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8일 에릭 애스덤 뉴욕시장(가운데)이 제시카 티시 시위생국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 배출 규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욕시장실 제공
지난해 6월28일 에릭 애스덤 뉴욕시장(가운데)이 제시카 티시 시위생국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 배출 규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욕시장실 제공

한국에서 재활용품 분리배출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동네 행사에 가깝다. 아파트의 경우 일주일간 모은 재활용품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함께 쏟아낸다. 비닐, 스티로폼, 유리, 캔·고철, 종이(일반, 상자류), 플라스틱, 투명 페트병까지 적게는 여섯 종류, 많게는 아홉 종류까지 구분해서 분리배출한다. 종이상자의 비닐 테이프를 제거한다거나, 플라스틱 내부에 이물질이 묻어 있지 않아야 하는 등 세부 기준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하다.

한국의 분리배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미국의 쓰레기 제도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유리, 캔·고철 등을 ‘하나의’ 재활용품 통에 넣어두면 지자체에서 수거해 간다.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의 통에 넣어서 버리면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일반 쓰레기와 섞어서 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에 이민 와 29년째 살고 있는 박흥수씨는 “재활용품이 제대로 재활용되는지 모르겠다. 플라스틱, 유리, 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큰 쓰레기 수거 차량에 다 넣어버린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학교 급식시간에 플라스틱 접시 두세 개를 사용한 후, 남은 음식물과 접시를 쓰레기통 하나에 쏟아 버리는 장면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한국에서 분리배출을 ‘훈련’받은 사람들은 쉽게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미국 환경보호청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1인당 쓰레기 811㎏을 배출한다. OECD 국가 중 1위다. 재활용 비율은 23.4%에 불과하다(참고로 한국은 1인당 연간 배출량 400㎏으로 미국의 절반이고, 재활용 비율은 60.8%로 미국보다 두 배나 높다). 미국 인구는 전 세계의 4%에 불과하지만, 쓰레기 배출량은 전 세계의 12%를 차지한다. 미국은 강력한 환경대기법 때문에 쓰레기 대부분을 소각하지 않고 매립하는데, 매립지 2000여 곳에서 매일 축구장 하나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쓰레기가 매립되고 있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2021년 파리협정에 복귀한 미국의 큰 골칫거리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30년까지 87% 감축을 약속한 대표적 온실가스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강력한 보조금으로 쓰레기 배출과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지난해 11월 ‘재활용의 날’을 맞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재활용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서 1년간 9300만 달러(약 1245억원)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30년 만에 나온 가장 강력한 조치이지만, 재활용 분리배출 시설을 포함한 인프라 투자가 대부분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은 흔히 전기자동차 보조금 정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기후변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종합 정책이다. 재활용 정책 보조금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일부분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과 흐름을 같이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에서 “재활용에 대한 장벽이 여전히 많다. 다음 세대의 환경과 건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 개별 주에서도 2018년 중국의 재활용품 수입금지 조치 이후 후퇴한 재활용 정책을 올해 들어 다시 강화하고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4년부터 빈 용기 보증금 반환 대상 품목을 확대했다. 코네티컷주에서는 빈 병 보증금을 5센트에서 10센트로 늘렸다. 콜로라도와 메릴랜드주는 소매점 비닐봉지 금지 조치처럼 쓰레기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함께 시작했다.

‘쥐 박멸 사령관’ 직책 신설한 뉴욕시

그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분리배출 항목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뉴욕시는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대표 도시다.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 매립지 메탄가스 생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반대로 퇴비나 사료, 바이오 연료 재활용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뉴욕시 한 패스트푸드점에 놓인 쓰레기통. 분리배출 없이 모든 쓰레기를 한 곳에 넣게 되어 있다.ⓒ양호경 제공
뉴욕시 한 패스트푸드점에 놓인 쓰레기통. 분리배출 없이 모든 쓰레기를 한 곳에 넣게 되어 있다.ⓒ양호경 제공

뉴욕시는 지난해 8월 일명 ‘쥐 박멸 사령관’이라고 부르는 설치류 담당국장 자리를 새로 만들 정도로 음식물 쓰레기와 연관된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뉴욕시에서 쥐가 번성하는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2013년 사업장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법을 도입한 이후, 적용 사업장을 확대하고 과태료를 계속 강화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0월부터 주거지역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과태료도 부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주거지역 쓰레기 분리배출 의무화 법안이 발표되자 관련 사이트에는 정책에 반대하는 다양한 의견이 달렸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 건물에 배치될 경우 거리의 쓰레기 문제가 건물 안으로 옮겨올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의무화에 대해서 강력한 단속과 함께 도시 전반의 수거 시스템 개선이 정책 성공의 열쇠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서 분리배출 문제는 가장 큰 부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에는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생활에 가장 근접한 분리배출의 성공 여부가 그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분리배출 정책을 도입할 때 한국은 가장 앞선 성공 사례로 소개된다. 쓰레기 종량제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오랜 시간 훈련된 한국 시민들은 재활용품을 구분하지 않고 버릴 때 편리함보다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기후변화 정책에 대해 한국 시민은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기자명 뉴욕·양호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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