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절대 강자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그런데 6월14일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양사의 앞날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상황 변동이 없다면, 4개월여 뒤부터 엄청난 외부적 충격을 받게 된다. 양사가 당장 오는 10월부터 중국의 현지 공장에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갈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대(對)중국 수출규제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 조치를 단지 1년, 즉 오는 10월까지 ‘유예’받은 상태다.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40%, SK하이닉스는 디램(DRAM)의 40~50%를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갑자기 날아든 낭보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미국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의 6월12일 자 보도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타이완의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대해 지금의 유예를 연장해서 중국 현지의 반도체 제조 사업을 유지하고 확장하도록 허용할 예정”이다. 이 신문은 미국의 보복(reprisals)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도 썼다. 이 신문은 앨런 에스테베즈 상무부 산업 및 안보 담당 차관이 “지난주 열린 미국반도체산업협회 모임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라고, 여러 참가자의 전언을 바탕으로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보도 내용이 실현된다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물론 TSMC(타이완의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도 사업 재편에 사용할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 로고 ⓒAP Photo
삼성전자 로고.ⓒAP Photo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7일, 슈퍼컴퓨터 및 고성능 컴퓨터에 들어가는 최첨단 반도체 및 제조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10‧7 조치). 일정 성능 이상 최첨단 반도체(18나노급보다 미세한 DRAM,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등)의 제조에 활용되는 장비 및 기술의 대중국 수출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10·7 조치는 미국 기업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들에도 적용된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설사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미국산 장비나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졌다면, 판매를 중단시킬 권리를 갖는다. 한국 기업들 역시 미국의 기술과 장비가 없다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즉, 한국 기업들 역시 10‧7 조치를 어기는 경우, 미국 법률에 따라 기소되거나 경제제재를 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 타이완 기업들에 대해서는 이 조치의 적용을 오는 10월까지 1년간 유예해줬다.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이 유예를 연장해준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4월3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 정부가 한국의 두 회사에 대해 유예기간을 내년(2024년) 10월까지 연장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밑밥’이 던져지던 끝에 바이든 행정부의 주무 담당자까지 나섰으니 ‘유예 연장’을 좀 더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설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예 연장 덕분에 내년 10월까지 중국 현지 공장에 장비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 전개될 미·중 ‘반도체 전쟁’의 불똥을 온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와 합의 하에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국 수출규제 법안을 7월까지 통과시킬 예정이다. 미국의 10‧7 조치는 최첨단 반도체 및 장비에 제한되어 있지만, 일본의 법안은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는 ‘레거시 반도체(28나노급 이상의, 저렴하고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제품)’ 제조 장비까지 규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오는 여름이 지나면 중국 내 자동차 및 가전제품 업체들까지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는 물론 ‘레거시 반도체(28나노급 이상의, 저렴하고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제품)’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까지 규제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삼성전자 등 외국 반도체 생산업체 및 연구기관 7개사 대표와 만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는 물론 ‘레거시 반도체(28나노급 이상의, 저렴하고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제품)’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까지 규제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삼성전자 등 외국 반도체 생산업체 및 연구기관 7개사 대표와 만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연합뉴스

마침 중국은 지난 5월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통신이나 교통 등 ‘인프라 관련 업체(레노버나 샤오미 같은 가전업체들도 해당된다)’들이 자사 제품에 마이크론(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 반도체를 장착하지 못하게 했다. 중국은 ‘마이크론 반도체 판금’으로 발생하는 메모리 반도체 부족을 한국 기업 제품으로 채우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석열 정부에 ‘마이크론 반도체 구입 금지에 따른 중국의 수요 부족을 한국 기업들이 채워주지 말라’고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이후 한중 관계는, 양국 정부가 각각 상대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정부의 10‧7 조치 유예 연장을 순수하게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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