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오후, 지하철 과천 정부청사역 11번 출구 승강기 공사장에서는 ○○건설 인부들이 한창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황 아무개씨(48)도 그 일용직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회색 작업조끼를 입고 흰색 안전모를 깊이 눌러쓴 그는 연방 무거운 목재를 들거나 철근을 나르고 있었다. 작업 도중에 간혹 담배를 꺼내 물며 흐르는 땀을 식혔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 노동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닌 듯했다.

이 사내가 전직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건설 안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는 사실 2007년까지 이스라엘 대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그 전에는 국제분쟁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국제정보전에 참가했던 베테랑 요원이었다. 이 국가 인재가 막노동 일꾼이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것은 이스라엘 대사관에 부임한 지 1년이 지난 2007년 3월부터였다(〈시사IN〉 제41호 기사 참조).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관사의 월세가 2500달러(연 3600만원)라고 알고 있었다. 전임자가 황씨에게 위임받지도 않은 채 황씨 이름으로 그렇게 계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의 실제 임차비는 알고 보니 겨우 월 1300달러(연 1800만원)에 불과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집값이 부풀려 있었던 것이다. 전말을 알아본 황씨는 전임자 이○○ 서기관이 집주인과 짜고 집값을 부풀려 월500달러를 착복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횡령에 협조한 집주인은 월 700달러의 초과수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 전형적인 이면계약서를 통한 주택구입비 횡령 사건이었다.
 

ⓒ시사IN 조남진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는 전 국정원 직원 황 아무개씨.


황씨는 이 사실을 국정원 본부에 보고했다.  만약 여기서 국정원과 외교부가 상식적으로 횡령 직원을 징계하고 사건을 조사하고 감사 처리 했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일은 황씨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외교부·국정원의 수상한 뒤처리로 고통

국정원과 외교부는 ‘비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황씨를 내부에 분란을 일으키는 문제 인물로 몰아갔다. ‘계속 문제를 야기코자 의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대사관이 외교부 본부에 보고한 문건 속 표현이다.

국정원과 외교부가 당시 ‘비리’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국가 공금이 아니라 황씨와 이씨 간의 사적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이 챙긴 돈(월 500달러)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해명을 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집 수리비’조로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뒤 정황을 보면 ‘집 수리비’라는 설명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집 수리 의무가 입주자가 아니라 집주인에게 있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황씨가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전에 대사관 직원들끼리 집주인과 (황씨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은 외교부 내부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그 집 가치가 월세 1300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은 라마트 아비브 소재 부동산 사무소가 확인했다. 

비리를 은폐하려는 국가기관에 대해 환멸감을 느낀 황씨는 2007년 8월 이스라엘에서 ‘의원 면직’(스스로 퇴직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황씨는 2007년 9월 퇴직 통보를 받았다.

국정원은 황씨를 두 번 죽였다. 국정원은 황씨가 한국으로 바로 귀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7년 12월 그에게  해임 처분을 내린다. 공무원에게 ‘스스로 퇴직’한 것과 ‘해임’당한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황씨는 해직자 신분이 되면서, 퇴직자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동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해직자’ 딱지 속에 지난 3년 동안 재취업도 하지 못했다.

황씨가 귀임 명령에 응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거주하던 이스라엘 집의 계약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 ‘귀국할 수도, 이스라엘에 남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황씨가 억울하게 해임당한 지 2년6개월이 흐른 지난 6월8일 고등법원(2심)이 그의 손을 들어줘 해임 무효 판결을 내렸다. 황씨 측 소송을  대리한 장유식 변호사는 “국정원이 상고하지 않아 7월6일 마침내 해임 무효가 확정됐다. 황씨는 자신이 퇴직 처리된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귀임 명령에 응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2008년 억울함을 호소했던 황씨 아내가 이스라엘 현지 신문에 실린 한국 대사관 추문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던 모습.


이 소송을 치르는 동안 황씨는 국정원에 혹여나 약점이 잡힐까봐, 휴대전화도 못 쓰고 살았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의혹에 시달렸고, 외부인과 접촉하기조차 어려웠다. 또 국가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막대한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국정원과 외교부가 황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거나, 1심 판결에 승복했다면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이었다.

황씨는 판결 확정을 받은 지 3주가 지난 7월30일 현재까지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출근해야 하는지, 아니면 또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현재 법률적 절차가 진행 중이라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7월30일 “그 재판 결과는 해임 처분을 의원 면직 처분으로 바꾸는 판결로 안다. 국정원은 황씨에게 재판 결과에 대한 국정원의 입장을 우편으로 보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와 국정원을 통틀어 징계를 받거나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씨는 법원에서 횡령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외교부는 2008년에는 “이씨가 이미 퇴직해 징계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대사관에 근무했던 박원섭 공사(현 타이 대사관 근무)는 주택 차임와 관련한 공문서에 깊이 개입했었는데 “나는 이씨의 횡령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좋은예산센터’의 정창수 부소장은 이 “정의의 반대말이 의리”라며 “용기 있게 동료의 비리를 보고한 내부 고발자를 조직이 왕따시키거나 불합리하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 그는 “상을 줘야 마땅한 내부 제보자를, 오랫동안 거리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라고 평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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