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못 꾸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 정현백(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남한 측 특별수행
  • 호수 4
  • 승인 2007.10.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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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평양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수행원의 ‘특별한 방북기’.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의 일원으로 평양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한 정현백 대표(오른쪽 두 번째).
 
개성과 평양이 이렇게 가까웠다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시속 70~80km 속도로 두 시간도 채 안 달렸는데 평양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무는 많지 않았지만 녹지로 뒤덮인 정갈한 도로였다.
평양은 지난 여름 수해를 입은 도시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필자가 처음 평양을 방문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에는 거의 ‘회색 도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엔 분홍색, 베이지색 등 다양한 색깔로 칠해진 건물이 부쩍 늘었고, 창문 밖에 화분을 내어놓은 집도 많이 눈에 띄었다.

공식 환영식에 김정일 위원장이 등장할까 안 할까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인사로 끝낼 줄 알았던 김 위원장은 80~90명에 이르는 남측 수행원 전부와 이례적으로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얼굴에 부기가 좀 있긴 했지만 건강 악화설과 달리 매우 건강해 보였다.

노 대통령 5·1경기장 방문에 15만 관중 환호

그전 방문 때는 호텔 밖을 마음대로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약간의 산책을 허용해 그런대로 편안했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은 집이 많았는데, 전력 사정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네온사인으로 장식해놓은 길가의 가로수였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손님들한테 호의를 베풀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 1차 정상회담 때와 달라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호텔 안 상점과 물건도 많아졌고, 고장이 잦았던 화장실 시설도 현대화됐다.

함께 간 사람들끼리 평양 경제 사정이 좋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는 북측의 시장경제 활성화 조처와 상당히 늘어난 남측의 물자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데 대체적인 의견이 모아졌다.

둘째날엔 북측 김경옥 여맹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 여성계 인사들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눈에 띈 사람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김일성대학 여학생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북측이 젊은 사람을 배려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측의 여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수줍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 여대생이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한다”라고 답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측은 보수적인 사람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리랑 공연을 준비했다. 노 대통령이 5·1경기장에 입장했을 때 무려 15만명의 청중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는데, 우리나 북한 인민들이나 과거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확연한 변화를 실감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다른 무엇보다 경제협력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같았다. 평양 시내엔 선군정치 구호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주체탑, 애국열사릉과 같이 이전의 주된 참관 코스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지만, 이번엔 3대혁명 기념관 중공업관, 평화자동차공장, 서해갑문 등 주로 경제와 관련된 곳이었다. 경협을 강화하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려는 북측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실제 남북 정상은 경협 분야에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앞으로 실무회담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어떻게 더 구체화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적 동의를 얻어나갈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북한의 현 수준에 맞는 고민과 대책이 절실하다. 평화자동차공장을 예로 들면, 북한은 아직 중국 부품을 100% 수입해 조립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남북한 모두 평화 체제를 확립하고 경협을 확대해 나가는 데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먼저 나서서 실리적인 문제 해결을 희망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남한이 실용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정치 이슈 등 다른 문제로 정쟁을 벌인다면 서로에게 너무 큰 손해다. 여야,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없다. 시민사회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비판적 감시를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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