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하기에 왔습니다.” 이해웅 (주)타임교육 입시연구소장(사진 오른쪽)이 웃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 주최한 ‘자녀 진로 지도를 위한 행복한 진로학교’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흔히 ‘좋은 일자리’라고 하면 사회적·경제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곳을 꼽는다.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입에 목매고, 입시 사교육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사교육 바로알기’ 운동을 벌여온 이 단체가 진로 교육에 눈을 돌린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 진로에 대한 상상력이 닫혀 있는 한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 그 바탕에 있다.

 
11월4일~12월23일 매주 목요일 8회에 걸쳐 펼쳐질 ‘행복한 진로학교’ 강좌는 월급을 많이 주는 곳,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만이 좋은 일자리인가 되묻는다. 다양한 영역에서 적성과 재능에 따라 사회 가치를 구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체험담을 통해 직업과 진로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직접 강좌를 듣고 싶은 이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신청하면 된다.
-편집자 주


1994년부터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5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고, 그 다음부터는 입시 상담을 주로 해왔다. 2000년 초반부터 서울 강남의 한 논술학원장을 하면서 초·중·고교 논술을 다 해보았다. 흔히 사교육 시장이 초등·중·고등으로 전문화되어 있는데, 각 영역을 두루 경험해본 셈이다. 2년 전부터 학부모 교실을 열어 부모들과 교감해왔다. 학부모 2000여 명을 만나왔다.

부모들이 자녀의 진로를 정할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게 있다. 인구 변화다. 아이들 수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에 고3 학생은 대략 74만여 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고3이 되는 2018년에는 그 수가 45만여 명이 된다. 지금 서울대를 가는 아이가 전국의 상위 1% 정도인데, 그때가 되면 전국에서 상위 2%에 드는 아이들이 여유 있게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교사가 안정적 직업으로 꼽히고 있는데, 과연 미래에도 그럴까? 가르칠 아이가 점점 줄고 있는데…. 사교육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맞춤형·소수형 사교육이 강화되고, 학습보다 교육 설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교과 내용을 직접 알려주고 강의하는 것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교과 내용을 알게 할까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강의에서 교육 컨설팅으로, 티칭(teaching)에서 코칭(coaching)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진로 교육과 관련한 사교육 시장의 현황은 이렇다. 유치원에서 지능지수(IQ) 검사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IQ 검사를 하고, 교육 설계를 한다. 한 유치원에서 IQ 검사를 받았는데 낮게 나오면,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 IQ 검사를 또 받게 하는 부모도 있다. 혹시 자녀의 IQ가 오를까 해서. 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진로 검사를 한다. 학부모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자녀의 적성이 문과로 나오면 싫어한다. 이과를 선호하고, 자녀의 적성이 의학 계열로 나오면 환호한다. 그리고 예체능계 적성이 높게 나오면 화를 낸다(청중 웃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과 적성이 높게 나올 수 있는지 상담하자고 한다. 부모가 어떤 틀을 정해놓고 자녀의 진로 궤도를 짜려는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선행학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 부모의 관심은 과학고·자립형 사립고·외고로 쏠린다. 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부터 자녀의 성적에 따라 진로를 현실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시사IN 백승기
진로 교육의 키워드는 정보·범위·롤모델

진로 교육의 키워드를 꼽자면 정보·범위·롤모델을 들 수 있다. 먼저 물어보자. 대학 학과 중에 취업률이 가장 낮은 학과가 어디인 줄 아는가? 법학과이다. 취업률이 40%대이다. 그러면 가장 높은 과는? 간호학과가 1등이다. 95%에 가깝다. 한동안 생명과학 관련 전공 학과가 많이 늘었는데, 이들 전공자들이 졸업 후에 어떤 직업을 주로 갖게 될까?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학과에 진학해 나중에 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이런 정보에 어둡기 때문에 최초의 진로 선택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이과’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수학을 잘하면 이과, 수학을 못하면 문과라는 식으로.

정보를 찾은 후 두 번째로 할 일은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진로 범위를 서너 개로 좁혀보는 것이다. 범위를 좁히면 초등학교 3학년생도 그 직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그 다음에 롤모델을 찾고, 그 직업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 6학년 수행평가에 ‘롤모델 인터뷰’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 직업에 대해 묻게 한다. 한 아이가 만든 사전 질문지를 보았는데 질문이 27개가 넘었다. 이를 통해 아이는 막연하게 알았던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요즘은 사교육에서 진로 교육에 대해 선제 대응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진로 검사를 하고, 적성 평가를 하고, 롤모델을 정해 만나게 하는 학원이 생겨나고 있다. 진로 상담마저도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와 진로 상담을 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학생과 적성·진로 상담을 하면, 마지막에 아이가 묻는다. “그래서 무슨 과에 가요?” 찍어달라는 얘기다.

ⓒ대구시교육청위는 ‘진로 박람회’ 모습.
공익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가 아이들 중장기 로드맵을 짤 때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부모 정도의 나이(40대)에 무슨 일을 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 중간 단계에서 30세에 직장은 어디에 두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대학과 전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계를 해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입시 통과만 신경 쓰지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 나중에 무엇을 할지 모르니까, ‘일단 지금은 국·영·수도 잘해야 하고,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해’ 하는 식이다. 이럴 때 교육 과소비가 일어난다.

학부모 교실을 하게 되면 부모에게 숙제를 내준다. 아이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20개씩 적어오게 한다. 그러면 부모들이 난감해한다.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진로를 즉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모두가 1등이 되려고 경쟁시킨다. 유대인 교육이 유명한데, 이런 말이 있다. 1등이 될 수 있는 곳을 찾게 하라. ‘1등이 되라’와 ‘1등이 될 수 있는 곳을 찾게 하라’는 큰 차이가 있다.

진로와 관련한 숫자를 보자. 1983년에 서울대 신입생이 6500여 명이었다. 졸업정원제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3200여 명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이화여대에 가려면 전국에서 6만 등 정도면 가능했다. 지금은 3만 등 안에 들어야 한다. 전국의 중학교가 1980년에 2100여 개였고, 2009년에는 3100여 개이다. 1980년에 중학교의 한 학년 학급 수가 1만2000여 개이고, 2009년에는 2만여 개에 가깝다. 1980년에 반에서 5등을 했다 하면 대략 전국에서 6만 등 정도였는데, 2009년에 반에서 5등이라면 전국에서 10만 등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부모 세대는 자기 때 기준으로 아이들의 성적을 평가한다. 이런 숫자 차이를 모른다.

직업 숫자에도 변화가 있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분이 자녀의 진로로 의사를 선호한다. 부모와 상담해보면, 3년 전에는 “의사를 하면 그래도 돈을 많이 버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말이 바뀌었다. “안정적이니까”라고. 1990년에 의사가 4만2554명이었다. 2005년에는 8만3367명이었다. 2019년이면 의사가 15만8000여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의사 수입이 지금과 다르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학부모 교실에서 매번 설문조사를 했다. 돈, 명예, 재미(Fun), 안정성, 적성(Aptitude) 가운데 자녀의 진로를 무엇으로 결정한다고 대답할까?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돈’이라고 답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이 ‘안정성’이고, 두 번째가 ‘적성’이다. 세 번째로 ‘재미’가 많이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은 전부 가수나 연예인을 시켜야 한다(청중 웃음). 무엇보다 안정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학부모·학생 상담을 해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부모가 생각하는 로드맵과 아이가 생각하는 로드맵에 차이가 있다(〈표1〉 참조). 부모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단 1등급으로 빨리 올리고, 중학교 때부터는 계속 1등급을 유지하자고 한다. 반면 아이들은 초등·중학교 때는 어느 정도만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때 바짝 공부하자고 생각한다. 〈표1〉처럼 간극이 생긴다. 부모는 공부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멍때리기(멍하니 있기) 기술’을 터득한다. 요즘 아이들 80%가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냥 ‘멍때리다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2단계 기술을 터득한다. 눈동자가 똘망똘망하게 보이게 하고 가끔 수업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인다(청중 웃음). 막상 내용을 물어보면 모른다. 교육 과소비가 ‘멍때리기’ 기술만 늘게 한다. 이런 간극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진로 정보를 찾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대학 입시’ 말고 ‘대학’을 고민하자

한국은 고3의 대학 진학률이 83∼84%에 이른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치다. 그 대학들 가운데 특성화가 잘 되어 있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곳은 얼마나 될까? ‘편입생을 많이 배출하는 대학’이라고 홍보하는 대학도 보았다. 앞으로 많은 대학이 유지조차 힘들 것이라고 본다.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는데, 과연 1년에 그 많은 돈을 들여 대학에 다니는 것이 효과적인가? 그 비용으로 외국의 직업 기관을 찾는 것은 어떨까? ‘아이비 리그’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 대학으로 유학 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이비 리그 대학에 진학한 외고 출신 가운데 현지에서 취업을 못하고 다시 돌아와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이 많다. 미국 말고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으로 채널을 넓힐 필요가 있다.

요즘 학원가를 보면 선행학습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우선 초등학교 문제가 어려워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미리 선행학습할 여유가 적어졌다. 또 사교육 시장에서도 무리한 선행학습이 성적으로 올리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선행학습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천천히 기본을 다지자는 분위기다. 부모들이 자기 역할을 너무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진로 교육도 사교육의 컨설팅에 맡기려고 한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직업은 20여 개로 압축된다. 다양성이 부족하다. 좀 더 진로 정보를 모으고, 범위를 좁히고, 롤모델을 함께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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