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9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맹국들 사이에 철군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아프간에 2000여 명을 파병한 네덜란드 군대가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네덜란드 군은 아프간 남부 우루즈간 주 치안을 책임지던 임무를 끝내고 지난 8월1일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1000명 이상을 파병한 주둔군 주력 부대가 물러나는 것은 아프간 치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 군의 철군은 아프간 탈출의 첫 신호탄으로 다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에게 연쇄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그만큼 철군을 둘러싼 각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네덜란드 군은 2006년 아프간에 파병되어 만 4년간 남부 우루즈간 주에서 전후 재건을 돕는 임무를 수행했다. 군인들은 헬멧을 벗은 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우리는 군인이라기보다 친구로서 당신들을 도우러 왔다’며 아프간 민심을 얻는 데 주력했다. 기지에 커다란 풍차를 세우고 의료 활동을 하며 아프간 주민과 가까이 하려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주둔군 24명이 목숨을 잃고 기지는 탈레반의 로켓에 공격당하기 일쑤였다. 카리 요세프 탈레반 대변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온 네덜란드가 결코 주민 편에 설 수 없다. 우리는 계속 공격할 것이다”라며 네덜란드 군을 협박했다.

ⓒNetherlands Defense Ministry동맹국들이 떠난 자리는 대부분 미군이 메워야 할 판이다. 위는 8월1일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네덜란드 군 모습.

네덜란드 정부가 아프간 원조와 파병에 투입한 돈만 18억 달러(약 2조1100억원)에 이른다. 잇달아 발생하는 사상자와 성과 없는 주민친화 정책, 끝없이 들어가는 전비로 네덜란드 국민은 철군을 요구했다. 결국 네덜란드에서는 아프간 철군 문제로 연립여당 내 이견이 생기고 파병 연장안을 내놨던 얀 페테르 발케넨데 총리의 연립정권은 올 초 붕괴됐다.

영국 군마저 철군 조짐 보여

네덜란드 군 철군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 2월 다이쿤디 주와 우루즈간 주 접경 제르마에서 발생한 나토 군의 오폭으로 민간인 27명이 희생된 사건이었다. 당시 희생자들은 버스를 타고 다이쿤디 주의 케즈란에서 칸다하르로 가던 길이었는데, 나토 군이 이 차를 무장세력 차량으로 오인하고 폭격을 가했다. 이 사건이 네덜란드 관할 지역인 우루즈간 지역에서 일어났고 사상자 후송과 사건 처리를 네덜란드 군이 맡으면서 졸지에 민간인 오폭의 주체가 된 것이다. 물론 이 오폭을 한 당사자는 나토 군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네덜란드 군의 단독 작전도 아니었다. 네덜란드 군으로서는 억울하게 되었고  네덜란드에서 아프간 철군 여론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사실 네덜란드 연정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그들의 철군은 예상된 바였다. 미국은 만약 네덜란드가 연말께 철군에 나설 경우 현재 헬만드에 집중된 영국 군 병력을 네덜란드가 주둔하던 우루즈간에 재배치해 공백을 메운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영국 군도 철군을 논의하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영국도 아프간에서 나가려는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맡았던 우루즈간을 책임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Netherlands Defense Ministry네덜란드 군(위)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심으며 아프간 민심을 얻으려 했다.

영국 군의 철군 조짐은 최고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남부 헬만드 주의 상긴 지역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헬만드 주 북부 전략 요충지인 상긴은 아프간 파병 영국 군 약 9500명 중 900여 명이 주둔했다. 2006년 6월 영국 군이 이 지역에 처음 배치된 후 전체 영국 군 사망자 312명 가운데 약 100명이 이곳에서 발생했다. 너무 위험한 데다 막대한 인명 피해만 초래하는 이 뜨거운 감자를 영국 군은 연말까지 미군에 넘기고 서서히 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당선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헬만드 주 아슈카르가의 영국 군 부대를 방문해 철군을 언급했다. 그는 “정부는 아프간에 완벽한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는 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영국 군은 단 하루도 필요 이상으로 아프간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추가 파병은 조금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미국이 아프간 철군 개시 일정으로 제시한 2011년 7월 이전에라도 영국 군이 철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영국은 현재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아프간에 많은 병력을 파병하고 있다. 하지만 운 나쁘게 가장 격전지인 아프간 남부를 맡는 바람에 전사자를 미군 다음으로 많은 331명이나 냈다. 당연히 영국 여론은 들끓었다. 더구나 현재 영국 경제 상황은 말이 아니다. 영국의 2009~ 2010년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1634억 파운드(약 335조원)로 사상 최대이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6%에 달하며, 정부 부채 총규모는 8900억 파운드로 GDP 대비 62%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최근 그리스 사태 등이 영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영국은 앞으로 6년 동안 국방 예산 10~15% 삭감을 계획 중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공군 전력과 해군 전력 4분의 1을 줄일 예정이다. 리엄 폭스 영국 국방장관은 영국의 막대한 공공부채에 대해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후 날마다 120만 파운드씩 빚을 지고 있는 꼴이다”라며 국방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처럼 ‘돈 먹는 하마’를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미 2011년 철군을 확정지은 캐나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나토 회원국 중 이탈리아·독일·덴마크도 철군 논의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과거 동맹국들은 테러에 대한 굴복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아프간 파병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철군을 가시화하는 것은 내년이면 아프간 주둔 10주년이 되면서 그동안 동맹국으로서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Reuter=Newsis6월11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운데)가 아프간에 주둔한 영국 병사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지난 7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회의가 수도 카불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 40개국 외무장관과 국제기구 대표 70여 명이 참석했다. 각국 대표는 2014년에는 연합군이 모든 치안권을 아프간 치안군에게 맡기는 데 합의했다. 이 회의는 지난해부터 유럽 정상들이 줄기차게 유엔을 독촉해서 연 회의이다. 이 국제회의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아프간 주둔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이런 움직임이 반갑지 않지만 나라마다 처한 상황을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이 국제회의에서 2014년이라는 기간을 명시한 것이다. 즉, 2014년에는 아프간 모든 주에서 미군이 군사작전을 주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그 안에 어느 나라든 철군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캐나다도 내년에 파병 부대원 2700명을 철수시킨다. 최근 폴란드도 철군을 발표했다. 캐나다와 폴란드는 모두 나토 군 주력 부대다. 이들 나라가 모두 빠지면 헬만드-칸다하르-우루즈간으로 이어지는 서남부 전선 전력에 대책이 없다. 이렇게 각 나라의 아프간 철군이 본격화되면 최후까지 남아 있는 나라가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네덜란드 군이 담당했던 지역이나 캐나다 군이 맡았던 지역은 이제 모두 미군이 맡게 된다. 그리고 만약 영국 군도 나가면 아프간 남부 전체를 미군이 맡거나 그 외 동맹국들이 나누어서 담당해야 한다. 아프간에 있는 대다수 동맹국은 출구전략에만 고심하지, 추가 파병이나 아프간의 더 많은 지역을 맡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동맹국으로 아프간에 파병을 한 한국 군은 300여 명밖에 안 되지만 이런 상황이 결코 반가울 수 없다. 한국 군이 맡고 있는 지역이 아프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북부이지만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도 않다. 한국 군이 주둔할 예정인 파르완 주 바로 위에 있는 쿤두즈의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독일도 철군을 서두르는 상황이다. 독일은 지난해 독일 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과 올해 터진 아프간 병사 6명 살해사건 등으로 철군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철군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독일 역시 다른 동맹국들과 마찬가지로 2014년까지라는 선을 그어둔 것이다.

한국 군 주둔 지역 치안에 문제 생길 수도

이런 와중에 최근 쿤두즈에서 무장세력의 활동이 많아졌다. 아프간 뉴스 통신사의 북부 지역 담당인 샤마르 기자는 “최근 쿤두즈 지역이 많이 위험해진 것은 체첸과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전사들이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간 남부보다는 북부 지역을 선호한다. 탈레반도 북부 지역에서 자살 폭탄이나 무장투쟁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쿤두즈에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독일 군 4200명이 주둔하고 있다. 만약 독일 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면 북부 지역 치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한국 군이 재건사업이라는 좋은 취지로 아프간에 파병되었다고 해도 치안에 문제가 생기면 임무 수행에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 군은 아직 아프간 북부 미군기지 바그람에 있지만 조만간 파르완 주 차리카 기지 공사가 완료되는 대로 독자 부대로 이전할 예정이다. 2009년 12월 국방회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위원·해설위원 초청 국방 정책설명회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국익 차원에서 (병력이) 가는 것이고 피해가 있다고 철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의 위상이 남을 돕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했다. 아프간에서 한국 군의 정면 돌파가 어떻게 통할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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