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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에 맞선 청년의 살신성인

1998년 7월31일 지리산 일대에 무려 300㎜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 이날 밤 지리산 청학동에 살던 열아홉 살 김규수 학생은 야영장으로 달려가 30여 명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성을 구하려다 물살에 휩쓸려 세상을 뜨고 말았다.

김형민 (SBS CNBC PD)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6월 21일 금요일 제6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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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5억 살의 지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재앙’을 겪어왔고 지구상의 생명체 태반이 멸종하는 파국을 몇 차례 경험하기도 했어. 공룡을 멸종시킨 백악기의 대멸종이나 그보다도 훨씬 전, 대략 2억5000만 년 전에 엄습해서 지구상 생명체의 80~95%를 없애버렸던 ‘페름기의 대멸종’ 같은 경우가 되겠지. 인간 비슷한 존재가 지구상에 나타난 건 기껏해야 수백만 년일 뿐이지만 그사이에도 빙하기라든가 화산의 대폭발이라든가 또는 대홍수 같은 자연재해는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혀왔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고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남북극에 깃발을 꽂는다 하면서 자연을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곤 하지. 대자연은 아마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소로워 앙천대소를 할 것 같구나.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10만8000리를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통제하거나 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자부해본들, 자연이 한번 힘을 쓰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두 팔을 벌려야 하는 게 인간일 테니까. 그렇듯 자연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측하기 힘든 현상을 일으키기 일쑤야. 그 가운데 하나가 엘니뇨 현상이야.


ⓒ연합뉴스
1998년 8월1일 지리산 일원에 내린 기록적 호우로 고립되었던 한 야영객이 구조되고 있다.

엘니뇨는 태평양 적도 지역, 즉 날짜변경선에서 남미의 페루 연안에 걸친 넓은 해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높아지는 현상이다. 대략 12월 말께 발생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연결돼 ‘어린아이(아기 예수)’라는 뜻의 엘니뇨(el Niño)라는 말이 붙었단다. 동태평양 쪽에서 엘니뇨가 발생해 수온 변화가 생기면 이는 수천 킬로미터 밖 서태평양에 영향을 미쳐 기상이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지금까지 발생한 ‘슈퍼 엘니뇨’는 1972~1973년과 1982~1983년, 1997~1998년 세 차례로, 관측사상 가장 강하게 발달했던 엘니뇨는 1997~1998년이다. 1997~1998년 당시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최고 4℃ 이상 높은 곳도 있었대. 이 슈퍼 엘니뇨의 영향으로 1998년 여름 한국에는 극심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나타났단다.

“1998년 7월31일부터 8월18일까지 발생한 호우는 지리산 일원의 호우를 비롯하여 3~4일 서울·경기 지방, 5~6일 경기 북부 지방, 6~7일 포천 일동 일대, 7~8일 서울·경기 지방, 8~9일 충청 북부 지방, 11~12일 속리산·보은 지방, 14~15일 서울·경기 지방, 15~16일 충청 중남부와 남부 지방, 17~18일 호남 지방 등 10여 차례”라는 국가기록원 자료에서 보듯, 그야말로 언제 어느 곳에 출몰할지 모르는 ‘게릴라’처럼 한껏 비를 머금은 먹구름들이 한반도 상공을 순회했던 거야.

당시 기상청은 문제의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양쯔강에서 이상 발달한 저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부딪친 것이 원인이며 장마는 이미 끝났고 장마와는 관계가 없는 이상 현상이라고 얘기했어. 즉 예보가 가능한 태풍이나 으레 강우량이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마가 아닌 예측이 어려운 집중호우였다는 점이지. 그래서일까 을축년 대홍수나 사라호 태풍 같은 매머드급 재난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 게릴라성 호우 때문에 사망하거나 실종한 사람이 324명에 달했고, 총 7413가구, 2만453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어. 판잣집이 즐비하던 시대나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어엿한 OECD 회원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이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국가기록원 기록을 보면 ‘지리산 일원의 호우를 비롯하여’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그해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가장 먼저 그 난폭한 빗줄기를 퍼부은 게 지리산 자락이었거든. 지리산은 전북·전남·경남에 걸친 큰 산이고 골짜기도 깊어서 여름철이면 곳곳의 계곡마다 피서객으로 그득했지. 지금은 국립공원 계곡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는 게 금지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고, 장마도 끝난 휴가철 피크를 맞아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지리산 계곡에 모여들었어. IMF 외환위기가 기승을 부릴 때여서 호텔이나 콘도를 찾는 대신 텐트를 친 알뜰 피서족도 많았지. 1998년 7월31일 오후부터 내린 비는 심야에 접어들면서 폭우로 변한다. 무려 300㎜에 가까운 비가 내렸으니 그야말로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였지(연평균 강수량은 1300㎜가량이야).

폭우가 내리는 계곡처럼 무서운 것도 없어. 지리산 주민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지. 심상치 않은 비를 보고 일부 계곡 주변의 주민들은 즐비하게 쳐져 있던 텐트들로 달려간다. 어떤 관광객들은 텐트가 계곡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버티기도 했고 욕설까지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아무리 경고 방송을 해도 꿋꿋이 버티는 축까지 있었다니 우리네 안전불감증도 참 뿌리가 깊은 셈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계곡은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강처럼 불어났고, 수많은 텐트와 사람들이 계곡 속으로 사라져버린 가운데 곳곳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어.

목숨 걸고 생명 구한 마을 사람들

캄캄한 밤에 들이닥친 공포의 계곡, 그래도 여러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앙에 맞서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쳤단다. 임무를 다하다가 물살에 휩쓸려 순직한 소방관도 있었고, 사람들을 구조하던 도중 자신도 구사일생의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빠져나온 마을 사람도 많았어. 그 가운데 아빠는 지금의 네 나이와 비슷했던 한 청년을 기억하고 싶구나. 지리산 청학동에 살던 열아홉 살의 김규수.

<경향신문> 1998년 8월3일 기사에 따르면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있다가 밤 11시쯤 빗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형, 누나와 함께 야영장으로 달려갔어. 태반의 피서객들이 곤히 잠에 빠져 있던 야영장에 도착한 그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지. 물은 사정없이 불어났고 금세 무릎까지 차올랐어. 기겁을 한 사람들을 끌고 근처의 고지대로 데려다 놓기를 7~8차례. 30여 명을 피신시켰지만 야영장 한쪽에서 남녀 4명이 애타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게 보였어. 김규수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그중 마지막 여자의 손을 잡고 물살을 헤치고 나오는 와중에 그만 ‘집채만 한’ 급류에 휩쓸리고 말아. 꿈 많던 대학생의 시신은 멀리 떨어진 하류에서 50여 일 뒤에야 수습할 수 있었단다.

얘기했다시피 폭우 내리는 계곡의 무서움은 계곡 주변 마을 사람들이 제일 잘 알았다. 김규수도 그곳에서 자랐으니 그 공포에 익숙했을 거야. 사람들을 구하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거야. 소방관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닌, 딱히 그래야 할 의무가 없는 일반인이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겠지. 김규수를 비롯한 많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마다하지 않고 폭우 내리는 계곡을 누비며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6·25 이후 지리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적이 없다”라고 한탄할 만큼 많은 희생자를 낸 집중호우였지만 그나마 희생자 수를 줄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헌신 덕분이었어.

인간 역사에서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은 자연의 재앙만큼이나 참혹한 희생을 가져왔다는 건 너도 알지? 또 한편으로 인간이 실로 끝 간 데 없는 자연의 위력이 가져오는 각종 재앙에 맞서며 문명을 지키고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역시 불가사의하게 발현되는 인간의 이타심과 용기 때문일 거야. 그것들이야말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자랑스레 내세울 수 있는 방패이자 갑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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