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어느 저녁, 나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있었다. 밤바람이 불 때마다 크레인은 끼드득 이빨을 갈며 비틀댔다. 내 손발도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숨 막히는 폐소 공포와 아찔한 고소 공포의 지옥. 노동자 김주익씨가 목숨을 끊은 조종실에서 나는, 그의 마지막 공간을 지키던 동지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8년이 지나서도 이 지옥이 여전히 지속될 줄은. 김주익씨의 친구 김진숙씨가 저 크레인에 올라가 친구보다 오랫동안 농성을 하게 될 줄은….

노동운동에 한 다리라도 걸친 사람치고 김진숙 이름 석 자 모르면 간첩이다. 그녀는 스물한 살 때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노동자이고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한 운동가이다. 공식 직함은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 노동운동 진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김 지도’의 연설과 문장을 접하면 끝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만다. ‘진정성’ ‘호소력’이라는 걸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그 결정체는 바로 김진숙씨 같은 이일 것이다. 바로 그 김진숙씨가, 지난 1월 초 김주익씨의 85호 크레인에 혼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벌써 170일이 넘었다.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오른 이유는 김주익씨가 크레인에 올라간 이유와 똑같다. 노동자 수백명을 또다시 잘라내려는 한진중공업에 맞서기 위해서다. 수개월째 지속된 한진의 상황을 대다수 언론이 외면했지만, 트위터와 같은 매체를 통해 김진숙씨의 외로운 싸움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고 무언가 흐름이 바뀌었다. 적지 않은 시민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내려갔다. 경찰과 용역의 폭력으로부터 김진숙씨와 85호 크레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것이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구조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투쟁은 제아무리 그것이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이라 하더라도(그 말 자체가 잘못이지만) 결국 진보성을 띨 수밖에 없다. 자본의 축적과 분배, 유통 과정을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동자 정리해고를 발표한 다음 날 한진 경영진이 주식배당금 174억원을 챙기는 풍경 같은, 자본의 ‘생얼’ 말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투쟁이 격화된 이유

지난 10년간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 투쟁이 격화된 원인은 노동자에게 있지 않다. 첫째 원인은 ‘돈을 벌어가지만 고용 같은 사회적 의무와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재벌의 탐욕과 파렴치함이고, 둘째 원인은 우리 사회에 그것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신규 수주 물량을 영도조선소에 주지 않고,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몰아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를 모두 자회사로 거느린 지주회사 체제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몰아주기가 사실이라면 요컨대 정리해고의 명분 쌓기를 위한 ‘조삼모사’에 불과한 기망 행위이므로 영도조선소 노동자의 해고는 위법이 된다. 그러나 이 조삼모사를 실제로 증명하고 제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진중공업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떤 진실을 새삼 환기한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는 진실. 언제부터인가 ‘해외로 자본 철수 협박’ ‘고용 회피’ ‘조세피난처 통한 탈세’ ‘중소기업 쥐어짜기’ 따위는 이른바 ‘글로벌’하게 덩치가 커진 한국 기업들이 공유한 습속이 됐다. 지금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처한 상황이 언제든 우리 자신과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은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가 억울하게 해고당해 눈물을 흘리고 있을 터이다. 김진숙씨는 85호 크레인이라는 최전선에서 우리 모두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그녀의 투쟁에 ‘참견’이 아니라 ‘참전’해야 하는 유물론적 이유다.

기자명 박권일 (〈88만원 세대〉 공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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