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기록한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정희상 기자
  • 호수 593
  • 승인 2019.01.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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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숨은 듯 드러난 듯 다양한 ‘백년 가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창간 멤버인 이인우 선임기자(59)의 말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오래된 가게들이 명멸해가는 세태 속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찾고자 했다.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작은 가게들의 일상을 통해 서울이란 대도시의 산업과 풍속, 문화의 변천상을 읽어내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렇게 지난 1년간 서울 구석구석을 누벼 24개 가게를 추렸다.

동숭동 대학로 ‘학림다방’부터 쇠를 다루는 ‘동명대장간’, 시민이 지켜낸 ‘홍익서점’, 동네빵집 ‘동부고려제과’, LP 보물창고 ‘돌레코드’ 등. 카페, 전시 공간, 서점, 음식점, 양복점, 대장간 등 다양한 종류의 24개 가게 모두가 속을 들여다보면 서울 사람들의 애환 서린 풍속사이자 문화사다. 그 결과물이 최근 펴낸 <서울 백년 가게>다.

ⓒ시사IN 윤무영

처음에 제목만 보고 서울에도 실제 100년이 넘은 가게들이 꽤 많은 줄 알았다. 이 기자는 “장안에서 찾아낸 가장 오래된 가게들은 대개 60여 년 안팎의 역사를 지녔다. 오래됐고 미래가 기대되니 ‘백년 가게’로 정의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24개 가게를 섭렵하면서 오랜 업력을 이어가는 이들의 성공 비결, 장사 철학, 경영 노하우 등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창업자 또는 계승자들이 자기 가게에 한결같은 열정과 성실함,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또 성공이 반드시 가게의 장수를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시대 흐름이나 소비 패턴 변화가 가게에 어떻게 작용했느냐, 좋은 동반자나 조력자가 있었느냐 여부가 열정과 성실함 이상의 무기로 보였다.”

가장 감동을 받은 가게가 어디냐고 묻자, 이 기자는 중랑구 망우역 근처에서 45년째 문을 연 10평 남짓한 작은 빵집 ‘동부고려제과’를 꼽았다. 큰형이 창업한 가게를 1990년대에 동생이 물려받아 박사과정 딸, 건축학과 졸업 후 제빵을 배우기 시작한 아들 등 온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창업 희망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팁을 부탁했더니 ‘돈만 생각하면 빵 장사 못한다, 내가 왜 빵 장사를 하는가 라는 소신, 빵 장사에게는 그런 게 있어야 한다’던 주인의 자부심 어린 말이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한겨레> 문화부 부국장을 거쳐 <씨네21> 대표이사를 지낸 후 다시 발로 뛰는 취재 현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작은 꿈이 생겼다. 백년 가게와 만난 경험을 살려, ‘한·중·일 3국 고전 전문서점’을 여는 것이다. 생뚱맞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2016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논어>를 소개한 책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를 펴내는 등 동양 고전에 심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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