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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연합 기구 출범 차기 정부 손에 달렸다

남북 정상회담은 몇 가지 과제를 남겼다. 납북자 문제와‘10·4 선언’ 실천이 차기 정부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2007년 10월 08일 월요일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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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도착 첫날인 10월2일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4일 오전 9시5분에 분단 조국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이 장면은 이번 2007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1948년 4월19일 김구 선생께서 조국의 분단을 막아보고자 삼팔선을 넘었다면, 이번에 노 대통령은 조국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적어도 역사에 남을 커다란 이정표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논란이 분분했던 대목은 노 대통령에게 하루 더 체류해달라고 한 김 위원장의 깜짝 제안이다. 그동안 아리랑 공연 이나 오전 회담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돼왔는데, 노 대통령이 밝힌 대국민 보고 내용 속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오후 회담 도중 6자회담 북한 측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회담장에 들어오게 해 핵문제에 대해 보고하도록 했다. 이 자리에서 9월30일에 합의한 6차 2단계 6자회담 합의문이 최종 확정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6자회담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만 앞질러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제외 등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확인해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 전에 6자회담 합의문을 도출하려고 했던 북한의 의지는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9월30일 김 부상은 최종합의문 채택에 대해 ‘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일본이 유예하는 자세를 보이자, “10월2일 행사를 위해 내 목을 걸었는데, 힐 차관보가 미국으로 돌아가 또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10월 2일 아침(한국 시간)에 미국이 잠정 합의문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10월3일 오전 10시30분쯤에 일본 정부도 승인할 것이라는 뉴스다. 결국 미․일 양국의 6자회담 합의문 승인이 10월3일 오후 의장국인 중국에 통보되었고, 그날 오후 7시에 최종적으로 ‘9·19 공동성명’의 2단계인 ‘10·3 합의’가 공식 채택되었다.
미․일 정부의 ‘10·3 합의’ 승인 사실이 정상회담 중간에 알려지면서, 체류 연장을 요청했던 김 위원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지난 9월7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선언 방안을 설명하자, 김 위원장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에 기본적으로 동의해 일사천리로 종전선언 추진이 합의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을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았다. 개성공단 이전의 개성 지역 못지않게 중무장한 해주 지역 및 주변 수역에 협력특별지대를 설정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그리고 해주항 활용과 경제특구를 건설하자는 우리 측 제안은 도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김 위원장도 우리측 제안이 북한 측이 줄곧 주장해왔던 북방한계선(NLL)문제를 뒤로 미루고 우선 공동번영과 평화 정착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하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전격 받아들였다.

‘10·4 선언’이 알려진 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1월에 개최될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혹시 NLL 문제가 다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공동선언을 잘 보면, 국방장관회담에서는 NLL 재설정 문제가 아니라 공동어로수역의 지정과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처를 협의한다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번 ‘10·4 선언’에서는 지난 8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 당시의 ‘8·8 합의문’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군사적 긴장완화 △평화체제와 경제협력에 관한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전체 틀에서는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한’ 남북연합의 초보 제도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남북연합 기구는 평의회, 각료회의, 정상회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10·4 선언’에서 △양측 의회의 대화와 접촉(2항) △국방장관회담 개최 △부총리급 경협공동위 격상 △남북 총리회담(3항, 5항, 8항) △정상들의 수시 협의(8항) 등이 합의되었다. 다만, 북·미 관계 개선에 상응하는 제도 장치로 기대되었던 서울과 평양 간의 연락대표부 설치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노무현 대통령의 친필 표지석.
 
국민적 합의를 위해 국회 동의가 필요


이번 정상회담은 작은 보따리에 많은 성과를 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과제를 안겨주었다. 첫째로,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은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납치 문제를 ‘통 크게’ 시인했다가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는 ‘아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10·4 선언’의 내용이 과연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들을 실현하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너무 짧기 때문에, 차기 정부가 ‘10·4 선언’을 받아들일지 여부가 향후 남북 관계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셋째로, ‘10·4 선언’에서 합의한 경협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좀더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민간기업의 투자나 정부예산 투입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와 협력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경제협력 사업 중에서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부분과 평화협정,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법률․제도의 정비 등도 사안별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10·4 선언’의 후속조처 중 중·장기 사업은 ‘남북관계발전법’ 제13조에 따른 남북관계 발전기본계획에 반영해 국회에 보고한 뒤 추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10·4 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10·4 선언’ 자체가 국내적으로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발전법’ 제21조에 따라 ‘합의서 체결비준’에 관한 법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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