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의 어이없는 오보
  • 김형민(SBS CNBC PD)
  • 호수 616
  • 승인 2019.07.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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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6일 오전 11시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는 “국군 17연대 해주 점령”이라고 발표했다. 이 ‘치명적 오보’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수십 년 동안 ‘국군이 북침했다’는 주장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10년, KBS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는 시청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주 짤막하고 요점이 확실한 질문이었지. “6·25가 남침인가요, 북침인가요?” 대답은 영 미지근했다.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다.” 명색이 ‘진보 정당’ 대표가 저런 대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단다.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문제는 이미 논쟁의 반열에 들지 않는, 판가름 난 지 오래된 ‘팩트’였기 때문이야.

1950년 당시 남한 산간지대에는 빨치산들이 준동하고 있었으며 38선 곳곳에서 무장 충돌이 벌어진 건 사실이야. 한국전쟁은 이런 내전이 확대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옛날에는’ 꽤 통용됐고 심지어 남한이 먼저 침공을 개시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을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건넨 6·25 관련 비밀문서에는 더 이상 의심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자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지.
1950년 6월27일 <동아일보>는 ‘국군이 해주를 점령했다’는 오보를 냈다.

1949년 3월5일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신생 독립국의 지도자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을 찾아왔다. “지금은 우리가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입니다. 우리 군이 남조선보다 강합니다. …남조선의 인민 대중들은 친미 정권을 증오하고 우리를 도울 것이 확실합니다.” 둘은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우겼으나 스탈린은 거부했어. 1년 뒤 북한 지도자들은 비슷한 용건으로 다시 소련을 찾는데, 그때는 정세가 크게 달라져 있었어. 중국이 공산화됐고 미군은 남한에서 철수했으며 소련은 핵 개발에 성공했거든. 마침내 스탈린이 동의했어. 이리 보면 한국전쟁은 북한이 주도하고 소련이 동의하고 중국도 고개를 끄덕인 가운데 감행된 전면 남침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수십 년간 많은 이들이 북침설 또는 남침 유도설을 주장해왔고 북한은 심지어 지금도 자신들이 먼저 공격받았다고 우기고 있으니 참이든 거짓이든 그 주장에 대한 근거들이 존재하겠지? 그 근거 가운데 하나는 치명적인 오보에 기인하고 있단다. 전쟁 발발 직후 우리 방송에서 흘러나온 ‘국군 17연대 해주 점령’이라는 오보였어.

지도를 한번 들여다보렴. 오늘날 북한의 황해도 남부 옹진반도는 전쟁 전 우리 땅이었어. 38선 이남이었으니까 북한 땅에 포위된 일종의 섬 같은 지형이었지. 전쟁이 터지자마자 옹진반도에서는 북한군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단다. 이에 맞선 건 한국군 17연대였다. 17연대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워낙 장비와 화력이 앞선 인민군의 공세 앞에는 역부족이었고, 전쟁 다음 날인 6월26일 오후 연대장 백인엽 대령을 비롯한 잔여 병력이 철수하면서 옹진반도는 인민군 손에 넘어간다.

그런데 맹랑한 일이 벌어졌어. 17연대가 악전고투하면서 철수를 서두르던 즈음, 6월26일 오전 11시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가 이런 발표를 한 거야. “국군 17연대 해주 점령.” 사실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이 뉴스는 곧 세계에 전파됐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신문도 한국군 해주 점령을 보도했고 6월27일 <동아일보>는 이 뉴스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지. 기사 제목은 이랬다. “국군 정예 북상 총반격전 전개.” 그 아래에 ‘해주시를 완전 점령’. 전선은 무너지는데 한국 국방부와 당시 최고 공신력을 지녔다 할 <동아일보>가 ‘국군 해주 점령’ 소식을 전파한 거야. 대관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현수 대령, 권총 한 자루로 싸우다 전사

ⓒ연합뉴스1950년 6월28일 폭파된 한강 인도교. 이 폭파로 인해 수백명이 사망했다.

전쟁 발발 당시 17연대에는 <태양신문>의 최기덕 기자가 와 있었어. 자주 전투가 벌어진 옹진반도인 만큼 종군기자 성격이었겠지. 전쟁이 터지고 상황이 위급해지자 백인엽 연대장은 최기덕 기자에게 서울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어. 최 기자는 옹진반도를 떠나 서울로 들어와서 전황을 알렸는데 그는 이렇게 얘기했단다. “서울에 와서 25일 저녁 국방부 정훈국에 들렀는데,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이 옹진 쪽 전황이 어떠냐고 물어요. ‘육본에서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백인엽 연대장의 사기는 해주로 진격한다고 할 정도였다’고 대답했습니다(<한국언론자료간행회> 1987).”

백인엽 연대장은 이후 툭하면 ‘즉결처분’으로 부하들을 죽여 악명을 높였던 사람으로 성미가 급하고 불같은 측면이 있었지. 그는 자신이 해주 운운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서울 가는 종군기자에게 “걱정 마시오! 17연대는 해주로 갑니다!” 정도의 호언장담은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 어쨌든 최 기자는 “해주를 점령했다”가 아니라 “해주로 가겠다고 할 만큼 사기가 높았다”라고 말했다는 건데 이게 무슨 조화였는지 엉뚱한 뉴스로 비화돼버린 거야. 진실은 국방부 보도과장이었던 김현수 대령이 알고 있겠지만 그가 6월28일 방송국에서 전사하며 오보의 책임은 영원히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어.

추정컨대 해주 점령을 뉴스화한 것은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일 듯해. 당시 국방부는 국군이 인민군의 기습을 막아내고 무찌르고 있다는 거짓 전황을 계속 내고 있었거든. 군인의 사기 진작과 시민의 동요를 막는다는 ‘좋은’ 의도에서 말이야. 김현수 대령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직장을 사수하려 했던 훌륭한 군인이었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유에서였다고 해도 ‘17연대 해주 점령’ 오보는 최악의 오보 중 하나로 남게 돼. 선의의 거짓말은 그 선의가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악의의 거짓말보다 더한 실망과 불신을 낳는단다. 적에게 속은 것보다 우리 편에게 속는 것이 백배는 더 뼈아픈 법이니까. 하나 더, 이 오보는 이후 국민에게 ‘정부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불신을 남긴 시발이 되었단다. 일단 ‘선의의 거짓말’이 용납되기 시작하면 극악한 거짓말까지 선의로 포장하게 마련이지. 6월27일 오후 4시에도 김현수 대령은 “미군이 참전할 것이고, 국군은 현 전선을 고수할 것이다”라는 특별 발표를 했고, 그날 밤 9시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줄행랑을 친 상황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정부는 서울을 사수한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을 방송하게 돼. 그때 김현수 대령의 심경은 어땠을까.

방송국에 파견돼 있던 군인들 역시 전황을 알지 못했고 상부의 지시대로만 방송했을 뿐이지만 자신들의 오보가 낳은 엄청난 결과에 그들 역시 아연실색했을 거야. 머뭇거리다가 허둥지둥 피난길을 떠난 사람들이 한강 인도교 폭파로 산산조각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그 시각, 그는 방송국으로 향한다. 서울 시민들에게 피난을 호소하는 마지막 방송을 하기 위해서였지. 모르긴 해도 그는 “서울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부르짖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오보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하지 못했어. 방송국을 점령한 인민군 선발대에 맞서 권총 한 자루로 총격전을 벌이다가 피살되고 말았으니까. 김현수 대령의 명복을 빌자꾸나. 또 김현수 대령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어이없는 허위 방송,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가 벌였던 오보 퍼레이드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명히 기억해두자. 이 오보가 수십 년 동안 ‘국군이 북침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는 사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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