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신학림 녹취 보도, 언론 윤리 논쟁이 정치공작 사건으로 전혜원 기자 2021년 9월15일,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하 호칭 생략)이 만났다. 당시는 대장동 개발 의혹이 막 불거지던 시점이었고, 김만배는 대장동 개발에 관여한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대주주다. 김만배는 이 자리에서, 성남시가 공공에 유리하도록 대장동 사업을 설계해 자신이 끌어들인 민간사업자들이 곤란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만배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에 관한 의혹을 신학림에게 전한다. 윤 후보가 검사 시절 2과장으로 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 어느날 AI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프리스타일] 변진경 기자 지난 4월, 코로나19 재택치료 중 관할 보건소로부터 안부 전화 두 통을 받았다. 한 통은 사람, 한 통은 AI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먼저 걸려온 전화의 발신자는 관할 보건소 공무원이었다. “변진경님 몸은 좀 어떠세요?” 아마도 수백 번째 묻는 ‘할당’ 재택치료자의 안부였을 것이다. “열은 나세요?” “식사는 잘 하시나요?” 문장은 매우 따뜻한 텍스트인데, 묻는 목소리에는 꽤 많은 피로함과 약간의 짜증스러움이 배어 있었다.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형식적인 전화를 받고도 울컥 감정이 동요된 것이다. 왜, 아프면 괜히 서럽지 않 ‘인공관절 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셰프) 너무 인기가 좋아서 예약도 안 된다는 광주의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왜 있잖은가. 반찬을 한 상에 다 놓을 수가 없어서 접시를 ‘이중 깔기’ 해주는 집. 이걸 수라상이라고 불렀더니 동행인이 그릇 수를 세고는 고개를 저었다.“36첩이네. 황제 상이다.”우리는 학교 다닐 때 수라상이 12첩이라고 배웠다. 아마도 조선 후기의 기록일 것이다. 수라상의 첩수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어쨌든 12첩을 기준으로 2000년대 한국의 한식집 상은 세 배쯤 나온다. 그 당시엔 임금도 마음껏 못 먹었을 인삼무침도, 얼음 넣은 물육회도, 통통한 샤인 대림선 어묵 X 사조참치 사조대림, 참치어묵 출시 기업 PR 종합식품기업 사조대림은 사조를 대표하는 제품간 콜라보레이션 을 통해 새로운 맛과 영양을 갖춘 프리미엄 어묵 신제품 2종을 새롭게 선보인다.사조대림의 대표 어묵 브랜드 ‘대림선’을 통해 선보이는 이번 제품은 사조그룹의 대표 제품 ‘사조참치’와 ‘대림선 어묵’을 콜라보한 제품으로, 대림선 ‘참치어묵 오리지널’과 ‘참치어묵 매콤청양’으로 구성됐다.‘대림선 참치어묵’ 2종은 최고급 명태연육에 참치살이 15% 이상 듬뿍 첨가된 고단백 어묵이다. 특히, 요리했을 때 최적의 맛을 낼 수 있게 최고의 배합 레시피를 적용했으며, 제품마다 충분히 간 불편한 각성 끝에 흘리는 눈물 조형근 (사회학자) 글로 세상을 배우다 보면 서로 적당히 거리두기가 된다. 읽으며 아프고 분노한 내가 읽은 뒤에 변함없이 일상을 이을 수 있다. 다른 이도 내 글을 읽으며 그럴 것이다. 홍은전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이 안전한 거리가 종종 무너진다.저자 홍은전은 작가, 인권활동 기록가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운동단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 노릇을 했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이들은 장애인, 선감학원·형제복지원 같은 시설 탈출자, 대추리에서 쫓겨난 농민, 집 빼앗긴 철거민, 세월호 유가족 같은 이들이다. 싸운 이야기, 죽어간 이야기, 죽은 이를 애도한 이야기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비슷한 듯 다른 여정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요즘 사람들은 음식에 관심이 많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객의 SNS, 텔레비전 프로그램, 음식 관광 정보를 담은 서적 등 음식 이야기가 이렇게 풍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물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런 일상의 입맛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은근하면서 강력한 힘을 경제와 정치에 미치고 있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너무 평범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일상의 입맛을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 고려했다. 밀·밀가루·빵의 로마제국 목욕탕에는 기생충이 많았다? 위민복 (외교관) 로마제국 시절 대중목욕탕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곤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목욕탕 시스템을 극찬한다. 사실 씻어서 나쁠 건 없다. 무엇보다 청결함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씻으면 ‘새 몸’이 된다는데 나쁠 것 없지 않나. ‘정말로 그럴까’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연구자 혹은 학자의 도리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인류학 팀은 로마 유적·유물을 토대로 연구를 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케임브리지 대학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데(‘Human parasites in the Roman World:he... ‘한국형 고깃집’의 미래는 무엇인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40년째 고기를 구워온 집이다. 1979년 태능정이란 이름으로 창업해 지금은 ‘배갈비’라는 상호로 문을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서울 교외에 갈빗집이 들어서면서 외식 문화가 꽃피던 시대의 산증인 같은 곳이다.“한국 사람은 굽는 재미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이 집 김태형 사장은 돼지갈비 하면 한국인의 ‘구이 사랑’부터 떠오른다고 한다. 불에 굽고, 김치류·쌈거리·샐러드와 각종 반찬까지 너끈히 한상차림을 내는 고깃집은, 어쩌면 한국 요식업만이 가진 문화적 자산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돼지갈비는 아버 “장도 텃밭처럼 가꾸어보면 어때요?” 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사진 신선영 기자 고은정씨의 명함에는 ‘음식문화 운동가’라고 적혀 있다. 워낙 장 담그기로 소문난 이라 ‘전통식품 명인’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음식문화 운동가로 소개한다. “거창할 것도 없어요. 할 수 있는 한에서 내 밥 내가 해 먹는 분위기가 퍼지고, 골목골목 장독대가 보였으면 해요. 모색하기이고, 궁리입니다. 이 안에 문화의 이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요.”그의 둥지는 지리산 자락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지리산 둘레를 돌고 돌아 실상사 앞에 내리면 길 건너에서 ‘맛있는 부엌 (전라북도 남원시 천왕봉 우직하게 빛났던 완탕면의 명가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1950년에 문을 연 홍콩 완탕면의 명가 윙와(永華麵家, Wing Wah)가 폐점을 예고했다. 개업 68년 만이다. 한국과 비견될 만큼 바쁜 사회지만, 전통을 보존하는 데 소홀하지 않은 홍콩이라 윙와의 폐점 소식은 꽤 화제였다. 윙와는 내게도 각별한 집이었다. 2008년 홍콩 가이드북을 쓰기 시작한 이래 10년째 한 번도 이 집의 이름을 빠뜨린 적이 없다. 그사이 〈미슐랭 가이드(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까지 받으며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홍콩 취재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윙와의 완탕면 국물을 마신 뒤에야 비로소 여기가 홍... ‘면스플레인’ 함부로 하면 안 되갔구나 이오성 기자 ‘슴슴하다’라는 북한 말을 대한민국 표준어 반열에 올린 음식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펼쳐진 평화 국면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먹을거리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아실 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한 그 음식. 평양냉면이다. 그렇다. 실제로 평양냉면은 우리에게 무척 가까운 음식이다. 아니, 이미 가장 ‘핫’한 외식 메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뿐 아니라 사시사철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판문점 선언 이후 문전성시를 이루는 평양냉면집 풍경은, 사실 그리 새삼... 미원의 원조 아지노모토의 조선 점령기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미원’의 원조 조미료인 아지노모토(味の素)는 시작부터 기세등등했다. 발매하자마자 광고를 통해 아지노모토가 제국의 영광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제품이라고 윽박질렀다. 이학과 공학에 힘입은 이 제품이 제국 기술력의 상징이라고 뽐내기도 했다.1909년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한 뒤, 1910년 조선에 발을 디딘 이후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줄곧 조선에서 가장 손이 큰 광고주가 아지노모토 사(社)였다. 아무렇게나 뿌려댄 것도 아니었다. 일상생활의 세목 곳곳에, 그야말로 촘촘한 계산을 하고 또 해서 아지노모토를 광고했고, 그 광고는 북한 선수단에겐 어복쟁반이 딱인데 이오성 기자 냉면 한 그릇을 싹싹 비운 뒤에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실제로 별 갈증을 느끼지 못했다. “북한 냉면은 한 그릇 먹으면 하루 종일 물 생각이 안 난다”라는 그의 말이 아주 과장은 아니었다. 국물은 간을 한 듯 안 한 듯 순했고, 고기 향이 아주 옅게 배어 있었다. 유명 평양냉면집과 또 달랐다. ‘슴슴하다’라는 북한 말에 어울리는 국물 맛이 있다면 이런 것이리라. 윤종철씨는 서울에서 북한 음식점 ‘동무밥상’을 운영하는 요리사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그는 1998년 탈북해서 중국을 거쳐 2000년 한국에 들어왔다. 일용직...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잉여와 도구 임명현 지음, 정한책방 펴냄 “단순했던 전선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상대인지는 여전히 선명했지만 누가 동지인가 점차 불분명해졌다.” 노동자들의 파업 기사에 습관적으로 쓰이는 프레임이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 프레임은 똑같이 작용한다. ‘이번 파업으로 경제적 손실은 ○○억원에 달했고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 프레임을 썼다. 2007년 179일 파업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이 프레임이 노동자들을 옥죄는 말이라는 것을. 낡은 이 프레임이 또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언론사 내부다... 금천구, 청춘삘-딩을 아시나요? ADVERTORIAL ▶ 금천구 독산3동 위치, 연면적 354㎡ 규모 3층 건물 ▶1층 청년활동지원센터, 2층 세미나실과 청춘홀, 3층 청춘쿠킹스튜디오와 택이방 ▶ 소셜다이닝 사업 등 다양한 관계망 형성 프로그램 지원 어디를 가든 지역아동센터, 노인정, 복지관 등 수요자별 맞춤 공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20~30대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전용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대표 공간이라고 하는 곳이 카페뿐이다. 금천구(구청장 차성수)에 가면 청년들을 위한 전용 커뮤니티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청춘삘-딩’이다. ‘청춘삘-딩’은 ... 100년 전 광고로 본 중산층 가족의 하루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100년 전 현대 신사의 하루가 이랬다. 1922년 5월 어느 날 정릉물산(井菱物産)에서 일하는 선임 사원 운야호삼(運野好三)은 전날 벌어진 회식 탓에 늦잠을 잤다. 일어나 세수하러 달려간 운야는 양치질부터 시작한다. 급한 중에도 치약은 외제 치약 콜게이트(Colgate)가 아니라 국산 라이온이다. 오해 말자. 1922년이면 아직 제국 시대 아닌가. 여기서 국산은 일본제다.출근길의 애프터셰이브는 1914년 발매된 일본 화장품 레이트푸드 (Laitfood·レートフード)다. 면도만으로 신사의 체면이 서겠는가. 아내 애자(愛子)는 오리지 ‘맛알못’도 침이 고이는 음식 이야기 차형석 기자 어쩌다 유명한 맛집에 가서는 ‘이런 심심한 맛을 왜 그렇게 좋아하지(주로 담백한 맛의 음식들이다)’ 하며 속으로 투덜대는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제목은 왠지 훅 다가왔다. 그래, 알고나 먹자.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자라고 어떤 유통 과정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오는지는 알아두어야지 싶었달까. 약력에 따르면 저자는 ‘밥을 팔아 밥을 버는 사람’이다. 한때는 막일꾼이었고, 화물트럭 운전사였고, 인쇄로 밥을 먹던 사람이다. 그리고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했다. 식당에서 일했던 경험과 평생 농사만 지어온 ... MSG는 일본 ‘제국의 맛’이었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1905년 부산에서 〈조선일보〉가 창간된다. 오늘날의 〈조선일보〉와 아무 상관없는, 일본인 발행인과 편집인이 만든 일본어 신문이다. 이 〈조선일보〉는 곡절을 거쳐 1907년 〈부산일보〉로 완전히 몸을 바꾼다. 이 역시 광복 후 창간되어 오늘에 이른 〈부산일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본인에 의한 일본어 신문이었다.일제강점기 〈부산일보〉는 야망이 있는 신문이었다. 대구에 지사를 두고, 경성·진주·목포·울산·마산·진해·대전 등에 지국을 두더니 차차 몸집을 불려 1940년대에는 일본·만주국·중국 본토를 아울러 총 116개 지사 및 지국 총독부 지붕 능가한 아지노모토 광고탑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한국인은 언제부터 감칠맛 조미료 MSG를 먹었을까? 쉽게 말해 언제부터 미원을 먹었을까? 100년도 더 전부터다. 1908년 일본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세계 최초로 MSG 합성에 성공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듬해인 1909년 MSG는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상품명으로 일본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1910년에는 타이완과 조선에서도 아지노모토가 판매되었다. 일본·타이완·한국 사람들은 MSG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이를 입에 넣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 셈이다. 아지노모토는 여러모로 낯선 상품이었다. 그전까지는 단맛, 신맛, 쓴맛, 짠 부국강병은 육식과 우유로부터?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서양 사람들은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고기나 다른 음식을 덩이로 잘라 평평한 접시에 담아 먹을 사람 앞에 늘어놓으면, 오른손으로 호초(庖丁·칼)를 쥐고 잘게 썰어 왼손에 든 니쿠사시(肉刺·쇠스랑)로 꿰어 먹는다.”‘모든 일본인의 스승’으로 불리며 1만 엔권에 새겨진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가 가타야마 준노스케라는 이명으로 1867년에 펴낸 소책자 〈서양 의식주(西洋衣食住)〉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영어와 네덜란드어에서 자유, 권리, 회의, 연설 같은 새 번역어를 건져낸 인물이지만 나이프나 포크 앞에서는 별수가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