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가 꼭 괴로워야 해? 즐겁게 실천할 수 있는 끊기도 있지 않을까?’ 2009년 〈시사IN〉 연중기획 ‘기자 체험-끊고 살아보기’는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됐다. 연재 첫 회 때 예감한 대로 나 하나쯤 대형마트 끊는다고, 밀가루를 끊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익숙하고 낡은 소비·생활 습관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나와 주변 사람과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사IN〉 기자들은 생각한다. 이런 움직임이 하나 둘씩 쌓일 때 세상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대형마트(제68~71호), 페트병 생수(제100~104호) 김은남 기자
겁 없이 일을 벌였다. 그것도 두 개나. 대형마트와 페트병 생수 끊고 살기. 결론적으로 후자는 절반만 성공했다. 집에서는 확실하게 페트병 생수를 끊고 수돗물을 마시는데 집 밖에서는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기사가 나간 뒤 “페트병 생수 대신 개인병에 미리 물을 준비하고 걷겠다”라던 강화올레 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한향란
반면 대형마트는 확실하게 발걸음을 끊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딱히 불편할 일도 없었다. 식료품을 살 때에는 집 근처 생협, 소소한 생활용품을 살 때에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이용했다. 그런데 ‘소비자’ 아닌 ‘기자’로서는 대형마트 갈 일이 계속 생겼다. 2009년은 희한할 정도로 대형마트와의 악연이 계속됐다. 대형마트 끊고 살기 연재를 마칠 즈음 충북 청주에 산다는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청주 최대 대형마트가 24시간 영업을 선언한 데 이어 주택가 곳곳에 대형마트 자매사라 할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서면서 재래시장 상인과 동네 구멍가게 주인들이 죽어난다는 전화였다. 가서 보니 짐작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에서 확인하신 대로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한 약자들의 고통은 대통령도 외면할 수 없었던 2009년 핫이슈 중 하나였다.

연말에는 심야·연장 근무를 주로 하는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기사로 다루게 됐는데(제114호 커버스토리 ‘잠을 허하라’), 그러다보니 또 대형마트와 부딪칠 일이 생겼다. 24시간 근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대표적 업태가 대형마트였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 〈시사IN〉은 대형마트 취재에 애를 먹는다. 매장 사진 찍는 것조차 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대형마트에서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기자는 반(反)시장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국제 표준 내지 상식 정도만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형마트가 주택가 깊숙이 침투해 있거나 24시간 영업하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대형마트가 한 발짝만 양보하면 동네 상권도 살고, 노동자도 행복하고, 에너지도 아낀다는데, 이게 참 왜 그리도 쉽지 않은지.  

휴대전화(제73~76호) 오윤현 기자
사람들, 참 웃긴다. 내 휴대전화를 시끄럽게 울리게 한 뒤 점잖게 묻는다. “아직도 휴대전화 끊기 해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휴대전화를 끊은 지 50여 일 만에 다시 전화기를 충전하고, 다시 ‘유령진동증후군’(다른 사람 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그랬다. 휴대전화 끊기는 두 달을 못 갔다. 핑계 같지만 내 의지는 아니었다. 느긋하고 조용한 편이라, 그깟 휴대전화 없이도 서너 달은 물론 1년도 버틸 수 있었다(후배가 사준 공중전화 카드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한데, 주변이 시끄러웠다. 어쩌다 접선이 되면 하나같이 “갑갑하다” “너만 고고하면 다냐?”라는 말을 내뱉었다.

결과적으로 세상 물결에 다시 휩쓸리고 말았지만 ‘불통의 즐거움’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다시 ‘준비, 땅!’ 할 작정이다. 지갑 속 공중전화 카드를 아직도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오윤현 기자

술(제77~80호) 이오성 기자
술을 다시 마신 지 10개월이 되어가건만 요즘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묻는다. 술 계속 끊고 있느냐고. 한 독자는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뒤에도 “제가 실패했던 일을 하시네요. 술 끊기 계속 응원하겠습니다”라며 메일을 보내왔다. 민망해서 답장조차 보낼 수 없었다. -_-;
그래도 한 달 동안 술을 끊어본 의미는 컸다. 우선 주위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널 다시 봤다”라는 친구들의 격려부터, “내 아들이 아주 맹탕은 아니었구나”라는 부모님의 칭찬(?)까지.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스스로도 ‘의지의 화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뭔가 해냈다는 ‘자긍심’이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한향란
김영춘 전 국회의원은 요즘 ‘2차 술자리 끊기’를 실천 중이다. 안 그래도 다음 날 숙취 탓에 일상생활이 어려워 술자리를 줄이려 했는데 〈시사IN〉의 술 끊기 기사가 ‘자극’이 되었단다. 지난 4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9개월째다. 겨우 한 달 술 끊기로 꼬리를 내리고 만 기자보다 한 수 위다. 김 의원은 “숙취로부터 해방되니 다음 날 활동량도 많아지고 책 읽을 시간도 늘어서 좋다”라며 웃었다. 이번에는 기자가 김 전 의원으로부터 자극을 받을 차례인 것 같다. 

ⓒ한향란
밀가루(제81~84호) 박형숙 기자
나의 밀가루 끊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제 와 말이지만 당시 나는 ‘임신 중’이었다. 밀가루를 타깃 삼은 건 제일 뿌리치기 어려웠던 품목이었던 까닭. 독자와의 약속으로 한 달을 버텼다. 하나 금기가 욕망을 부른다고, 미션이 끝나자 나의 혀는 다시 자장면·떡볶이·빵을 찾았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뱃속의 아기가 날 붙들었다. 한 번씩 참기 어려울 때만 맛보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게 서서히, 지속적으로 밀가루는 내 일상에서 멀어져갔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간식’을 엄청 먹어대야 하는 모유 수유부이다. 세상 엄마들은 다 알겠지만 육아는 보통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이 아니다. ‘먹는 낙’으로 버틴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미역국이 주조를 이루는 세 끼 식단에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건 간식. 이제 나는 빵집 대신 떡집에 가는 게 자연스럽고, 기왕이면 우리밀 빵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빵집을 찾으며, 하얀 크림빵보다 노란 호박고구마의 단맛이 더 좋다. 어쩌다 일반 밀가루 음식을 입에 대었다 하면 뱃속이 부글부글 즉각 반응한다. ‘몸의 말’을 알아듣게 된 것이다.  

담배·엘리베이터(제91~94호)  정희상 기자
담배와 엘리베이터 끊기에 동시 도전했을 때 나는 무심코 되풀이해온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바꾸는 데 이만한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록 엘리베이터 타는 생활은 예전으로 복귀했지만 담배 끊기는 그대로 유지해 12월22일자로 금연 만 7개월을 넘긴다.  

한 달간의 도전에 성공한 뒤에는 스스로에게 보상도 주었다. 지난여름 불문곡직하고 안식성 휴직계를 낸 뒤 세계의 지붕이라는 네팔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7월10~25일 해발 5350m에 자리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그 옆에 우뚝 선 ‘칼라파타르’(해발 5550m) 봉우리를 등정했다. 평소 등산이라면 동네 앞산도 가기 힘들어했던 내가 세계 최고봉의 언저리 설선을 밟는 데 성공했으니 어찌 그 성취감을 평생 잊겠는가.
금연 시간이 길어지니 뜻밖의 부작용도 생겼다. 다섯 달 만에 몸무게가 무려 6kg이나 는 것이다. ‘이번에는 육류와 술이다.’ 11월 초부터 혼자서 살짝 도전한 새로운 끊고 살기 덕분에 달포 만에 몸무게 7kg을 줄였다. 끊고 살기 도전이 선사해준 것은 건강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이제 어떤 영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까짓것 못 끊을 게 없을 듯하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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