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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문수 스님의 마지막 하루

임지영 toto@sisain.co.kr 2010년 06월 03일 목요일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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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지보사 입구에는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라고 쓰인 석판이 있다. 지보사는 지난 5월31일 몸을 태워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물던 사찰이다. 스님이 기거하던 선방의 세간은 텔레비전 한 대, 서랍장 하나가 전부였다.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택배 상자 안엔 겨울 양말 몇 켤레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발신자 주소는 보이지 않았다. 방 한 귀퉁이엔 50cm 높이 두 덩이로 스님이 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이 쌓여 있었다. 불교 강론과 월간조선 수십 권도 눈에 띄었다. 

문수 스님은 3년 가까이 이 선방에서 나오지 않고 수행을 했다. 사흘에  한번 총무스님인 견월 스님이 방에 신문을 넣었다. 신자들도 문수 스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스님의 수행은 엄격했다. 하루 한끼만 먹었는데 그 한끼도 떡 한쪽이 전부였다. 

   
ⓒ시사IN 안희태
문수 스님이 기거한 지보사. 스님이 수행하던 소박한 선방. 세간 살이가 거의 없는 선방 한켠에 조선일보 등 신문과 월간조선 등 시사잡지가 놓여 있었다.
그런 그가 소신공양 전날 견월스님에게 말을 건넸다. 달 밝은 밤이었다. 밤 10시30분, 평소 같으면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 텐데 말을 걸어와 견월 스님은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문수 스님은 3년 만에 방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견월 스님은 법당 마당 한켠 작은 방으로 문수 스님을 이끌었다. 아직 두툼한 겨울 승복을 입고 있던 문수 스님은 본인에게 냄새가 많이 난다며 방에 들길 꺼렸다. 견월스님은 괜찮다며 그를 잡아끌었다. 대화는 30여분이나 이어졌다. 

문수 스님은 1998년 승가대학 총학생회 회장 당시를 회상했다. 학생회 일을 할 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믿고 의지했던 이야기, 속가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평소엔 들을 수 없는 개인적인 얘기였다. 하지만 주된 내용은 지금 정부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었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4대강 사업을 정부가 왜 하는지 격앙된 마음을 드러냈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걱정도 했었다. 누군가 나서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대화를 마친 스님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시사IN 안희태
문수 스님이 남긴 유서
다음날 오전 7시20분께 문수 스님은 절에서 차로 이십분 거리의 동부 주유소에 있었다. 2만5천원 어치 가량의 휘발유를 샀다. 400m를 걸어서 위천이 보이는 잠수교 옆 둑까지 올랐다. 위천은 4대강 사업 구간 중 가장 규모가 큰 낙동강의 제1지류다. 오전 10시30분께 사찰에선 견월 스님이 문수 스님 방 앞에서 그를 불렀다. 신발이 있는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열 번 쯤 문수 스님을 불렀지만 나오지 않아 문을 열었더니 방 가운데 유서가 있었다. ‘원박 스님, 각운 스님 죄송합니다. 후일을 기약합시다’라는 내용이었다. 견월 스님이 사람들을 불러 산을 훑어보게 했다.
오후 2시20분, 이태만 군위읍 부읍장은 곧 있을 선거 때문에 투표장을 점검하러 ‘우사랑’ 식당을 지나고 있었다. 둑길 옆에서 크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부러 태운 건지 불이 난 건지 알 수 없어 일단 현장으로 향했다. 불길 옆에는 가지런히 접힌 승복과 흰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승복엔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라는 내용이 볼펜으로 쓰여져 있었다. 휘발유통도 보였다.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갔더니 둑 아래 밭쪽에 거의 다 타고 일부 불길이 남은 사체가 가로로 누워 있었다.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이 타 버린 문수 스님이었다. 

오후 3시, 지보사 주지스님과 견월스님은 경찰 연락을 받았다. 견월스님은 “막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럴 걸 알았더라면 백번 천 번이고 말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구가 모셔진 군위군 군위읍 삼성병원의 영정사진은 문수스님이 승가대학에 다닐 때의 사진이다. 

조문을 온 승가대 17기 동창회장 성묵 스님은 그를 학문 수양과 내실을 기하는데 몰두했던 학생회장으로 기억했다. 문수 스님은 동기들 중 두 번째로 출가가 빠른 사람이었다. 입학 전에도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으로 유명했다. 새삼 도심 속 대학을 찾은 이유는 승가대 도서관이 크고 좋아서 경전이나 부처님 말씀에 관련된 것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왔다고 한다. 도반들은 스님이 도서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말수는 적지만 문수 스님은 행동할 땐 하는 스님이었다. 조계종의 종단 개혁 때 범종단개혁추진위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7년엔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지보사를 찾았다. 

   
ⓒ시사IN 안희태
법구가 모셔진 군위군 군위읍 삼성병원의 영정사진은 문수 스님이 승가대학에 다닐 때의 사진이다.
조계사 한강선원에서 문수 스님의 소식을 들은 지관스님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스님들을 두고 일부 소수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니다. 불교에선 말보다 실천을 중요시 여긴다. 침묵하는 불자들이 찬성해서 말 안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앞으로 제2·제3의 소신공양이 나올까 걱정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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