미지를 선점했다는 것을 슬로건을 통해 강조했다. 할리스의 로고에는 ‘신선한 커피, 로맨틱한 공간’이라는 문구가 늘 붙어 다닌다.

캐나다 팀호튼스가 ‘늘 신선하다(Always Fresh)’라는 슬로건으로 그 이미지를 독점하며 최고 지위를 누리고 있듯이(커피 브랜드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다), 할리스가 선점한 ‘신선한 커피’ 이미지는 맥주의 천연 암반수처럼 경쟁력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신선함과 더불어 할리스는 외국산 브랜드에 비해 ‘맹탕’에 가깝던 맛을 진하게 끌어올렸다. “스타벅스는 비록 경쟁사이지만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 그래서 고맙다. 마케팅 타깃도 스타벅스였고, 신선도의 타깃도 스타벅스였다”라고 정수연 대표는 말했다. 할리스는 나아가 스타벅스처럼 카페라테와 카푸치노에 넣는 에스프레소를 하나에서 두 개로 늘렸다. 커피 용어로는 원샷에서 투샷으로. 원가가 2배로 올라가니 가맹점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대표를 반대한다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나자 고객들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신선하고 진한 할리스 고유의 맛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고유의 맛이란 종전의 시고 쓴맛을 개선해 묵직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맛이다. “일본 커피는 신맛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객들은 신맛과 쓴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그 성향에 주목했다”라고 정 대표는 말했다.

할리스는 국산의 힘을 메뉴 개발에까지 적용해나갔다. 2005년에 나온 고구마라테가 대표적인 토종 상품. 고구마의 달달함과 텁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면서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마실 수 있게 한 음료로, 식음료 업계에 고구마 유행을 몰고 왔다. 할리스는 고구마에 이어 밤을 원료로 한 마론카페라테 등을 출시하면서 토종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토종인 만큼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산 브랜드와는 반대로, 할리스는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페루·말레이시아에 이미 진출했고, 지금은 타이와 베트남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할리스커피  www.hollys.co.kr
2010년 말 현재 전국 매장 수 258개(직영 22곳, 가맹 236곳). 콜롬비아와 브라질 커피를 고유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 카페아메리카노 3500원, 카푸치노 4000원, 고구마라테 4800원대. 국산으로, 외국산에 비해 신선하다는 강점이 있으나 비슷한 가격대가 약점.

 

 

기자명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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