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힝구의 사랑’으로 읽었다는 트위터 글을 본 뒤 내게도 계속 그렇게 보였다. 서너 번 잘못 읽은 뒤 마침내 〈항구의 사랑〉을 집어 들었다. ‘내가 어릴 때는 요즘과 달리 부모들이 아이를 일찍 학교에 보내려 했다’라는 첫 문장을 본 게 방금 전이었는데 어느새 끝 문장을 읽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다.
항구도시 목포를 배경으로 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대생, 그중에서도 ‘여중’이나 ‘여고’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풍경이 그려져 있다. 4월생을 2월생으로 주민등록부에 올려 발육이 뒤떨어진 준희같이 작은 학생이 반마다 있었고, 남자처럼 행동하며 여자와 사귀는 인희 같은 아이도 드물지 않았다. 팬픽(팬이 쓴 소설)이 유행했고 ‘이반’이라는 말이 종종 오르내렸다. 소설에 〈데미안〉까지 등장하자, 학창 시절 기억이 더 또렷해졌다. 내 중학교 국어 교사는 아이들이 돌려 읽던 팬픽을 발견하고 압수한 뒤 〈데미안〉 독후감 숙제를 내주었다. 작중 화자의 말처럼 ‘목포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며 어쩐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잊혔으나 기록될 만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전후의 교실과 줄인 교복을 입던 아이들 말이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도 마찬가지다. 당시 아이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강도 높은 수험생 생활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연인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스스로는 예외라고 생각했던 준희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오고 아픈 ‘착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전적 소설임을 고백하며, 잊은 적은 없었지만 소설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최은영 작가의 추천사처럼 나 역시 ‘나의 여자친구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작가의 말과 함께.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어.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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