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을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이 덮친 지역은 하필 10기 이상의 원자로가 밀집된 후쿠시마 현을 포함하고 있어, 해일이 물러난 지금 천재(天災)는 하찮게 되고 인재(人災)라고 해야 할 원전 폭발 위기가 오히려 천재를 뛰어넘게 되었다. 이런 재앙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효율성에 대한 이의가 있어왔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원자력은 절대 안전하다는 ‘안전 신화’, 어떤 발전보다 싸다는 ‘가격 우위’, 그리고 줄어드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는 ‘대안 부재’가 주술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반핵 운동을 하면서도 반원전 운동은 돌아보지 않았다. 과연 원자력은 그 어떤 기술보다 안전하며, 값싸고, 더 나은 대안이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발전 수단인가?

세 가지 의문의 답을 구하고자 1987년에 출간된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이음, 2011년)를 읽었다. 이 주제의 책이 귀하지 않은 터에 굳이 이 책을 택한 것은, ‘1인 대안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은이의 노고가 너무 극적이어서다. 20여 년도 더 전에 지은이는 예견했다. “후쿠시마 현에는 자그마치 10기가 있죠. 여기서 해일이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10기가 함께 멜트다운(meltdown)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인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책의 원래 의도는 1986년, 옛 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나, 그 분석으로부터 지은이는 향후 일본에도 반드시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마침 필자가 이 글을 쓰기 하루 전(4월12일), 일본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급을 5등급에서 7등급으로 상향했다. 이 등급은 국제원자력사고평가척도(INES)에서 정한 원전 사고 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이자,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동급이다. 그러나 외양으로는 일단락 난 것처럼 보이는 체르노빌과 달리, 후쿠시마 사태는 진행 중이다. ‘등급’이 모자랄지도 모르는 이 사태야말로, 현대 문명을 운용하는 인간들의 위기 감지 능력이 얼마만큼 경화되었는지를 증명한다.
 

ⓒ이지영 그림

절실한 이야기 절실하게 해서 쉽게 읽혀

원전을 감독하고 허가하는 국가나 원전산업 관계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원전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면서 원전 사고가 ‘2만년 만에 한 번’ 일어날 정도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원자로가 200기가량이므로(현재는 439기), 10년에 한 번씩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20000÷200=10). 그의 논리를 농담으로 되돌리더라도, 세계의 원전이 노후되면서 작고 큰 사고가 빈발하리란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우려다. 거기다가 과학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원전에 대한 감독이나 조사는 늘 비밀에 부쳐진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라는 허언의 진실일 것이다.

또 원전은 가장 값싼 발전이라고 선전되지만, 원자력은 우라늄 채광에서 정제·운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석유 자원이 들어간다. 그리고 40년 수명의 원자로를 해체하고, 반영구적인 고준위 폐기물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이런데도 원전을 짓는 기업들은 현재의 자기 이익만 계산할 뿐, 미래나 공동체의 손실은 환산하지 않는다. 원전이 개인 기업일지라도, 사고가 나면 공적 자금과 인력이 투입된다. 후쿠시마 원전에도 자위대와 탱크가 투입됐다.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피해 보험은 어떻게 될까? 재난을 이유로 국가가 사기업을 구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일본의 전력 수급은 화력·수력 발전소가 도맡고 있었고, 원자로를 전부 중지해도 30%의 초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수치를 내놓았다. 그렇기는 해도, 화석연료는 언젠가 동이 난다. 그런데 화석연료든 원전이든 모든 에너지는 산업과 수송(자동차)이 다 잡아 먹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속도를 줄이는 일’과 ‘한곳에 좌정하고 인생을 장대한 꿈속에서 명상’하는 일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조급하지 않으면 인류는 반드시 자원을 재생산하는 수단을 갖게 된다”고 충고한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30% 정도를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강양구의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프레시안북, 2007년)는 그 30%를 포기하고 대체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일종의 ‘개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두 사람은 명상과 개종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이 불러오는 위기에 귀 기울이면서, 지속 가능한 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는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원전을 멈춰라〉가 쉽게 읽히는 것까지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원전이 구구법처럼 쉬워서가 아니라, 절실한 이야기를 절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지은이가 체르노빌 참사를 청소년들에게 알리기 위해 쓴 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6년)의 후기에 썼듯이, 우리가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유는 ‘원자력공학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나아가 이 책이 진정 쉬운 이유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어렵게 말하기 때문이다. 원전산업을 장악한 독점기업과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는 대중이 원전의 악취 나는 비밀에 접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때 당근을 받아먹은 전문가들은 원전산업의 훌륭한 방호벽이다. 더 재미난 것은, 전문가들조차 자신의 원전 사고의 전모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점. 체르노빌의 경우 국가는 피해자들을 분산시키고 의사들에게 함구령을 내림으로써 원전 사고와의 관계성을 영영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지은이는 점점이 흩어진 단서들로, 국제 원전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언론·엘리트 정치가들의 결탁을 밝힌다. 국제연합 산하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모든 원전 사고를 은폐하고 조작하는 배후다! 이 책을 음모론의 영역으로 유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장을 확인하는 것은, 21세기 독자들의 임무다. 이때, 지은이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도 필히 함께 읽어야 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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