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자영업자의 길 택해 ‘망조’ 든 교육자들

교육 당국의 조치와 유치원 3법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 유치원 원장들의 항변에도 나름의 논거는 있었다. 그러나 한유총은 ‘사유재산’에 집착하며 정부와 여론에 맞서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3월 19일 화요일 제600호
댓글 0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저항이 실패했다. 3월5일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의 설립허가 취소를 진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월28일 한유총이 선언한 ‘개학 연기 투쟁’이 이유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3월4일 정오 기준 전국 유치원 239곳이 개학을 연기했다. 이날 저녁 한유총은 개학 연기 투쟁을 철회했지만 다음 날 서울시교육청은 설립허가 취소를 강행했다.

지난 몇 주간 한유총은 거듭 악수를 두었다. 2월21일 기자회견에서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라며 퇴장을 요구했다. 2월25일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좌파들이 유치원을 장악하여 사회주의형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개학 연기 투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협박’이 오갔다는 정황도 있다. “(개학 연기에) 동참하지 않는 원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배신의 대가가 얼마나 쓴지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한유총 간부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3월6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한유총 관계자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여론전에서 한유총의 행보는 자멸에 가까웠다.

한유총은 왜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을까. 내부 관계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정부가 “극소수 부정 사례를 집단 전체의 일로 호도한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유치원 비리’를 정의하는 방식에 한유총은 동의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는 비판받을 수 있더라도 법에 저촉되는 행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들여다보면 그마저도 유치원 경영난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 많다고 말한다. 그래서 2월28일 기자회견에서 한유총은 개학 연기 투쟁이 교육 당국의 “거짓 주장과 여론 왜곡”에 맞선 “준법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월25일 국회 앞에서 열린 ‘유치원 3법’ 반대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한유총 관계자들.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는 ‘사유재산론’이 있다. 한유총은 정부가 사립유치원 재정에 부당하게 간섭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교육부의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속 유치원 폐업 규제를 개학 연기의 직접적 계기로 꼽았다.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도록 한 규정이 재산권 행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한유총은 시행령이 법률에 없는 조항을 임의로 추가한 ‘위임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핵심 갈등은 회계 문제다. 정부와 여당도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 행사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유치원 교비는 교육 목적으로 쓰도록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교육부가 시행령을 고쳐 도입하겠다고 밝힌 전자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은 유치원 재정을 용이하게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부가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회계에 개입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립유치원에 국가 재정이 들어간다. 매월 원아 1명당 누리과정 지원금 22만원과 방과후 과정 지원금 7만원 지원이 원칙이다. 둘째, 사립유치원은 법적으로 학교다. 사립학교법상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은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다.”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교육 사업이기에 감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유총은 부당한 개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누리과정과 방과후 과정 지원금은 누리과정이 도입되기 전부터 학부모에게 받던 수업료일 뿐이다. 국가 재정의 수혜자는 유치원이 아니라 학부모다(<시사IN> 제579호 ‘누리과정 2조원 보조금이 아니라서?’ 기사 참조). 또한 교비회계 전출금지 규정은 법인을 기준으로 한 조항이다. 유치원 설립자가 여기에 근거해 횡령죄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시사IN 조남진
3월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한유총에 대한 사단법인 설립 취소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실제로 사법기관 판단은 사립유치원 경영자의 주장과 가깝다. 2017년 검찰은 업무상횡령,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유치원 원장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학부모가 방과후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입금한 금원에 대해서는 유치원 운영자인 피의자에게 그 소유가 귀속이 되므로 피의자는 업무상횡령죄의 보관자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학부모 수업료는 원장 소유이므로, 그 사용 내역에 관여하려면 시설사용료를 내라’는 한유총 주장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정부와 여당은 이 문제가 입법 불비 탓이라고 본다. 그래서 박용진 의원은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고, 사립유치원의 교비회계 감사를 강화하는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발의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 “사립유치원에 투입되는 대규모 재원의 투명성 및 적정 사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이라고 밝혔으나 “행정 권력에 의한 통제의 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교육의 자주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음”이라고도 적었다.

사립유치원은 정부가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

한유총 의뢰로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검토한 정진경 변호사는 “유아교육법 시행령이나 유치원 3법은 사유재산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 정부의 강경 대응은 여론 덕이고, 여론이 한유총에 적대적인 이유는 사안을 잘 몰라서다. 이 문제는 시장 경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의 논리는 이렇다. 설립자가 교비를 사적으로 쓰는 유치원은, 교비를 재투자하는 유치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학부모라면 더 경쟁력 있는 후자에 자녀를 보낼 것이다. 결국 설립자가 교비를 뒷주머니로 챙기는 유치원은 굳이 법을 고쳐 설립자를 처벌하지 않더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은 ‘왜 지금까지는 사립유치원이 자정되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낳는다. 시장 논리로만 설명하기에는 유치원 서비스가 조금 특수하다. 우선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유아 학부모는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원비가 싸고 인력·시설의 질이 보장된 국공립유치원은 이 장점을 상회할 만큼 매력적이지만 수가 부족하다. 정부 지원이 부족한 사립유치원이 국공립유치원 수준으로 탈바꿈하려면 원비 상승을 피할 수 없는데, 유아교육법은 원비 인상률을 직전 3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 이하로 묶는다.

게다가 사립유치원은 정부가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치원은 편의점이나 카페처럼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설립되지 않는다. 유아교육법 제8조 3항 2호에 따르면, 유치원은 교육감이 수립하는 유아배치계획에 적합하지 않으면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없다. 유아배치계획은 3년마다 권역별로 수립되는데 유아 거주 분포, 수요 조사 등이 기준이다. 어린이집 설치 요건을 규정한 영유아보육법은 이런 규정을 두지 않는다. 유치원은 교육기관이기에 그 안정적 운영이 공익에 합치된다고 국가는 판단한다.

교육 당국과 입법부의 조치에는 다툴 여지가 없지 않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항변에도 나름의 논거는 있었다. 그러나 한유총은 애써 획득한 교육자의 지위를 내던지고, ‘사유재산을 주장하는 자영업자’의 얼굴로 정부에 맞서는 오판을 저질렀다. 유치원 서비스의 질에 불만이 높던 여론은 이들의 개학 연기 투쟁을 접한 뒤 완전히 돌아섰다. 교육부의 허가 취소 발표 직후 <시사IN>과 통화를 급히 중단한 한유총 간부는, 이날 저녁 다시 전화를 걸자 “문자로. 한잔 중입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