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서 보고 ‘오오 대박!’ 하면서 미국 언론을 돌아봤는데 없더군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는 한 트위터(@Ryubary)의 말이다. 해외에서 한국 언론과 미국 언론을 동시에 보는 사람들은 최근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한 이른바 ‘오바마 섹스 스캔들’ 기사를 보고 의아해한다.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 기사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파문의 시작은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러〉 5월2일자였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하던 오바마가 선거 참모였던 베라 베이커(당시 29세)와 워싱턴에 있는 호텔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베라 베이커를 워싱턴 D.C.의 조지호텔에 데려다준 운전기사와 인터뷰했다. 이 잡지는 당시 조지호텔에 오바마가 묵고 있었으며 “현재 조사원이 오바마의 불륜 의혹을 입증할 호텔 내부 감시카메라(CCTV) 영상 테이프를 찾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정통 일간지와는 독자층도 다르고, 신뢰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위는 미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들.


한국 언론, 인용 기사 133건 출고

한국 언론은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통신사·주요 일간지·인터넷 뉴스사가 일제히 보도했다. 심지어 9시 뉴스에도 등장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 오른 인용 기사는 모두 133건이었다. 이 기사를 쓰지 않은 일간지는 한겨레 정도 뿐이었다.

신기한 일은 한국에서 대서특필된 이 뉴스가 정작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같은 일간지는 물론이고, CNN 등 방송에서 오바마와 베라 베이커의 관계에 관한 뉴스는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하는 보도로 유명한 폭스 뉴스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미국에서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인용한 매체는 〈뉴욕 포스트〉 〈이그재미너〉 같은 동종 업계 타블로이드 신문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은 주로 슈퍼마켓에서 쇼핑하는 손님에게 팔리는 오락지로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나 루머가 주를 이룬다. 물론 슈퍼마켓 타블로이드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쓴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과  타이거 우즈에 관한 스캔들은 결국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미국 주류 언론이 이 기사를 인용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기사의 근거가 의심스럽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근거는 운전기사의 증언인데, 단순히 혼자 그 호텔에 갔다는 사실이 오바마와의 만남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초 CCTV의 존재를 언급한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후속 기사에서 CCTV 부분을 빼버려 독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베라 베이커와의 염문설은 오래전부터 떠돌았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CBS뉴스 정치 자문위원장 마크 앰빈더는 ‘조사원이 CCTV를 찾고 있다’는 해당 기사를 언급하며 “조사원? 이건 범죄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조사원이란 (오바마의 혼외정사)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오바마 반대 조직’을 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라며 비꼬는 칼럼을 썼다. 이봉수 교수(세명대 저널리즘 스쿨)는 “인용 가치가 낮은 해외 뉴스가 외신의 탈을 쓰고 주목되는 경우가 있다.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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