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거대 담론’에 현실적인 북한 갑갑
  • 오강조(북한 전문가)
  • 호수 4
  • 승인 2007.10.08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회담에서 남한 측의 제안은 주로 장기 거시 담론에 치우쳐 있었다. 반면 북한 측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업을 선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월4일 귀로에 들른 개성공단 내 (주)신원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2007 남북 정상 선언’ 가운데 경협 사안만 따로 간추려보자. 서울이 평양에 제안한 것 중 새로운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남북 경협의 토지 기반을 확대한 것이다. 선언문 제5항에 있는 제2개성공단 혹은 특구 설립이 바로 이것이다. 이른바 ‘경제공동체 구상’의 핵심으로, 전형적인 점-선-면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개성에서 시작하여 해주라는 다음 점을 찍고 이를 선으로 연결해 면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대북 경협에 대한 남한 측의 기본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가지는 불만, 그리고 개성과 해주를 선으로 잇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협의되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둘째, ‘평화’ 이슈의 경제적 구현과 관련한 사업들이다. 선언문 제3항과 제5항에 중복되어 있다. 평화수역이나 평화지대라는 개념은 일관되게 노무현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것이 서해안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과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접근이라는 이른바 ‘평화벨트’ 사업으로 드러났다. 합의되지는 못했지만 남북 간 철로 연결을 활성화·상시화하는 문제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문산·봉동 간 철도 화물수송만이 구체성을 띠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도 합의가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셋째, 경제 상호주의가 가능한 사업 영역들이다. 안변, 남포의 조선협력단지나 임진강 수역개발, 사회 기반시설의 지원 및 건설 착수 등이 모두 이 영역에 속한다. 대륙붕 개발이나 광산물 공동개발 등도 같은 부류다. 그러나 대부분 중장기 사업들이어서 결국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동선언은 주로 남한 측이 제의한 경협사업 위주로 돼 있다. 그러나 북한의 속내는 과연 어떤가. 이번에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실제로 원하는 사업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중 ‘산업기술 상품 전시회’ 개최 문제가 있다. 가난 3월 이해찬 전 총리 방북 때도 거론된 바 있는 사업으로, 가장 주목할 만하고 가치도 매우 크다. 북한 측이 현재 어떤 상품과 산업,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남한 측의 기업인과 국민에게 경협의 구체적 분야와 대상을 실감하게 해줄 수 있다. 이런 것이 있어야 경협이 확대된다. 그렇지 않으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밖에는 안 된다.

그동안 북한 측은 농수산·임업 분야의 증진을 위해 남한 측과 공동사업을 희망해왔다. 농수산물 가공센터, 어업·임업 협력, 그리고 광산물 공동 생산 협력 등이다. 또한 환경, 에너지 절약 기술에 대한 협력 사업은 현재 북한 측의 초미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들 사업들은 남한 기술을 북한 기반시설 내에 직접 적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기술 협력으로 뻗어나갈 바탕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한 측이 주로 제의해 합의가 이뤄진 사업들과 북한 측이 당장 희망하는 사업들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이 확연할 것이다. 남한이 주로 장기간에 걸친 중후장대형의 거시 담론에 치우쳐 있는 데 비해 북한 측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선호한다. 어떤 면에서 기술을 통한 산업 협력, 경제 공동개발에 대한 필요성에서는 남한 측보다도 북한 측 인식이 더욱 강렬한 것 같다. 또한 남쪽 기업들 처지에서도 이번의 합의 내용들은 그동안 대북 경협에 대해 기업들이 가져온 불만이나 필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해주 특구'에서 더 많은 질곡 겪을 듯

한 예로 공동선언은 ‘3통(통행·통관·통신)’의 해결을 애타게 기다린 개성공단 입주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즉각 상쇄하지 못한 채, 또다시 새로운 특별지대 혹은 특구 및 공단 건설로 넘어갔다. 일견 무모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로부터 내려온 개성공단을 실용적 경협이 가능하도록 리모델링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채, 또다시 ‘제2공단’ 이슈를 여러 담론과 섞어가며 꺼내든 것이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겨냥한 전략적 접근이랄 수도 있으나 이미 개성공단에서부터 북한 측의 불만에 부딪혀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질곡을 겪게 될지 눈에 선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월3일 남포시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공장 내부에 서 있는 시승차에 탑승했다.
 
북한은 이미 남쪽의 거대 담론에 식상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불만에서도 드러났지만, 사실 북한 지도층 대부분이 현재 이 공단이 애초의 계획대로 제대로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개성은 단지 임가공만을 위한 공단은 아니었다. 북한 산업 발전과의 연계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 상징물 이상의 기능을 하기에는 북한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게 북쪽 내부의 인식이다.

공동어로수역이나 평화지대 구상은 그 자체로는 기본 타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치 영역 속에서만 용해되면 경제 성과는 쉽사리 나타나지 못한다. 차라리 ‘조력발전’ 모델을,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사업 타당성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황해도와 경기도를 잇는 연선에 설치하는 것이 합의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전력협력이나 평화수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 덧붙여서 환경문제를 감안한 한반도의 백년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각도에서 보면, 개성공단과 인천항을 연결하는 개성-강화-영종도 도로 개설도 ‘수뇌급’의 공동 의지가 아니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업에 속한다. 경제 효과와 함께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는 사업의 발굴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이번에 개성공단 문제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경협 창구 교체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간 남북 간 경협창구 역할을 했던 통일전선부와는 차별화된 행정책임자인 내각 총리급, 부총리급, 국방장관급 채널이 등장했다는 의미다. 이제는 통전부 한 부서의 목소리를 북한 지도층 전체의 의견이라고 생각해온 그동안의 서울식 판단법을 버려야 한다. 그로 인한 판단 착오가 바로 이번에 개성공단에 대한 양 정상의 인식 차이에서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번 방문길에서야 그같은 실상을 정확히 알게 된 점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상호협력이 가능한 첫 단추부터 새롭게 껴야 할 것이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