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의 몇 가지 의문 [편집국장의 편지]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요즘 특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다. 우리 언론과 NGO는 트럼프의 미국에 대해 어쩌면 이토록 겸손하고 얌전한가? 2~3년에 걸쳐 10여%씩 올려오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느닷없이 다섯 배로 올리라고 얼러대고 있는데도 말이다. 너무 조용하다. 사자후의 논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거리를 메우던 시민단체와 그 회원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주한미군 감축하라, 철수하라 구호가 안 나오는 게 참 이상하다. 분명 미국은 우리에게 고마운 나라다. 그러나 고마운 나라와 고마워하는 나라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그게 〈시사IN〉의 생존전략 [편집국장의 편지]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됐습니다. 저희도 할 만큼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들어서고··· 이제 좀 쉬렵니다.” 수년 동안 〈시사IN〉을 정기 구독해온 독자들이 구독 연장을 거절하면서 남긴 공통된 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근 1년 동안 이어진 독자 감소 추세가 이제는 주춤한 상태다. 독자 감소를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규모가 그리 클 줄은 몰랐다. 잡지 발행인으로서 그동안 곳곳에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 오늘은 그다음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한다. 어려움에 부닥친 〈시사IN〉이 어떻게 대응하고 견디고 있는지.5만9000대를 유지하던 구독자 수가 5만 독립운동가들이 거기에 있었다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블랙 스완, 화이트 스완이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검정옷 남자가 오토바이를 몰고 흰옷을 입은 여자가 등에 바짝 붙어 있다. 8월 둘째 주말 서울 청파동 거리. “시적 표현이 참 좋네. 초등 3년이 완전 ‘문학소녀’일세. 그래도 옛날 같으면 유리는 시인보다 김 알렉산드라가 됐을 거야.” “김 알렉산드라가 누구야?” “누구지?” 아이의 물음에 이어 아이 엄마가 물었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서. 그동안 몰랐던 게 참 부끄러웠다. 1885년생,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였어. 조선 여성 제1호 볼셰비키. 러시아 한여름 밤의 의문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짜증이 심해진 게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냥저냥 지나쳐버렸던 일들이 요즘 새삼 의문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도 찜통더위와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른다.일전 출근길에 본 여의도 벚나무 길의 물받이 터(가로수 아래 흙바닥)는 왜 그렇게 작은가. 이 더위에 어쩌다 쪼끔씩 내리는 빗물을 저 나무들이 얼마나 받아먹을 수 있겠는가. 그 규격에도 나름 기준이 있는 것일까 너그럽게 생각해보지만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아스팔트의 도시 서울의 모든 가로수 물받이 터가 터무니없이 좁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과민인가 세 가지 약속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혹시 7년 전 ‘발행인의 편지’를 기억하십니까? 〈시사IN〉 2009년 2월7일자였지요. 당시 신생 매체였던 이곳에 제가 합류해 처음으로 여러분께 보낸 편지 말입니다. 제목은 “독자 여러분께 약속합니다”.편지에서 저는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보도하지 않겠다, 사실과 의견을 엄격히 구분할 것이다, 사실 속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도록 노력하겠다. 그러면서 권력·금력을 포함한 외부의 어떤 압력도 거부하고, 한국 언론의 자부심이자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7년이 지난 지금,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기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보름 전에 본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백발이 된 ‘새색시’는 눈물 대신 얼굴을 붉혔다”라는 설명과 함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만난 80대 할머니·할아버지는 어설픈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수줍음이 있고, 미안함이 있고,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더 깊숙이는 ‘한(恨)’과 ‘원망’이 서려 있었다.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걸 읽었어야 했다. 수줍음과 겸연쩍음의 바닥에 깔려 있는 희미한 ‘한’과 ‘원망’의 흔적을. 그들은 혹시 만남을 성사시켰다는 성취감에 스스로 도취되어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우리 정부의 수준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진원지가 청와대·국회·국가정보원이라 더 씁쓸하고 기운이 빠집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놀라고 가뭄과 무더위에 지친 국민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흐름은 텔레비전의 궁중 드라마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결과는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지극히 유아적 발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헌법 제1조 1항’과 ‘삼권 분립’의 깃발이 세월호처럼 물밑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국민들은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습니 잠에서 깬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배신의 계절이다. “제발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가버렸다. 학생들은 기울어진 배에서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그러냐”라고 울면서 하소연할 뿐이었다. 코앞에 있던 해경은 그들에게 “나오라” “뛰어내리라”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앳되고 착한 목숨들이 그렇게 버려졌다. 생존 학생들의 법정 증언으로 악몽 같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시간이 멎었다. 탐욕과 부패, 무능이 결탁해 아이들을 바닷물 속에 묻은 뒤 부모들의 시계는 멈췄다.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목소리와 체취를 느낀다. 가방 멘 아이 만델라, 교황 그리고 박근혜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휑하니 뚫린 가슴의 공허가 많이 아물고 있는 느낌이다. 텅 빈 심중을 어루만져준 손길은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낮은 자세로 빈자와 약자들에게 보여준 진정 어린 사랑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교황은 취임 후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 머물면서 ‘빈자를 위한 교회’를 실천했다. 지금도 그는 지구촌 곳곳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기도와 봉사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얼마 전 교황 권고문인 ‘사제로서의 훈계’를 발표하면서 밝힌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특히 가슴을 울린다. “주가지수 2포인트 하락은 뉴 NLL 논쟁, 러시안 룰렛 하듯 정치하는 이들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요즘 살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저들은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 하지 않는가. 국민을 아무리 우습게 봐도 이건 너무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디에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있단 말인가. 이 같은 사실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른바 발췌본이라는 걸로 저들이 무슨 장난을 시도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이 결국 그 말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그것은 싸구려 신문들이 제목 뽑을 때나 쓰는 어물쩍 과장 수법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독자의 힘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시사IN〉이 지령 300호를 맞았다. 이를 기념하고 독자들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제법 돈을 들여 특집 기사도 준비하고 경품 행사도 마련하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그까짓 6년 역사를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할지 모른다. 우리로서도 ‘지령’이라는 단어가 낯간지럽기는 하다.그러나 〈시사IN〉의 6년은 남다르다고 감히 단언한다. 인쇄 매체가 추락하고 온라인·모바일이 대세인 상황을 거슬러 감행한 도전이 ‘독립 언론’ 오프라인 〈시사IN〉의 창간이었다. 지지자들조차 걱정 어린 눈길로 우리를 지켜봤다. 낡고 왜곡된 미디어 질서에서 안존을 야당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편집국장이 휴가를 떠나 오랜만에 발행인 편지를 씁니다. 독자와 만나는 게 더없이 반갑지만, 마음이 착잡합니다. 여러분께 저간의 〈시사IN〉 소식도 전하고 감사의 인사도 드리는 게 도리인데, 다른 이야기들이 자꾸 튀어나옵니다. 송구합니다.MB 정부가 지난 4년여 동안 보인 황당한 행태가 결국 돈과 연결된 부정부패였음이 속속 드러나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건 충격과 분노보다도 오히려 냉소입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고소영’ ‘강부자’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지요.종합편성채널을 무리하게 4 ‘거울’에 비친 대한민국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편집국장의 여름휴가 덕분에 모처럼 저에게 지면이 주어진 것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무겁네요. 뭔가 기분 좋고 희망찬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솔직히 그런 상황이 아니거든요. 요즘 대내외적으로 우리나라가 처한 형세, 돌아가는 형국이 너무 불안하고 속은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저만의 기우일까요?개각 인사를 두고 야당은 너나없이 혹평하고, 여당도 여기저기서 분개하고, 많은 국민은 어이없어합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듯 보였던 총리도 떠나면서 기분이 꽤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20년만에 다시 탄 베트남 통일열차 ‘오디세이’ 호찌민/글·사진 표완수 기자 20년 만의 베트남 통일열차 탑승 취재다. 1990년 12월에는 나 혼자였으나, 지금은 당시 편집국장이던 안병찬 선배(언론학 박사. 전 한국일보 ‘사이공의 최후’ 특파원·전 〈시사저널〉 발행인 겸 편집인. 현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와 동행이다. 당초에는 국제팀 신호철 기자와 안 선배가 함께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취재 계획이 안 선배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바뀐다. 무심코 던진 그의 말에 부인 이정자씨(여성정치포럼 공동대표)가 특유의 족집게를 들이댄 것이다. “표완수씨가 가야지요. 20년 전에 표완수씨가 통일열차 타지 않았나요?” 안 선 베트남이 걸어온 길 호찌민/글·사진 표완수 기자 1878년 8월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그 영향권 아래 들어간 이후 1884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1954년 5월 보응우옌잡 장군이 지휘하는 베트민군이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 섬멸, 프랑스 지배로부터 독립.1954년 7월 제네바협정에 의해 북위 17°선 이북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이남은 프랑스가 분할 지배.1964년 8월 미국,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베트남에서 군사작전 본격화. 미국은 북베트남 밖 공해상을 순찰하던 자국 구축함이 북베트남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미군 상륙 개시. 1964 새해 인사가 왜 그래?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1년 만에 다시 독자 여러분께 편지를 드립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그리고 하시는 일 모두 잘 이루셨는지요?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소원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연초 이맘때는 이렇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남우세스러워 지금은 차마 그 쉬운 인사말도 입에 올리기 어렵습니다. 저의 솔직한 심경입니다. 어디 제 마음뿐이겠습니까?어렵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힘들고,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 분노가 솟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불안합니다. 여기저기 아우성이 나옵니다 [발행인의 편지] 독자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표완수 (〈시사IN〉 발행인) “박권상 주필은 재직 시 ‘창간 동지’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동지’의 참뜻과 참모습이 사라진 이 시대, 우리는 이 동아리 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표완수 부장님이 떠날 때 우리는 창간 동지라는 말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기자를 말할 때 우리는 표 부장을 늘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시사저널〉에 이바지한 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 부장님을 떠올리듯 우리와 함께했던 지난 2년간이 늘 좋은 기억으로 되살아나길 바랍니다. 1991년 11월 〈시사저널〉 기자협의회 일동.”인천국제공항이 바라보이는 영종도 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