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 주저앉아 담배와 이별하다
  • 정희상 기자
  • 호수 91
  • 승인 2009.06.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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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체험 ‘끊고 살아보기’ 6탄 - 엘리베이터와 담배 ① 왜 엘리베이터와 담배인가
   
올봄 들어 유난히 몸이 무거워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 기자 생활 20년차이니 나이 탓도 있을 게다. 원래 발로 뛰어야 사는 직업인데 요즘 늘어져 발로 뛰지 않아서일까. 그런 이유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분 발 대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다 알아서 데려다준다. 늘어나는 뱃살을 빼고, 건강한 기자 활동을 계속하려면 뭔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늘 다짐하곤 하지만 계기를 잡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했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집에서 독립문 <시사IN> 편집국까지 거리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약 1시간10분. 지하철 5호선과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출퇴근 과정은 대부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에 의지하므로 실제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듯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민으로서 나는 그동안 애써 계단을 이용해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달 열린 <시사IN> 독자위원회에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끊기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제안됐다.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내가 도전해보겠노라고 자청했다. 벌써 3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왜 3주일 지나서야 끊기 도전을 시작하느냐고?

당초 엘리베이터 끊기 D-데이는 5월18일로 잡았다. 아파트 16층인 우리 집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데는 계단이 231개 있다. 내려가는 길이어서인지 출근길은 ‘이쯤이야’ 싶을 정도로 가뿐했다. 5분쯤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해 차를 타기까지 계단 40여 개를 이용한다. 이어 50분쯤 뒤 서대문역에서 내리면 지상에 나오기까지 역시 계단 40여 개가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시설이 잘 돼 있어 출근시간에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틈에서 나는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버리고 계단으로 걸어 나왔다. 회사는 6층이므로 첫날은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 올라갔다. 이마에 땀은 뱄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흡연하며 엘리베이터 끊기는 힘들었다

   
엘리베이터를 끊고 6층 <시사IN> 편집국 계단을 오르는 정희상 기자.
엘리베이터 끊기 첫날 취재 장소는 용산 순천향병원이었다. 용산 참사로 철거민 5명이 불에 타 숨진 지 4개월이 넘도록 유가족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외로운 합숙 투쟁을 벌이고 있다. 참사 100일을 기해 특집 기획기사를 다룬 뒤, 이어서 검찰이 감추는 용산 참사 수사기록에 대한 폭로 기사를 보도했는데 유족 측에서 책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시사IN>을 기증할 겸 후속 취재를 위해 순천향병원을 찾은 것이다. 회사에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역인 왕십리역에서 한남역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유감스럽게도 계단이 없고 오로지 에스컬레이터만 있다. 하는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뒤 한남역을 빠져나와 순천향병원 4층 영안실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유족을 만났다.

첫날 의욕적으로 도전한 엘리베이터 끊기는 귀갓길에 만만찮은 복병을 만나고야 말았다. 담배였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일부 취재원과 저녁 식사 후 반주로 소주 한 병 남짓 마셨는데 기분은 괜찮았다. 집 앞에 도착해 16층 계단을 오르는데 한층 한층 발을 옮길수록 힘들고 숨찬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층마다 12개, 9개, 12개, 9개 이렇게 계단 숫자를 세가며 오르다가 9층 무렵에서 ‘12-6, 7, 8…’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심한 기침 가래와 더불어 고통스럽게 숨이 차올라서 더 이상 계단을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순간 ‘흡연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끊겠다는 것은 미친 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끊기 과제를 수행하려면 담배를 함께 끊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고강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며 늘 가까이하는 술과 담배는 아직도 많은 기자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다. 그래도 요즘 기자들은 옛날 선배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걸핏하면 낮술에 파묻혀 살던 기자 문화는 이제 옛이야기다. 기사 마감 후 선후배가 강제로 술자리로 끌어내 의기투합하는 문화도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의 건강이 예전에 비해 나아졌느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기자 대다수는 특종을 좇고 마감에 쫓겨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세계에서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독한 술자리는 여전히 기자들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다. 마감에 임박해서는 줄담배에 의지해 중압감을 이겨나가는 기자 또한  여전히 많다. 나도 지난 19년 동안 그런 기자 생활에 익숙해 있다. 아니 중간에 딱 3년은 빼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3년간 금연을 했었다.

2002년 초, 당대의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골초였던 그는 폐암 투병 막바지에 방송에 나와 금연을 호소했다. 당시 나는 이주일씨가 세상에 남긴 금연 호소를 특집 기사로 다루면서 20년 가까이 골초였던 나 자신에게도 금연을 선언했다. 내가 작성한 금연 선언 수기가 당시 <시사저널>에 기사로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금연은 2005년 여름까지 3년여 유지됐다. 그러나 이무렵 ‘<시사저널> 사태’의 장본인이었던 금창태 사장과 견디기 어려운 갈등이 시작됐다. 결국 2005년 초가을 나는 금 사장을 핑계로 다시 담배에 손을 댔다. 3년여 전 독자에게 금연 수기까지 실었기에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앞에서 그냥 도망가고만 싶었다. 3년 금연의 공든 탑이 무너질 무렵, 당시 KBS 정연주 사장과 광화문에서 술좌석을 갖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금창태 사장 때문에 3년 끊은 담배에 다시 손댔다’라고 하소연했더니 정연주 선배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 사람아, 나는 15년간 금연해오다가 요새 KBS 노조 사태로 골치가 아파 다시 담배에 손댔다네.” 당시 노조 일각의 사장 퇴진 운동으로 정연주 선배가 골머리를 앓던 시점이었다. 이날 밤 정연주 사장과 나는 ‘돌아온 골초’의 처지를 서로 위로하겠다는 듯 연방 줄담배를 피워댔다.

몇 년 끊었다가 다시 담배에 손을 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난 금연 기간에 굶은 니코틴을 곱절로 보충해야 한다고 몸이 보채는 듯 과거보다 더 많은 담배를 피우게 됐다. 마치 흡연자의 건강을 생각해주는 것처럼 순한 담배나 저타르·저니코틴 담배가 쏟아져나오지만 이 또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나도 저타르·저니코틴 담배로 다시 시작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많게는 서너 갑에서 최소 두 갑은 피우게 된다. 담뱃값도  만만치 않아 가끔은 ‘이 돈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거나 로또를 산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엘리베이터 끊기에 도전하면서 비로소 생애 두 번째 담배 끊기까지 재도전하기로 했다. 다시 금연을 시작하니 하루하루 머리가 가벼워지고, 계단 오르내리는 일도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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