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비슷한 듯 다른 여정
  •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호수 623
  • 승인 2019.08.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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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젓갈과 일본의 다시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본의 다시는 국물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배가하는 조미료다. 쌀 문화권이라도 한 끼 밥상을 위한 음식 조합은 달랐다.
ⓒ오창현 제공다시마, 족발 등을 이용한 오키나와의 전통 가정식 요리.오키나와는 홋카이도와 중국을 잇는 중개무역의 중심지였기에 다시마가 널리 사용됐다.

 

요즘 사람들은 음식에 관심이 많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객의 SNS, 텔레비전 프로그램, 음식 관광 정보를 담은 서적 등 음식 이야기가 이렇게 풍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런 일상의 입맛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은근하면서 강력한 힘을 경제와 정치에 미치고 있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너무 평범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일상의 입맛을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 고려했다. 밀·밀가루·빵의 소비처럼 유럽인의 일상생활의 물질 ‘구조’ 위에서 유럽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발달 과정을 분석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동아시아인의 입맛에 좀 더 관심을 가진 이는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장을 지낸 이시게 나오미치였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는 주식인 쌀밥과 결합해 감칠맛을 내는 간장·젓갈 등의 조미료가 소소하면서 맛있는 밥상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는 밀가루·쌀· 옥수수 등 주식을 맛있게 먹기 위한 다양한 방법에 따라 문화권이 구별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전개했다.

분명 서로 가깝고, 심지어 바다를 마주보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감칠맛에 대한 열정은 상이하게 전개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복잡한 근대사를 겪으며 본래 어느 쪽의 입맛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도 많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점을 살필 수 있다. 모호한 경계 위에 있는 그 지점이야말로 문화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오늘 이야기할 ‘다시(出汁)’도 그중 하나다.

다시는 주요한 일본 요리에 모두 들어가 맛의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일본 음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시란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삶아 맛을 추출한 액체를 말한다. 일본 요리에서는 다시를 된장국처럼 각종 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간장과 함께 우동이나 메밀국수 국물에 쓰거나 채소 등 조림 요리의 간을 맞추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다시를 흔히 우리말 ‘육수’로 번역하는데, 육수(肉水)가 문자 그대로 고기를 삶아낸 물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전달하지 못한다. 동일하게 메밀 면을 사용하더라도 다시와 간장 베이스에 ‘찍거나 넣어’ 먹는 소바와 소고기 육수 베이스로 국물과 함께 마시듯 먹는 평양냉면은 한·일 음식 문화의 차이를 함축하고 있다.

오뎅 국물의 낭만은 한국에만 있다?

일본에서는 다시가 국물이 아니라 음식의 맛을 만드는 기본 조미료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뎅과 오뎅탕이다. 20여 년 전 일본 나라현의 한 가정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저녁 식사로 오뎅이 나왔는데, 필자에게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우선 오뎅에 어묵이 없었다. 손님인 필자에게 다른 여러 재료 중에서 하필 무를 먼저 덜어주었다. 당시 한국의 오뎅 가게에서 무는 팔지도 먹지도 않는 재료였다. 초봄의 다소 쌀쌀한 날씨였는데, 오뎅 국물도 덜어주지 않았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상의 당혹감이 해결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오뎅은 어묵이 아니라 요리의 명칭이었다. 오뎅은 사쓰마아게, 한펜, 치쿠 같은 다양한 종류의 어묵과 곤약, 무, 감자, 유부, 소 힘줄(우스지), 삶은 달걀, 두부튀김 등의 재료를 넣어 만든 요리였다. 오뎅과 어묵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둘째, 일본 오뎅에 들어가는 무는 메인 요리였다. 한국에서도 양파·파·고추 등과 함께 무를 넣어 국물을 만든다. 국물에 넣어 끓인 무는 본래의 맛이 빠져 효용을 다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오뎅의 무는 다시의 맛이 배게 해 먹는 메인 요리이다. 나라의 가정집에서 내게 무를 먼저 덜어준 것은 무에 비교적 양념이 빨리 배기에, 손님에 대한 배려로 권한 것이었다.

셋째가 매우 중요하다. 다시는 요리의 목적, 즉 먹기 위한 국물이 아니라 재료의 맛을 배가하는 조미료이다. 이 점에서 추운 겨울 몸을 녹이며 호호 불어 먹는 오뎅 국물의 낭만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화일 수 있다. 우리에게 장조림의 목적이 조미한 고기이기에 국물을 잘 먹지 않듯 일본인 역시 오뎅 국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일본인은 오뎅을 한국인처럼 밥과 함께 먹는 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주 유사하지만 또 다른 이런 음식 문화 감각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일본에서 다시 재료나 가공 방식은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 다양성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가다랑어(가쓰오), 고등어(마루사바), 물치다래, 황다랑어 등으로 만드는 ‘부시(節)’가 있다. 부시는 물고기의 몸통을 잘라 삶은 뒤 여러 번 훈제한 것에 곰팡이를 입혀 수분을 최대한 줄인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17세기경에 확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분이 날아가 딱딱해진 부시를 전용 도구로 얇게 깎은 것을 삶아 감칠맛 성분을 추출한다. 가정에서는 가다랑어를 원료로 한 가쓰오부시 국물을 많이 사용하지만, 강한 맛과 독특한 풍미가 필요한 메밀국수 가게에서는 사바부시(고등어)나 물치다래로 만든 소우다부시(宗田節)를 선호한다. 또 고급 요리점에서는 참다랑어가 사용된다.

다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공품인 니보시(煮干し, 삶아 말린 것)가 있다. 니보시는 한 번에 대량으로 어획되는 작은 물고기를 삶아 말린 것이다. 물고기를 건조하기 전에 삶는 이유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부패 방지이고 다른 하나는 감칠맛 성분인 아데닐산과 이노신산의 변질을 열로 멈추는 것이다. 앞서 부시를 만들 때 한 번 삶는 것도 동일한 목적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멸치 니보시가 생산량이 가장 많다. 다시를 만드는 데 멸치의 사용이 우리만큼 절대적이지 않으며 멸치 외에도 정어리·샛줄멸·전갱이·도미 등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사용된다.

세 번째로는 정어리, 멸치, 문절망둥어(꼬시래기), 날치 등의 내장을 제거하고 숯불 등으로 찬찬히 구운 뒤 말린 야키보시(焼き干し, 구워 말린 것)가 있다. 산간 지역에서는 곤들매기나 피라미 등이 사용되기도 한다.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지방의 멸치 야키보시, 미야기현의 문절망둥어 야키보시, 나가사키현 등 규슈 북서부의 날치 야키보시가 유명하다. 니보시와 달리 삶지 않기에 감칠맛 성분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강하며, 내장을 제거해 잡미가 적다. 단, 제조에 시간이 걸리므로 값이 비싸다. 야키보시는 일조량이 적어 건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동북 지방이나 산간 지방에서 발전시킨 독특한 가공법이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식물성 재료인 표고버섯이나 다시마도 널리 사용된다. 식물성 다시는 12세기 말 중국에서 수행한 선승이 일본에 전달한 정진 요리와 함께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생을 하지 않는 불교문화 속에서 동물성 식재료와 비슷한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다시마는 가쓰오부시와 함께 현대 일본 요리의 대표 재료이다. 다시마는 한류 지역에 서식하기에, 홋카이도와 혼슈의 동북 지방 주변이 주요 산지다. 보통 최상급 다시마는 홋카이도의 리시리섬(利尻島) 연안에서 채취되는 ‘리시리 다시마’로 담백하고 품위 있는 맛이 난다. 홋카이도 최남단의 하코다테를 중심으로 홋카이도 남해안에 서식하는 ‘마콘부’는 감칠맛과 단맛이 강하다. 다시마는 제조 과정이 단순하지만, 단순함에도 종류와 품질이 달라지며, 당연히 가격도 다르다.

사실 다시는 앞서 언급한 재료 중 몇 가지를 조합해 만들기 때문에 맛이 복잡하고 진해진다. 다만 많은 종류의 다시를 비슷한 비중으로 섞지는 않는다. 다시마라면 다시마, 가다랑어라면 가다랑어처럼 중심이 되는 다시 재료가 있고 다른 재료는 조역이다.

다시는 에도 중기 이후 간장의 연한 감칠맛을 강화하기 위해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일본에서 다시 재료의 다양성은 간장 문화에 대한 선호가 확산되는 과정 속에서 지역 환경에 적응하고, 다양한 지역적 변이가 전개돼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량생산·유통이 일반화되기 전에 자기 주변 환경을 이용해 음식 문화 체계를 완성해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적인 지역 다양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우리 식탁 문화를 살펴보자. 기본 조미료인 다시에 해당하는 것은 육수가 아니라 젓갈(혹은 젓국)이다. 젓갈은 감칠맛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다시와 간장이라는 조미료의 조합이 필요하지 않아 번거롭지 않다. 젓갈은 일본의 다시와 마찬가지로 새우·멸치를 필두로 꼴뚜기·병어·바지락·굴·낙지·광어·송어·황강달이(황새기)·갈치·오징어 등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또 각 가정집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인이 다시를 사용하는 각종 탕, 찜, 무침 등의 장면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액젓을 넣어 감칠맛을 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젓갈은 20세기를 거치며 한국인의 상찬 중 하나인 김치에 빠질 수 없는 조미료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 등 동부 지역에서는 젓갈 대신 명태 머리를 삶은 국물을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오창현 제공일본 가고시마현 마쿠라자키의 재래식 가쓰오부시 제조 공장에서 훈제를 하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 젓갈의 지위

한국의 젓갈과 달리 일본이 다시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문화적 배경이 자리한다. 한 설에 따르면, 일본에서 젓갈은 과거 최상류층의 상찬이었지만 에도 중기 이후 간장이 고급 문화로, 젓갈이 ‘저급한’ 서민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에 근대를 거치며 젓갈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간장과 다시 사용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일본에서도 동해에 접한 도야마현이나 아키타현 등 간장을 대신해 액젓을 어(魚)간장으로 사용하는 지역이 곳곳에 있지만,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는 미미하다.

이제 많은 한국인은 일본식 다시 사용에 익숙하다. 거의 전적으로 다시 재료로 멸치를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다시마·표고버섯을 함께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다시 사용은 대부분 국물 요리에 국한된다. 다시는 간장과 조합되어 감칠맛을 내는 기본 조미료라는 인식보다 국물을 만드는 한 과정, 즉 육수 문화의 일부로 수용되어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동일한 쌀 문화권이라도 한 끼 밥상을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 조합은 한·일 양국에서 미묘하게 갈라지며 전개돼왔다. 맛있는 밥을 먹으려는 매우 일상적인 욕망은 자국 내 식료품 생산이 여전히 불충분하던 20세기 전환기에 제국주의와 상호 작용하며 전개되었다. 일본 어민은 다시 재료인 멸치를 찾아 한반도로 넘어오기도 하고 가다랑어를 찾아 남태평양까지 구로시오 해류를 거슬러 내려가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 어민의 이동은 새로운 음식 문화, 어민 문화, 가공 기술이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문화는 그대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토양 위에서 미묘하게 엇갈리며 정착했다.

급속한 문화 전파로 무엇이든 비슷해져가는 듯 보이는 현대인의 물질세계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듯하지만 모호한 경계 위에 있는 문화. 한·일 다시 문화에서 볼 수 있듯, 문화가 전파되고 수용되는 경계 위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 나아가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너무 작고 흔하고 익숙해서 돌아본 적이 없는 물고기, 멸치를 둘러싼 한·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볼 준비가 된 것이다.

※ 10월2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막 예정인 한·일 공동 기획전 <미역과 콘부>를 함께 기획하고 있는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마쓰다 무쓰히코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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