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호 태풍이 들이닥친 건 1959년의 한가위, 9월17일이었어. 9월11일 발생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긴 했지만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언론 속보가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고, 관상대(오늘날의 기상청)의 예보도 “우리나라에는 상륙하지 않을 듯하고 태풍의 위력도 줄어들고 있다”라고 했거든. 한풀 꺾였다던 사라호 태풍은 채 식지 않은 9월의 바닷물에서 온기를 빨아들여 한층 더 큰 몸집으로, 그리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최저기압(중심부 기압이 낮을수록 태풍 세력이 강하다)인 905hPa의 위력으로 휘몰아쳤지. 첫 제물은 제주도였어.
9월16일 심야에 제주도에 상륙한 사라는 동틀 무렵에는 초속 39.2m의 돌바람으로 제주도를 난타했단다. “가옥 전파 1967동, 가옥 반파 1만768동··· 선박 전파 146척, 선박 반파 149척, 선박 침몰 31척, 공공건물 전파 29동(〈제주의 소리〉 2004년 6월7일).” 흡사 폭격을 맞은 풍경이었지. 40만 인구의 섬에 이재민 6만명이 발생하고, 당장 먹을 밥이 없으며 잠잘 집이 없는 긴박한 처지의 사람들만 1만명이 넘었다고 해. 태풍 사라는 제주도를 박살낸 후 한반도 남해안을 쓸고 지나가면서 전국적인 피해를 주었거든.
거제도 앞바다의 절경이었던 한 쌍의 촛대바위 중 신부 촛대바위가 사라호 태풍의 칼바람에 동강이 난 것은 불행의 서곡이었어. 부산에서는 “오륙도가 파도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라고 할 만큼의 태풍 해일이 일어나 부산항 역시 물바다가 됐지. 서해 바다 연평도 지역에는 한창 철을 맞은 조기잡이 어선들이 집결해 있었는데 사라호 태풍의 위력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수많은 어선이 침몰하고 말았단다. 이 슬픔을 노래한 가요가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래야.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 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전국에서 849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으니 가히 재앙이라 할 만한 태풍이었지.
특히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건 경상북도 지역이었어. 홍수 때문에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진 곳도 즐비했고 가옥이 부서진 정도는 피해 축에 끼지도 못했다고 하니까. 논이고 밭이고 모든 것이 흙탕물로 뒤덮였고 물이 빠진 뒤는 뻘흙 가득한 황무지로 변해버렸단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북에 속하지만 당시에는 강원도 관할이던 울진도 큰 피해를 당했어. 그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근남면 사람들이었지.
“울진 사람들, 강원도 철원으로 오시오”
마을 전체가 물살에 휩쓸려 사라진 마을 사람들이 망연자실하여 근근이 생을 이어가고 있을 때 강원도지사가 뜻밖의 제안을 해온다. “강원도 철원으로 오시오.” 휴전선 인근의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관할을 미군에게서 넘겨받은 정부가 정처 없던 남쪽 주민들을 이주시켜 민통선 지역을 활용하려 했던 거야. 도지사는 넉넉한 지원을 약속했고 여기에 응한 66가구의 울진 사람들이 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던 DMZ 근방 버려진 땅 철원군 마현리로 향한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 포장마차를 타고 서부로 달리던 사람들과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울진에서 철원까지 3박4일이 걸렸으니까.
한데 천리 타향 낯선 땅에 똑 떨어진 지 12일 만에 4·19 혁명이 일어났어. 자유당 출신이었던 강원도지사가 물러나고 새 지사가 들어서는 와중에 울진에서 이주해온 66가구에 대한 행정 서류 등이 깡그리 없어지고 말았단다.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왜 울진 사람들이 강원도에 들어와 있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고 이들은 졸지에 고아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어.
천막 하나로 바람을 가리고 생활하던 시절, 이들의 처지를 보다 못한 장교 한 명이 쌀가마니를 주며 밀주라도 만들어 군인들에게 팔아보라 제안했고, 이주민들은 야밤에 술을 ‘추진’(군대 용어로 ‘노력하여 장만한다’ 정도로 번역될 거다)하러 온 군인들에게 막걸리를 팔면서, 또 한편으로 메마른 땅에 괭이질을 하면서 팍팍한 삶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어.
당시 DMZ 지역의 치안은 경찰 아닌 군 방첩대가 맡았어. 그들은 성에 안 차는 일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을 집합시켜 몽둥이를 휘둘렀지. 게다가 땅을 개간하다가, 아이들끼리 뛰놀다가 툭하면 펑펑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갈가리 찢긴 육신들이 철원평야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곳은 지뢰 반, 흙 반의 지뢰밭이었거든. 격전지인 철원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가장 깊은 곳이었지만, 그 흔적이 뜻밖에도 사라호 ‘난민’들의 삶을 일굴 자산이 되기도 했어. 그건 전쟁 중 수십만 발 뿌려진 탄피였단다. 이 탄피를 캐서 장에 내다 팔면 “탄피 한 관(4㎏)에 보리쌀 세 말, 여간한 수입이 아니었다(〈대경일보〉 2017년 12월6일).” 군인들이 이걸 가만둘 리 없지. 검문에라도 걸리면 온몸이 골병이 들 만큼 두들겨 맞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여자들이 속옷 속에 탄피를 감추고 군인들 앞에 나서기도 했다는구나.
그렇게 악착같이 살면서 황무지를 일궜지만 나라는 또다시 사라호 난민들을 배신해. “1982년 말 ‘수복지역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 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지주가 보증인을 3명 이상 내세우면 소유권 보존등기를 해줬다. 이 특별조치법 탓에 마현1리 주민들은 개간한 농지 중 70%가량을 잃고 다수가 소작농이 됐다(〈연합뉴스〉 2018년 5월5일).” 즉 주인이 버리고 간 황무지에, 태풍으로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나라가 나서서 데려오고는, 그들에게 피땀으로 땅을 일구게 한 뒤,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줬다는 뜻이야. 주었다가 빼앗는 수준을 넘어 공들여 지은 집에 남의 명패 달아준 격이랄까. 그 지경에서도 근남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또 한번 이를 악물고 일해서 땅을 사들이고 새로운 땅을 경작했으며, 1990년대 이후 시작한 파프리카 농사는 대박을 터뜨리며 마현리를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촌으로 만들어주었다는구나.
사라호는 자연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전설적인 태풍으로 남아 있지만, 더불어 사람의 의지가 그만큼 위대함을 보여준 계기이기도 해.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선 비문은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지만 뭔가 스멀거리는 느꺼움으로 속을 달구는 것은 그 때문일 거야.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 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상들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여기에 조그마한 비를 세우노라.” 꼭 60년 전 사라호 태풍이 우리를 덮치던 날을 기억하고, 또 그를 이겨낸 사람들을 생각해보자꾸나. 모든 것을 떠나서 그 60년은 위대한 역사였다. 그 기간에 이리도 많은 것을 이룬 나라와 민족은 많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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