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8월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그 영향권 아래 들어간 이후 1884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

1954년 5월  보응우옌잡 장군이 지휘하는 베트민군이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 섬멸, 프랑스 지배로부터 독립.

1954년 7월  제네바협정에 의해 북위 17°선 이북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이남은 프랑스가 분할 지배.

1964년 8월  미국,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베트남에서 군사작전 본격화. 미국은 북베트남 밖 공해상을 순찰하던 자국 구축함이 북베트남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미군 상륙 개시.

 

 


1964년 9월 첫 파병을 시작으로 한국은 1973년 3월까지 6차례에 걸쳐 총 병력 32만여 명을 베트남에 파병.

1968년 1월  구정(Lunar Tet) 대공세. 설날 휴전을 제의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이를 깨고 미국에 총공세를 취해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 발생.

1973년 6월  ‘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파리평화협정)이 미국과 남베트남, 북베트남과 민족해방전선 4자 간에 체결.  사이공의 티에우 대통령 정부를 지원하던 외국군 철수.

1975년 4월21일 티에우 대통령, 남베트남군의 최후 전투였던 ‘쑤안록 전투’ 패배 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해외 도피. 재야 정치인 즈엉반민 예비역 대장이 대통령 취임.

1975년 4월30일  북베트남 제2군단, 사이공 시내로 진격해 남베트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독립궁 점령. 사이공 함락 직후 민족해방전선 중심으로 남베트남공화국 선포.

1976년 7월  남북총선거 실시 후 새로 구성된 제6기 최고인민회(통일국회)에서 남북 지역 간 통일을 선언함으로써 통일국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탄생. 

1979년 6월  제4차 공산당 중앙상임위원회, 1976년부터 추진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

1986년 12월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당 지도부 개편 요구 및 경제개혁 계속 추진 강조. 개혁실천 방안으로 ‘도이머이’(쇄신) 정책 채택. 경제를 살리고 국민생활 향상 위해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통한 근로자 및 농민의 생산성 향상을 유일한 대안으로 설정.

1991년 6월 제7차 당대회, 제5차 5개년 계획(1991~1995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평가하고 도이머이 정책의 지속적 추진 재확인. 개혁정책의 성공으로 경제적 공황상태 극복.

1992년  헌법 개정. 국체를 ‘사회주의법치국가’, 경제체제를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체제로 규정하여 경제개발 가속화.

1992년 7월  동남아우호협력조약에 가입한 이후 1994년 7월 ARF에 참여. 1995년 7월 아세안(ASEAN)의 7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1992년 12월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

2001년 8월  쩐득르엉 국가주석 방한, ‘한국·베트남 21세기 포괄적동반자관계’ 구축.

2001년 12월  베트남·미국 무역협정 발효. 미국은 2006년부터 베트남에 영구통상무역관계(PNTR) 지위 부여.

2005년 6월  판반카이 총리, 종전 후 정상급 지도자로는 최초로 방미해 양국 정상 간 공동성명 발표. ‘우호적·건설적·다차원적 협력동반자관계’ 구축.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베트남 국빈 방문해 응우옌밍찌엣 주석과 정상회담. 농득마잉 당서기장, 응우옌떤중 총리와 면담 통해 양국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키로 합의. 앞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베트남 방문.

▒ 1992년 수교 당시 5억 달러이던 양국 간 교역규모는 2008년 100억 달러로 20배 증가.

▒ 한국은 2006년, 2007년 베트남 직접투자 1위국이었으며, 2009년도 투자 누계 205억 달러로 2위(투자 건수는 2327건으로 1위).

 

기자명 호찌민/글·사진 표완수 기자 다른기사 보기 wspy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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