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일본 경제가 세 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일본 내각부가 11월15일 발표한 경제 관련 데이터들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의 이 나라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1%(연율 기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시장 예측기관들은 3분기의 일본 GDP가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에 깜짝 놀랐다. 그 감소 폭이 예측치(0.4~0.6% 축소)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15일, 일본 내각부는 3분기(7~9월) GDP 잠정치가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2.1%(연율)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거리를 지나가는 보행자들. ⓒEPA
2023년 11월 15일, 일본 내각부는 3분기(7~9월) GDP 잠정치가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2.1%(연율)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거리를 지나가는 보행자들. ⓒEPA

이로써 2분기의 낙관이 비관으로 반전되었다. 2분기의 GDP 성장률은 무려 4.5%(연율 기준)였다. 당시 일본 내외에선 ‘30여 년 이어진 디플레이션에서 드디어 탈출하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었다.

3분기 일본 GDP 성장률, -2.1%

‘3분기 축소’의 원인으론 민간 지출(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저조가 꼽힌다. 교도통신(11월15일)에 따르면, 일본의 민간 소비지출은 2분기의 0.9% 감소에 이어 3분기에도 0.04% 떨어졌다. 기업의 투자지출 역시 2분기엔 1.0% 감소, 3분기엔 0.6% 하락했다. 시장 전문 기관들과 학계는 3분기엔 소비와 투자가 어느 정도 늘어날 것으로 봤다. 현실은 기대를 무참히 배신하고 말았다. 3분기 수출은 자동차 덕분에 0.5% 증가했으나 전분기(2분기)의 3.9%에 비하면 성장세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와 투자가 두 분기에 걸쳐 연속으로 떨어지고 수출 실적의 성장세까지 하락한 것이다. 시장 분석 업체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마르셀 틸리언트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은 “일본의 GDP 성장률이 올해 1.7%에서 2024년 0.5%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AP통신(11월15일)에 말했다.

기시다 정부의 구상

이에 따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 경제의 부흥을 꿈꿨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선진국들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와중에 일본만은 고고하게 초저금리(기준금리 –0.1%,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1% 유지)를 유지해왔다. 이는 일본 경제에 ‘충격’을 가해 1990년대 이후 지루하게 계속된 ‘저물가로 인한 디플레이션 위기’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초저금리는 엔화 자산에 대한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투자 의욕을 일정하게 꺾어 엔화 약세(‘엔저’)를 유발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선진국들이 고금리인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결국 엔저는 일본 기업들이 수출 실적을 높이기에 유리한 환경(일본이 수출하는 상품의 국제가격 하락)을 조성해서 기업의 투자지출을 늘릴 것이다. 가계의 경우엔 초저금리 상황이라 돈을 빌리기 쉬운 데다 고용도 늘어나니 소비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렇게 가계와 기업의 지출이 증가하면 물가도 지난 30여 년 동안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적절한 수준으로’ 오르면서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킬 터이다. 또한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임금이 전반적으로 올라야 한다. 가계는 더 많은 소득을 얻어야 더 쓸 것이고, 그 소득의 증가분은 (일본 정부가 기대하는) 인플레이션보단 높아야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UPI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UPI

일본 정부를 배신한 팬데믹 이후의 상황

그러나 팬데믹 이후, 일본 정부는 거듭해서 어려운 과제와 맞부딪치게 된다. 우선, 엔저가 아무리 수출에 유리하다지만 엔의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안 된다. 지나친 엔저는 일본이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식량과 에너지 등 생필품의 가격을 지나치게 올려 민생을 억압하게 된다. 더욱이 엔 가치가 너무 떨어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외면받게 되면 글로벌 주요 통화로서 엔의 지위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등 고금리 국가들로 향하는 돈의 흐름을 막기는 힘들다. 엔의 가치는 수직낙하했다. 지난해 말엔 당시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달러 당 145엔’까지 엔 가치가 떨어졌다. 일본은행은 외환보유고를 털어 엔화 자산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렸다. 19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사용한 비상수단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엔화의 추락을 막을 수 없었다. 엔화는 올해 11월 들어 ‘1달러 당 150~151엔’까지 떨어졌다. 지난 1990년 이후 최저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기준금리 인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엔화는 지속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기시다 정부의 임금인상 정책도 지난 봄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반짝 성과가 있었으나 지지부진했다. 임금이 올라봤자 인플레이션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다. 일본의 인플레율(소비자물가지수 기준)은 올해 1월 4.3%에서 최근엔 3~3.3%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로이터통신(11월15일)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9월에도 2.4%(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내리는 등 18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엔저로 횡재를 얻은 것은 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들은 미중 대립,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 글로벌 차원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 전경. ⓒREUTERS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본점 전경. ⓒREUTERS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엔저의 수혜자인 대기업들마저 투자를 꺼리는 마당이니, 기시다 총리의 아름다운 구상이 현실에선 통할 리 만무하다.

17조엔 규모 경기부양책, 통할까?

일본은행은 최근 들어 초저금리 정책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3분기 실적 데이터로 알 수 있듯이 일본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질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선택하긴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친 엔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진퇴양난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저소득 가구 세금 감면 등을 포함한 17조엔(약 147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한편 다시 기업들의 임금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지금까지의 ‘충격 요법’들보다 경기부양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 노린추킨 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미나미 타케시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성장 동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본 경제가 4분기에 다시 위축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라며 일본이 경기 침체(recession)에 빠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