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7일, 의료진이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6월27일, 의료진이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의대 정원’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2020년 전공의 파업과 의사 단체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된 지 약 3년 만이다.

정부는 ‘2025년 대입’에 반영하겠다고 시점까지 못 박으며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필수의료 공백으로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탄 채 거리를 떠돌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이 전해지며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더 이상 거스르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반면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날이 갈수록 강경하게 의대 증원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6월15일 의료현안협의체 11차 회의에 의협 대표로 참석한 이광래 인천시의사회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의대 증원, 의사 확충은 수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국민 의료비는 늘어나고,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 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붕괴시키고, 의대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 이공계 파멸을 야기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확고히 했다.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료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6년 3058명으로 감축된 이후 18년째 동결돼 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OECD 국가(평균 3.7명) 가운데 멕시코(2.4명) 다음으로 적고, 한의사를 제외할 경우 2.0명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의사의 독점적 신분을 보장하는 이유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짚고 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왜 정부가 의사가 될 사람의 수를 정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력의 수요와 공급은 대부분 시장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IT 플랫폼 기업이 각광을 받자 개발자 수요가 늘고, 프로그래머가 인기 직업이 되자 구직자들은 ‘부트캠프’ 등에서 코딩을 배워 인력 공급이 뒤따르는 식이다.

의사는 예외적인 영역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의사 인력 수급을 노동시장에만 맡겨놓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료라는 서비스를 매개로 만나는 의사와 환자는 정보가 비대칭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의사가 값비싼 시술을 권하거나, 자주 병원을 찾도록 유도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입원을 권유해도 비전문가인 환자는 알아챌 수 없다. 이를 ‘공급자 유인 수요’라고 한다. 의사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거나 혹은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의사가 배출된다면 의료 시장의 특성상 공급자인 의사가 잘못된 의료 수요를 과다하게 유발할 위험이 있다.

​6월27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 참석자들. ⓒ시사IN 조남진
​6월27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 참석자들. ⓒ시사IN 조남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의대 정원을 규율하고, 시험을 통해 의사 면허를 발급한다. 사회적 필요에 알맞게 의사 수를 통제하고,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독점적 신분은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사가 비교적 높은 수입과 안정적 지위를 누리는 바탕이 된다.

정부가 의사 인력 수급에 관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의사를 양성하는 데에 10년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즉 의사 공급 계획은 그 당시가 아니라 장기적인 보건의료 수요를 추계해 선제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의료관리학 교과서에서는 의료 인력의 수요·공급 과정에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한 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에서 가장 기본으로 의료 인력 정책을 꼽는다.

8년째 동결이라지만, 한국의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은 사실상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 1960~1970년대 1910명이었던 의대 정원 수는 1980년대 2850명으로 확대되고, 1994년 3300명으로 늘어난다(〈그림 1〉 참조). 이후 2006년 3058명으로 240여 명이 줄어들지만 인력 수급 추계에 따른 조정이 아니라 2000년 의약분업을 관철하기 위해 의료계의 요구를 들어준 협상용 선택이었다. 의과대학 수 역시 1994년 수준인 40개가 유지되고 있다. 그 기간 한국 의료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단적으로 1994년 13조원(GDP 대비 3.4%)이었던 의료비는 2019년 154조원(GDP 대비 8%)으로 늘어났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급속도로 변화해온 지난 30년간 정부는 인력 수급 정책에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이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6월27일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과거 자료를 살펴보면 의대 정원이 일부 조정된 2005년 이전 의사 인력 추계에서는 의사 공급이 ‘부족하다’와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반반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수행된 연구들은 어떤 데이터를 활용하든, 어떤 분석 방법을 택하든 대부분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보건의료 개혁 운동을 해온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도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처음 했던 시기를 2012년쯤으로 기억한다. “공중보건 의사가 줄어드는 추세와 맞물려 그때 이미 지역에서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없는 실정이었다. 병원에서 뽑는 전공의 정원이 4000명가량인데 의대 정원은 3000명 수준이니 그것도 맞지 않았다.” 당시에도 의협은 이를 반대했다. “한국의 의사 수와 접근성이 OECD 평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데 의사 수를 확대한다면 향후 의사 인력 공급과잉에 따른 사회적 낭비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수 늘리기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나선 건 2020년에 와서다.

그사이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지역과 병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의사 인건비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0년 기준 의사 연평균 임금은 개원의 약 2억9400만원, 봉직의 약 1억8540만원으로 조사됐다. 전문의 기준으로 평균 노동자 임금과 비교하면 각각 7.1배, 4.6배 수준이다. 주요 국가 가운데 격차가 가장 크다(〈그림 2〉 참조).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의협에서는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가 상승해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날 거라고 주장한다. ‘의사(공급자) 유인 수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숫자와 비교해 의사 수를 적정·과잉·과소로 나눌 수 있을 텐데 한국은 의사 공급이 과소하기 때문에 의사 인건비가 올라가고 있다. ‘유인 수요’가 아니라 공급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일선에서 들리는 얘기는 지표상 체감보다 심각하다.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과 강원도 속초의료원이 수억 원대 고액 연봉에도 내과와 응급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는 뉴스가 떠들썩했지만 이제 더 이상 지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수도권 소재 병원들조차 진료과목을 가리지 않고 의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인근의 한 병원은 영상의학과 의사를 뽑지 못해 애를 먹다가 연봉 3억원대에 80대 의사와 계약했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은 마취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몇 달간 수술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2012년 수행된 ‘적정 의사 인력 및 전문 분야별 전공의 수급 추계 연구’에서는 2020년 국내 의사 수가 최소 3만4000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사무실 전경. ⓒ시사IN 조남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사무실 전경. ⓒ시사IN 조남진

의협에서는 현재 불거지는 문제들이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과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지면서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게 되는 ‘배치 실패’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6월27일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에 발제자로 나온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의 우봉식 원장은 “의대 증원이 만능 키처럼 얘기되는데 그런 논의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발제문에는 “무작정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는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근무할 수 있도록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썼다.

성적 안 돼도 의사 되고 싶은 사람 뽑는다?

패널 토론에 나온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을 썼다. “최근 주석중 교수님 사건도 보면 60이 넘도록 10분 대기조로 살았다(6월16일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응급수술이 많아 병원 10분 거리에 살며 환자들을 진료했다). 어떤 의사가 자기 인생 다 포기하면서 한평생 그렇게 살겠다고 하나. 그렇게 살 사람이 없으니까 (의대 정원을 늘려) 성적은 안 되지만 의사 되고 싶은 사람을 뽑아서 양육을 시키겠다는 것 아닌가. 학생 한두 명 있는 낙도에 교사가 부족하다고 교대 정원을 왕창 늘리면 낙도에 교사가 가나? 오히려 대도시에 교사가 남아돌아 수많은 사회문제를 낳을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자로 참석한 권정현 KDI 연구위원(보건경제학)은 의협 쪽 참석자들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권 연구위원은 〈시사IN〉과 통화에서 “의사 수를 늘려봤자 필수의료에 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의협에서는 필수과를 기피하게 되는 기울어진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자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권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문 과목별로, 의료기관별로 의사의 소득은 크게 차이가 난다. 안과의 경우 임금노동자 대비 소득비는 10.1배에 이르지만 소아청소년과는 3.5배이다(〈그림 3〉 참조). 의료기관에 따라서는 병원과 의원이 임금노동자 대비 소득비가 각각 8배, 6.8배인 데 비해 필수의료 성격이 더 짙은 종합병원(5.4배), 상급종합병원(4.1배)은 그보다 낮았다(〈그림 4〉 참조). 소위 ‘바이탈 과’라고 불리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과목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의료소송 위험, 빈번한 당직 근무를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개원의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이 돌아오는 것이다.

“순수하게 경제학적 관점에서 따져보면 의사 수를 대폭 늘려서 피부·미용처럼 현재 큰 소득을 올리고 있는 분야를 ‘레드 오션’으로 만들면 장기적으로 의사 배치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고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하자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권정현 연구위원).”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의사 수 확대 못지않게, 늘어난 인력이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로 유입되는 배치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정원 확대는 현재 한국 의료가 봉착한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물꼬이지 의협의 주장처럼 “의대 증원을 만능 키”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상 의협은 필수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핑계 삼아 ‘배치 실패’라는 논리로 의대 정원 논의도, 수가 올리기 이외에 실질적으로 기피 과의 근무여건을 개선할 방안 찾기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협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의사라는 직군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이다. 의사들이 대부분 가입돼 있지만 의사결정은 개원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의사 수를 늘리는 정책은 의협의 이익에 반한다.” 면허 제도의 속성상 희소할수록 그 가치는 높아진다. 특히 한국처럼 행위별 수가제(의료 행위마다 돈을 지불하는 제도) 아래에서는 의사 공급이 적을수록 의사들의 기대수익은 늘어난다. 남은경 국장은 의대 정원을 의협과 협의해 결정하는 구조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이 논의에서 중요한 상대이지만 지금처럼 허락을 구하는 합의의 대상일 수는 없다.”

4월11일 경북대병원 응급실 앞에 사설 구급차가 세워져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11일 경북대병원 응급실 앞에 사설 구급차가 세워져 있다. ⓒ시사IN 신선영

논의 참여 주체를 확대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나온 이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6월27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분과위원회를 통해 의료 수요자 단체, 환자 단체, 전문가들과도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의·정 간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며 즉각 비판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각종 분야의 논의를 중단할 것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6월29일 열린 12차 의료현안협의체에는 예정대로 참석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의사의 면허에는 의료를 제공하는 독점적 권한뿐만 아니라 정부가 그 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까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두 번째 의미에 대해서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는 오랜 기간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을 방치했고, 전문가 단체를 표방한 이익단체는 번번이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의료 현장의 사정을 잘 아는 한 보건 관료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내부의 상황을 접하는 입장에서는 이대로라면 위기가 아니라 거의 임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실기(失期)의 대가는 이처럼 크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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