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남편 염형철씨(42·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말에 아내 정용숙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의 언질은 그게 다였다. 언제, 무슨 사고를 친다는 건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었던 정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했고, 결국 뉴스를 통해 남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가 세 명이 4대강 사업 현장 중 하나인 남한강 이포보(경기도 여주)를 새벽녘에 기습 점거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다. 같은 시각 낙동강 함안보(경남 창녕) 공사 현장에 있는 타워크레인에도 환경운동가 2명이 올랐다.

7월22일 보에 오른 이들 다섯 명은 일주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는 중이다. 보기에도 아찔한 높이. 함안보 타워크레인 높이는 40m, 이포보 도 25m에 육박한다. 이런 데를 올랐다고 특별히 용감하고 날랜 사람들 같지도 않다. 보에 오른 다섯 남자의 평균 나이는 43세다. 가장 연장자인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우리 나이로 올해 51세이고, 최연소자인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40세다. 최수영 처장과 이환문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42)이 타워크레인에 오르던 날 새벽, 이를 후방에서 지원했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고소공포증이 있어 한번 올라가는 데 거의 30분이 걸리더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채 나르지 못한 채 현장 관계자에게 발각됐고, 지상과 연락할 수단도 없이 쫓기듯 크레인 위에 올라야 했다.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액션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시사IN 조남진같은 날 새벽 한강살리기 3공구 공사 현장에 속해 있는 이포보(경기 여주)에도 환경운동가 세 사람이 올랐다. 사진 왼쪽부터 박평수·염형철·장동빈씨.

이들 ‘아저씨 군단’이 감당하기에 농성 환경은 가혹했다. 콘크리트 보 또는 철근 크레인 위에서 한여름의 살인적인 더위와 맞서야 했고, 시시때때로 폭우와 낙뢰 위협에 시달렸다. 빗물을 받아 마시고 생식을 먹어가며 버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아래 트위터 통신 참조). 최수영 처장은 잦은 설사로, 염형철 처장은 고질병인 중이염이 다시 도져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들 중견 활동가가 극한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살아온 이력이 그 답을 짐작게 한다.

먼저 이포보에 오른 세 명 중 박평수 위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오늘날 시민운동의 교과서적 모범 사례로 남은 ‘고양시 러브호텔 반대투쟁’에 가담했다가 환경운동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됐다. 한국등산학교 출신으로 ‘산다람쥐’라 불릴 만큼 산을 좋아하고 생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이런 이력 때문에 이포보 위에서도 현수막이 찢어졌을 때 자일을 타고 내려가 수리하는 일 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됐다). 2002년에는 아예 생업을 접고 고양환경운동연합 상근 활동가가 됐다. 그 뒤 한강 습지 보존운동을 벌이면서 습지 생태에 관한 한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됐다.

염형철 사무처장은 1990년 충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집시법 위반으로 1991년 말부터 2년여간 복역했는데,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이때 감방 동기다. 출소 후 ‘푸른 청주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에서 활동하다 환경 문제에 눈을 떴다. 먹는샘물 공장이 무허가로 난립하고, 온천 또한 마구잡이로 개발되던 당시 지역 상황이 자극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새만금 반대운동,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등에 깊숙이 개입했다. 몇 년 전부터는 한강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강에서 수도권 생태 복원 꿈을 찾는 환경운동가’를 자처해왔다.

ⓒ시사IN 백승기7월22일 함안보(경남 창녕) 공사 현장 타워크레인에 이환문·최수영씨가 올랐다.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41)은 2002년 이 단체 창립 때부터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수원 광교산 녹지축 보전을 위한 운동 등을 벌이는 한편 수원비행장 소음 피해 배상을 위한 공익소송을 전개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안명균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평소엔 장난도 곧잘 치지만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는 물러섬이 없는 원칙주의자’라고 그를 평했다. 광우병 파동 때 시작한 수원 지역 촛불집회를 지금도 매주 수요일 이어오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서 기자 출신까지

함안보 타워크레인에 오른 이환문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진주신문 기자 출신이다. 환경 기사를 쓰던 기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셈인데, 2008년 환경단체에 합류하자마자 일이 많았다. 진주 일대가 4대강 사업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지역 식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정부는 진주 남강댐 물을 대체 식수원으로 부산시민에게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4대강 사업을 하면 낙동강 수질도 더 깨끗해진다면서 왜 애꿎은 남강 물은 끌어가겠다는 것인지, 5개 시·군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동분서주하던 중 함안보에 올랐다. 이 국장은 7월27일 크레인 위에서 생일을 맞아 지켜보던 이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 행동”

최수영씨는 지난해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보수적인 지역사회에서 30대 사무처장이 탄생한 셈이라 상당한 화제가 됐다. 2001년 환경운동연합에 합류한 이래 부산하천살리기네트워크와 낙동강네트워크시민연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환경운동에 몸담아오면서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이들 중견 활동가도 고공 농성 같은 극한투쟁을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비판도 많다. 그러나 염무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우리가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사가 중지된 장마 기간, 포클레인 아래 드러누운 것도 아니고 현장 인부와 부딪치지도 않으면서 지극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IN 백승기함안보 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이들이 격려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불통(不通) 정부’가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말했다. 6·2 지방선거 이후에도 꿈쩍 않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환경운동가들이 어쩔 수 없는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동강댐이나 새만금 간척이 문제가 됐을 때도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지만 정부와 시민단체 간 대화 창구는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화할 자세가 전혀 돼 있지 않다”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염형철 처장도 소통이 막혀 있다는 뜻에서 이포보를 ‘4대강 바벨탑’이라 부른다. 이들이 내건 요구 조건은 세 가지. △4대강 공사 우선 중지 △4대강 대안 모색을 위한 국민기구 설립 △국회 내 검증특위 구성이다. 그러나 농성 9일째인 7월30일 현재 청와대나 정부·여당은 답이 없다. 돌아온 것은 보에서 내려오지 않을 경우 하루 1000만~2000만원씩 벌금을 물리겠다는 건설업체의 소송 압박뿐이다.

함안보 타워크레인이 멀찌감치 보이는 지점. 통신수단이 없는 이들에게 200m가량 떨어진 강 건너편에서 “건강은 어떠냐” 하고 소리를 질러보았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웅웅댔지만 둘 중 하나가 이렇게 답하는 것만은 똑똑히 들렸다. “살아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기자명 여주·창녕/김은남·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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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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