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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제일유치원은 공영형 사립 유치원으로 선발되면서 법인을 세우고 그 법인에 유치원 소유권을 넘겨 사립학교법을 적용받는다. 한양제일유치원의 수업 모습.

서울시 홍제동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유치원 버스가 멈췄다. 10월24일 오전 9시30분, 9개 동 아파트로 둘러싸인 건평 400㎡짜리 단층 건물에 5~7세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3개 반, 원생 60명이 다니는 이 유치원은 2017년 3월 ‘공영형 사립 유치원’으로 선정된 한양제일유치원이다. 공영형 사립 유치원은 사립이지만 국·공립 유치원 못지않은 재정 지원과 회계감사를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2곳, 올해 2곳의 사립 유치원을 선정해 공영형 사립 유치원 제도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양제일유치원은 공영형 시스템을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모범 케이스’로 꼽힌다. 원래 이 유치원은 개인 소유였다. 공영형 사립 유치원으로 선발되는 과정에서 법인(학교법인 인우학원)을 세우고 그 법인에 유치원 소유권을 넘겼다. 이사진 5명 가운데 3명을 개방형 이사로 구성하고 매번 이사회 회의록과 유치원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교육청 지원금으로 오래된 시설을 개선했고, 원생 규모도 20여 명 수준에서 60명까지 확대했다.

학부모의 부담도 줄었다. 매달 내는 유치원비는 국·공립 유치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기존 30만~40만원 수준이던 유치원비는 차량 비용과 특별활동비를 포함해 평균 5만원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1인당 식비 한도가 2000원대에서 3200원까지 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곳에 5년간 총 7억5000만원을 시설 개·보수비, 인건비 등으로 지원한다. 유치원 예산은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한다. 회계도 투명해졌다. 최근 논란이 된 일부 사립 유치원의 회계 부정은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인옥 한양제일유치원 원장은 개인의 사유재산이던 유치원을 법인 재산으로 전환하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공영형으로 바꾼 이유를 “어떻게든 유아교육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원래 중·고교 교사였던 이 원장은 2001년 이곳을 인수하며 운영해왔지만, 경영 세부 사항까지 모두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치원 유지가 점차 어려워지던 와중에 “그래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영형 전환을 결정했다. 함께 운영하던 남편은 이사장으로, 이 원장은 원장으로 계속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공영형 대상으로 선정된 유치원 가운데 개인 소유 사립 유치원은 한양제일유치원이 유일했다. 나머지 3개 유치원은 원래부터 법인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한양제일유치원이 신청한 공영형 사립 유치원 지원 사업은 ‘시범 사업’이다. 이 원장과 서울시교육청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공영형 사립 유치원이 되면서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따라 회계를 처리해야 했다. 영수증을 정리하는 방식도, 이를 자료화하는 방식도 모두 달라졌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서도 교육청과 이 원장의 생각이 달랐다. 서울시교육청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준수’를 기본 원칙으로 정했다. 교육과정을 수립할 때에도 서울유아교육지원계획, 서울형 유치원 교육과정 내용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반면 이 원장은 사립 유치원은 원장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환 첫 학기를 치르면서 교육청이 의사 결정을 너무 일방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원장이 이를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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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부정으로 물의를 빚은 리더스유치원.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문제들은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이 원장은 사립 유치원의 공영형 전환의 가장 큰 장점으로 교육청의 컨설팅과 경영 전문가 초빙을 꼽는다. 학교법인 인우학원을 설립하면서 퇴직 교육공무원 출신인 최경호 행정실장이 유치원에 합류했다. 행정 전문가가 실무를 맡아주자 회계를 비롯한 각종 ‘일처리’가 국·공립 수준에 맞춰 꼼꼼하게 정비되면서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 원장 혼자 운영하던 시절과는 달리 경영이 안정 궤도를 밟아갔다. 교육과정 등에 관한 이견도 양자 간의 협의를 통해 풀어나갔다. 이 원장은 “다행히 두 번째 학기부터는 교육청에서도 의사 결정 과정에서 원장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교육청과 서로 어떻게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지 터득했다”라고 설명했다.

유치원 운영 주체를 ‘법인’으로 전환한다면

10월24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립 유치원 감사 결과 비리 집단으로 매도된 가장 큰 이유는 교육부가 사유재산 보장이 없는 재무회계 규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사립 유치원 측이 이런 변명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많은 사립 유치원이 설립자의 개인 재정과 유치원 재정을 분리하지 않았고 이를 국가가 용인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행대로 해왔다”라고 사립 유치원 운영자들은 주장한다. 유치원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유치원 운영의 주체를 ‘개인’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법인 설립 유치원과 달리 사립학교법상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개인 설립 유치원의 회계장부를 뒤져보고 공적 지원금의 용처를 제대로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법인 소유 사립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으로, 사회복지법인 소유 사립 유치원은 사회복지사업법을 근거로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다. 공영형 사립 유치원이 주목받는 데에는 이 같은 ‘법인화’가 필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법인화는 공영형 사립 유치원이 확대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사립 유치원을 법인화한다는 의미는, 유치원이라는 일종의 사적 재산을 사회에 법인이라는 공적 재산으로 내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등 사립학교는 처음 설립할 때부터 학교법인을 세워야 한다. 반면 1980년대부터 국가가 나랏돈을 들이지 않고 유아교육 인프라를 확대하고 싶어 법인뿐 아니라 개인 설립도 허락해줬다. 이후 사립 유치원 사업은 30년 넘게 사유재산의 영역에서 교육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아왔다. 사립 유치원 원장들에게 단번에 개인 재산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시사IN〉 제522호 ‘사립 유치원의 좋은 시절은 가고’ 기사 참조). 이미 갖고 있던 유치원 자산을 내놓을 뿐 아니라 추가 자금도 투입해야 한다. 공영형 안착에 성공한 이인옥 한양제일유치원장은 “법인 전환 과정에서 이사장 개인 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개인 소유 유치원을 법인 재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치원 재산세, 간판세, 각종 회계사 비용 등이 추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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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부정으로 물의를 빚은 환희유치원

지금의 공영형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재정 지원 기간’이 한시적이다. 한양제일유치원은 그나마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5년 동안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올해 새로 모집하는 공영형 사립 유치원은 교육부 방침에 따라 정부 지원이 3년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의 도입 이후 전국 시·도 교육청이 경쟁적으로 공영형 사립 유치원을 모집했지만, 경쟁률도 저조하다. 한양제일유치원만 해도 당장 지원 기간이 끝날 경우 학부모들에게 30만원 이상 원비를 다시 받아야 한다. 지원 기간은 짧고, 사유재산은 법인에 출연해야 하며, 이후로도 계속 개인 자산이 투입되는 현재 모델로는 공영형의 확대를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지원 기간 연장과 법인 전환에 따른 세제 혜택은 고려해야 한다는 게 이미 공영형 전환을 겪은 이들의 의견이다.

공영형 모델과는 다른 형태인 ‘매입형 유치원’의 확대도 고려해볼 모델이다. 경영이 어려운 유치원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인수해 국·공립 유치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일부에서는 수년 내내 지원이 필요한 공영형보다 큰 금액일지라도 한 번만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 되는 매입형 유치원 확대가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원아 규모가 줄어 어려움을 겪는 사립 유치원이 늘고 있다는 점도 매입형 유치원 확대의 주요 근거가 된다. 다만 한 번에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걸림돌로 지목된다.

지역별로 유아 인구가 재편되는 것도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다. 최근 도시 지역 유치원 경영에 위협이 되는 두 가지 요소가 바로 저출산과 집값이다. 저출산이 절대적인 수요를 줄인다면, 도심 지역 집값 상승은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를 외곽 신도시 지역으로 몰아낸다. 자연스럽게 유아 인구도 외곽 신도시로 쏠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최근 일부 사립 유치원의 회계 부정으로 논란이 된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도 대표적인 ‘수요 과잉’ 지역 중 하나다. 외곽 신도시 지역에서는 적극적으로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되, 인구 재편이 진행되는 구도심 지역에서는 공영형 전환이나 매입 유치원 확대 등 기존 사립 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여당 대책 발표에 한유총의 반응은?

‘사립 유치원 회계 부정 사태’로 사립 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자, 10월25일 정부와 여당이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국·공립 유치원 확대와 사립 유치원 회계 시스템 정비다. 

당초 국·공립 유치원 500개 학급을 신·증설하기로 한 정부는 목표치를 1000개 학급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 40%도 목표였던 2022년보다 1~2년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10월21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열린 사립 유치원 비리 규탄 집회에서 학부모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어떻게 늘릴 것이냐’다. 정부는 신규 유치원을 증설하는 것 외에도 매입형·공영형·장기 임대형 유치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장기 임대형은 아파트 주민시설이나 기존 사립 유치원 부지·시설을 국가가 20년 이상 임대하는 방식이다.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빠른 시간 내에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다.  

논란이 된 사립 유치원의 국가 회계 시스템 ‘에듀파인’ 편입은 2020년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사립 유치원 측은 그동안 에듀파인 시스템을 쓰고 싶어도 자체적으로 처리해온 회계 시스템과 달라 섣불리 도입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올해 실무 연수·장비 구축 등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시범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비영리법인 또는 학교법인만 사립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발표도 뒤따랐다. 그러면 개인이 수익을 목적으로 사립 유치원 사업에 뛰어드는 길은 사실상 막힌다. 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10월25일 입장문을 내고 “수십 년간 유아교육에 헌신해온 설립자들과 원장들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 조치에 경악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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