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소원은 검찰·공정위의 사과”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시사IN〉 창간 전부터 취재원으로 인연을 맺은 중소기업인이 있다. 지금은 망해 없어진 설비업체 ㈜한진건업 반성오 전 대표다. 반성오씨는 올해로 16년째 삼성과 삼성을 편든 국가기관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04년 초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전기 부산공장 신축 공사 하청 계약을 59억여 원에 체결하고 그해 여름 공사를 완료했다. 그러나 삼성 측이 총 공사대금 중 24억여 원을 주지 않아 그는 28년 만에 자식처럼 키워온 사업체를 접어야 했다. 반씨는 즉각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제소했다. 그러... 5.18 어느 진압군의 고백 정희상 기자 이경남 목사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된 특전사였다. 제11공수여단 63대대 9지역대 소속 일병으로 동료 1000여 명과 함께 5월19일 광주에 투입됐다. 이틀 뒤 5월21일 그는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을 지켜봤다. 이 목사는 1999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진압군 측으로서는 처음 수기를 발표했다. ‘5월의 회고-어느 특전병사의 기록’이라는 글이었다. 다음 해 전태일문학상(생활글 기록문 우수상)을 받았다. 두려움과 내부 비난을 무릅쓰고 소속 부대가 저지른 학살극을 뒤늦게 고... 기자들의 시선 정희상 기자 이 주의 논쟁민갑룡 경찰청장이 폐지 여론을 무릅쓰고 청룡봉사상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1967년 시작된 청룡봉사상은 경찰청과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다. 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외에 ‘1계급 특진’ 인사 특전이 주어진다. 경찰과 언론사 사이 유착을 우려해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되기도 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부활했다. 고문경관 이근안과 장자연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이 이 상을 받고 특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근 폐지 여론이 거셌다. 경찰은 청룡봉사상의 문제점을 개선해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최종 심사는 여전히 〈조선일보〉 편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01030859395 이름:권보미(40) 주소:세종특별시 달빛로 권보미씨는 정부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아버지 권유로 7년 전 〈시사IN〉을 접했다. 권씨는 “우리 부녀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표방한 창간 정신을 높이 사서 응원하려고 정기구독자가 됐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세종시에서 외손주를 돌보며 노후를 보낸다. 권보미씨는 유치원생 아이를 둔 학부모라서 교육 관련 지면을 챙겨 읽는다. 최근에는 ‘20대 남자 현상’ 커버스토리를 인상 깊게 읽었다... 윤봉길 의사 진면목 잘못 알려졌다 정희상 기자 도시락 폭탄, 백범 김구의 행동대장, 효창공원 묘지. 윤봉길 의사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이미지다. 흔히 알고 있는 이런 내용이 정말 사실일까?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을 오가며 윤 의사에 대한 새로운 실증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잘못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 윤 의사의 상하이 의거 87주년을 앞두고 〈윤봉길 평전〉을 펴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이 전 장관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잘 몰랐던 윤봉길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는 예산중학교 2학년 시절 굴욕적인 한일회담 규탄 시위와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날을... “나경원, 수렁에 빠졌다” 정희상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김정륙씨(85)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외아들이다. 반민특위는 1949년 6월 친일파 경찰의 습격을 받고 사실상 해체됐다. 그는 아버지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193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났다.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이던 1949년 김정륙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그해 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이 대통령은 ‘살살 다루고 다 풀어줘라. 노덕술을 포함해 경찰을 다 풀어줘라’ 하고 명령하듯 말했다. 이어 ‘몇 달 안 약산 김원봉 욕보이는 빨갱이 프레임 정희상 기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전히 남북에서 잊힌 이들이 있다. 의열단 단장 약산(若山) 김원봉 선생이 대표적이다. 약산의 독립운동이 오랜 금기를 깨고 조금이나마 알려진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2015년과 2016년 잇따라 개봉한 영화 〈암살〉과 〈밀정〉은 뒤늦게나마 후세가 약산의 독립운동 공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이었다. 약산은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였다. 일제가 백범 김구 선생에게 내건 현상금 60만원보다 많은 100만원을 내걸 정도였다. 1919년 조선의열단(의열단)을 창단한 약산은 크고 작은 ... 4·19혁명 도화선 김주열 가족의 59년 정희상 기자 “자식 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중략) 마산 시민 여러분이 보여주신 그 거룩한 뜻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 자식 주열이는 신선이 되어 올라갔을 겁니다. 마산 시민 여러분, 이제 안심하십시오(1960년 5월8일 김주열 열사 어머니 권찬주 여사가 마산 시민에게 보낸 편지).” 1960년 3월15일 마산상고 신입생 김주열은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얼굴이 관통당한 채 사망했다. 경찰은 그의 사체를 쇠사슬로 묶은 뒤 돌을 매... 여성 독립운동가 공적을 기리는 협동조합 정희상 기자 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택수(95·오른쪽)·김영준(66·왼쪽)씨 부자는 ‘가족사랑나라사랑협동조합’이라는 이색 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한다. 선대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이 협동조합에서 아버지 김택수씨는 이사장을 맡고, 아들 영준씨는 상임이사로 활동한다. 김영준 이사의 외할머니는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노순경 지사다. 지금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여옥사에는 유관순 열사와 나란히 노순경 지사의 수형 기록 등 독립운동 공적물이 전시돼 있다. 노순경 지사... 김마리아 열사에게 ‘대한민국장’을 허하라 정희상 기자 3·1운동 하면 대개 유관순을 떠올리고 기린다. 김마리아 역시 3·1운동과 뗄 수 없는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도쿄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들여와 널리 알렸다(38~39쪽 기사 참조). 이후 서울에서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제에 체포됐다. 고문을 당해 병마로 평생을 시달리면서도 독립운동 의지를 꺾지 않았다.3·1운동 이후에도 그는 전국 단위 여성 항일운동 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군 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그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여 두 발로 기록한 오래된 가게 이야기 정희상 기자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숨은 듯 드러난 듯 다양한 ‘백년 가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창간 멤버인 이인우 선임기자(59)의 말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오래된 가게들이 명멸해가는 세태 속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찾고자 했다.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작은 가게들의 일상을 통해 서울이란 대도시의 산업과 풍속, 문화의 변천상을 읽어내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렇게 지난 1년간 서울 구석구석을 누벼 24개 가게를 추렸다. 동숭동 대학로 ‘학림다방’부터 쇠를 다... 민간인 학살의 기원은 무엇인가 정희상 기자 1999년 나는 ‘제주인권학술회의’ 주최 측으로부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한 발제를 요청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 태동의 산파 구실을 한 제주인권학술회의가 5·16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정식 인권 의제로 올리는 자리였던 만큼 부담이 컸다. 1999년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역사학)가 펴낸 〈조봉암과 1950년대〉 (역사비평사)가 한줄기 빛이었다. 특히 ‘피해 대중과 학살의 정치학’이라는 부제를 단 하권에 나온 진보당 사건 관련 저자의 해석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민간인 학살 피해 대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 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1990년 월간지 〈말〉 초년 기자 시절 대령 출신 지만원씨를 취재원으로 처음 만났다. 정치군인들의 권력욕과 물욕에 환멸을 느꼈던 그 시절 지씨와의 만남은 신선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서구식 합리주의를 전파하는 전도사를 자임했다. 지씨는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육사 출신 정치군인 모임인 ‘하나회’의 실상과 부조리를 기자에게 제보해 여러 차례 특종을 안겨준 이도 그였다. 무기 도입 사업 비리에 대한 제보도 했다. 1990년대 초·중반 지씨와 함께 만든 기자의 특종은 지씨를 정치적 주목... 조봉암이 떠난 지 60년, 딸의 간절한 염원 정희상 기자 “피고인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여 (중략)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 후 진보당 창당과 관련한 이 사건 재심 대상 판결로 사형이 집행되기에 이르렀는바,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 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고, (중략) 이상과 같은 이유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간첩죄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11100396 이름:박태수(51) 주소:전남 강진군 “고생이 많소, 5년 동안 〈시사IN〉 잘 읽고 있는디 요새 하도 살림이 팍팍해져서 얼마간이라도 쉬었다가 다시 볼라요.”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 박태수씨가 수화기 너머로 미안해했다. 구독을 중단해도 괜찮으니 ‘독자와의 수다’만은 진행하자고 했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박씨는 5년 전 파지 더미에서 〈시사IN〉을 처음 접했다. “책을 꺼내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잡지도 있구나 싶어서 바로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기자들이 감옥에 갈 용기가 없고서는 이런 기...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발로 쓴 현장 취재 기사에 독자들이 호응했다.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피해자들의 오늘을 다룬 김영화 기자의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죽음 옆에 눕다’ 기사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 sisain)에 “섬세한 현장 취재 좋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제591호 커버스토리 ‘선전 중국을 일으킨 도시’도 개혁개방 1번지를 찾아 ‘중국의 오늘’을 다룬 르포 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독자들은 무엇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높이 샀다. 2009년 옥쇄 ... 가짜 독립유공자 국립현충원에 누워 있다 정희상 기자 서울 노원구 불암산 자락의 한 빌라에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세걸씨는 국립현충원에 묻힌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데 20여 년을 바쳤다. 그동안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가짜 독립유공자 5명을 밝혀내 줄기차게 서훈 취소와 묘 이전을 요구했다. 또 국가보훈처가 가짜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수십 년 동안 지급한 연금을 국고로 환수하라고 촉구해왔다. 김세걸씨는 2018년 10월1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가짜 독립운동가 포상은 일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한 애국선열에 대한 모독이요,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대체 어떤... “독립운동 집안 숨기려 성을 바꿔 살았다” 정희상 기자 1942년 봄, 중국 시안에 있던 임시정부(임정) 광복군 훈련소에서 한 젊은 여성이 허드렛일을 도왔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남편을 일제 경찰의 흉탄에 잃은 홍매영이었다. 백범 김구 주석이 그를 불렀다. “일제에 남편을 희생당하고 고생하는데 동암 선생도 망명 생활을 하면서 식구를 잃고 홀로되었으니 나이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이 화촉을 밝히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어떻겠는가.” 백범은 이렇게 서른 살 홍매영과 예순두 살 동암 차리석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차리석은 평양 숭실학교 졸업 후 신민회에 가입했다. 1911년...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10·26의 또 다른 주역이 다시 소환되었다. 지난해 10월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코너에서 다룬 ‘육군참모총장감 박흥주의 선택(제524호)’ 기사가 올해에도 주목받았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sisain)에 “그분들이 나라를 살렸다” “진정한 애국자” 등 댓글이 달렸다. 지금이라도 명예회복을 시키고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댓글이 호응을 받았다. 박정희 독재 체제에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뒤늦은 재심과 무죄, 비운의 가족사(제58... [공작] 책으로 되살아난 대북 첩보 세계 정희상 기자 원 〈시사저널〉 시절인 1996년, 기자는 안기부(현 국정원) 특수공작원 신분이던 박채서씨를 만났다. 흑금성 공작의 주인공 박채서씨는 한국 첩보공작 사상 최초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대남 안보 라인을 뚫은 스파이다. 국정원 역사상 뛰어난 첩보원 실력을 자랑하던 박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6년 형기를 꽉 채운 후 출소했다. 그는 옥중에서 특수공작원 활동을 빼곡히 정리했다. 대학 노트 4권 분량이었다. 출소 뒤 이를 김당 기자가 넘겨받아 재정리했다. 영화 〈공작〉의 바탕이 된 책이다. 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