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준비해보는 인터뷰라 다소 긴장한 주민들에게 “어머님 자제분 친구라고 생각하고 질문거리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조언했더니, “결혼은 언제 할 거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와 같이 어머니들만이 할 수 있는 ‘강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1000개의 직업’ 체험을 위해 지난 3월 둘째 주 〈시사IN〉 기자가 찾아간 곳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써니사이드업’과 ‘하품’. 이곳 직원들은 스스로를 ‘문화 기획자’나 ‘컬처 매니저’ 혹은 ‘일 벌이는 사람’ 등으로 소개한다. 문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이어 또 다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어떤 이들은 이 직업을 ‘문화 복덕방 사업자’라 부르기도 한다.
전아름 써니사이드업 대표(23)는 “남을 도와주면서 나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다가,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를 재료로 판을 벌여보자는 생각에 이 회사를 창업했다”라고 말했다. 2009년 8월 ‘마포 희망기획단’이라는 단기 지자체 사업단에서 출발해 지금은 민간 비영리 문화 기업으로 독립한 ‘하품’의 김정미 홍보팀장(24)은 “내가 낸 아이디어가 이내 현실이 된다는 게 우리 직업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박경일 하품 대표는 “최근 문화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원 활동 정도로 그치던 문화 기획 업무가 충분히 어엿한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라고 말했다.
대체 무얼 하는 직업인지는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써니사이드업은 직장인 등 일반인과 예술가의 만남을 주선하는 ‘컬처포트락파티’ ‘문화다방’과 같은 행사를 꾸렸고, 지금은 문화 정보와 인물을 모은 온라인 플랫폼 ‘컬처업’을 개발하고 있다. 하품은 실버 세대에겐 일자리를,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겐 상상력을 선사해주는 ‘동화 구연 희망 아카데미’와 성산2동 댄스 아카데미 ‘쉘 위 댄스’를 개설하고, 마포구 문화 자원 조사 작업 ‘마포 컬처 트리’를 진행하고 있다. 하품이 만드는 마을 문화 소식지 〈홍대 찾기〉는 벌써 1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곳곳에 소소하게 흩어져 있던 문화 인물과 공간이 이들 ‘문화 복덕방’을 거치면서 살이 붙고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화적 냄새’가 나는 공간을 찾아 그곳 명칭, 대표 이름, 연락처 및 전시·공연·교육 활용 가능 여부와 수용 인원, 보유 장비 목록 등을 조사지 안에 기입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뮤직 스쿨에서는 대표자가 자리에 없다고, 어떤 스튜디오에서는 곧 이사를 간다며, 어느 가죽 공방에선 그저 싫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혹시나 하고 들여다본 공간에서 뜻밖의 수확
하지만 의외의 수확도 컸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서 본 한 출판사 건물 지하에서 ‘무따기홀’이라는 강연·교육 공간을 발견했다. 조사차 방문한 성미산 마을 극장에서는 우연히 KBS 〈TV 미술관〉 촬영 현장을 구경하기도 했다. 카페 ‘작은 나무’에서 소개받아 찾아간 카페 겸 공방 ‘햇빛 부엌’은 이날 찾은 가장 반짝이는 문화 공간이었다. 유기농 음료와 간식거리를 팔면서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는 이 카페 지하 공간에서는 댄스 수업과 모닝 요가 교실도 열리고 있었다. 다양한 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문화 사랑방이 꾸려질 수 있듯, 다양한 색깔을 지닌 이런 공간들을 또 한 번 연결하면 훌륭한 지역 문화 네트워크가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사회적 기업 써니사이드업도 비슷한 문화 자원 네트워킹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의 문화예술인 버전 같은 온라인 플랫폼 ‘컬처업’을 3월 중 베타(시범) 서비스로 오픈할 목표로 디자인·개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 대표는 “앞으로 우리처럼 숨어 있던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지면은 세상을 바꾸려는 ‘대안 직업’의 세계를 기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난으로,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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