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은 3월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한화오션은 3월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국내 특수선(군함, 방위산업) 시장을 양분하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정면충돌했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형사 고발하고, 기자간담회와 입장문 등을 통해 ‘공개 저격’과 반박·재반박을 이어가면서 공방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 경쟁사 사이 물밑 갈등과 소송전은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날을 세우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문제가 된 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임원들이 이 사업과 관련해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있다며 엄중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이미 종결된 사건을 두고 억지를 부린다고 맞선다.

KDDX는 한국형 이지스함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지스함은 장착한 레이더로 적의 전투기와 잠수함 등을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해군이 2009년부터 숙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KDDX는 국산 기술(엔진 제외)로 개발한 미래 전력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현재 세종대왕급(1만600t) 함정 3척, 충무공이순신급(3885t) 함 6척이 임무를 수행 중인데, 전부 해외 군사기술로 만들어졌다. KDDX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6000t급 이지스함 6척이 건조된다. 사업비는 개발비 1조8000억원, 척당 건조비 1조원 등 총 7조8000억원이다.

KDDX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서로 진행된다. 2012년 밑그림 격인 개념설계를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다. 군함의 전체 제원 등을 결정하는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2020년부터 맡아 지난해 완료했다. 2006년 방위사업청(방사청) 개청 이후, 통상 기본설계를 수주한 곳에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맡아왔다. 기본설계 주관기관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규정(방위사업 관리규정 제89조)이 근거다. 관행대로라면 KDDX 사업에서는 기본설계를 수주한 HD현대중공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서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상세설계도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한 사건이 변수로 떠올랐다.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다.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옛 국군기무사령부)는 2018년 불시 보안 감사에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을 확인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해군본부 함정기술처를 여러 차례 방문해 KDDX 사업과 차기 잠수함 사업, 다목적 훈련 지원정, 훈련함 관련 기밀 등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친분 있는 군 관계자에게 자료를 건네받거나,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기밀을 카메라로 몰래 촬영했다. 이 과정에서 유출된 KDDX 사업 기밀 중에는 한화오션이 작성한 개념설계도가 포함돼 있었다.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지난해 말 징역형 및 집행유예 등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임원 개입 여부가 공방의 쟁점

2022년 방위사업청은 불법행위가 적발된 HD현대중공업에 군함 사업 관련 입찰에 보안 감점 1.8점을 부과했다. 방사청은 이어 올해 2월27일 HD현대중공업에 대해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었다. 향후 HD현대중공업의 군함 사업 입찰 제한 등 제재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서였다. 방사청은 지난해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HD현대중공업 직원 일부가 판결문 열람 금지를 신청하면서 지연됐다. 위원회 심의 결과 HD현대중공업에 ‘행정지도’ 처분이 의결됐다. 벌점 1.8점을 계속 적용하고 입찰 참여 자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게 골자다. 방사청은 행정지도 처분 이유에 대해 “국가계약법상 제척 기간인 5년이 지났고, 청렴 서약 의무를 가지는 회사(HD현대중공업) 대표나 임원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앞으로 이어질 KDDX 사업 단계에서 우선협상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한화오션은 즉각 반발했다. 3월4일 HD현대중공업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튿날에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고발 사유를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이 자리에서 대형 화면에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 판결문과 수사기록 일부를 고발 근거 자료로 띄웠다.

한화오션 주장의 핵심은 임원 개입 여부다. 방사청에 제출하는 ‘청렴서약서’에 서명한 회사 임원이 군사기밀을 불법으로 수집·유출하는 등 서약을 위반하면 사업 입찰 참여가 5년 동안 제한된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임원들의 개입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검찰이 임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과 재판 과정,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 범죄사실을 종합하면 임원들이 개입한 정황들이 확인된다며 엄중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화오션은 “임원급 이상의 지시 없이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자료를 방첩사에서 허가받지 않은 외부 서버에 저장, 공유까지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HD현대중공업이 방사청의 제재를 부당하게 피해갔다”라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의 문제 제기 직후 입장문을 내고 반박했다. 법원 판단에 대한 해석이 한화오션과 다르다. HD현대중공업은 “임원이 공범이 아니라는 것은 방첩사와 검찰의 2년 반에 걸친 수사, 법원 판단으로 확인됐다. 확정된 사안을 짜맞추기식 주장과 논거로 호도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KDDX 사업이 2013년 이후 중단됐다가, 2018년 개념 연구를 수행하며 재개된 점을 강조하며 “사업 개념 역시 2018년 다시 정립됐기 때문에 2013년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자료는 활용할 가치도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두 회사 간 갈등의 배경은 특수선 사업 주도권 다툼에 있다. 수년 사이 중국의 저가 수주 전략으로 상선 부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수선 부문에 전략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한화그룹은 방산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시스템 등과 한화오션을 수직계열화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KDDX 사업은 그룹 중장기 전략과 연결된다.

HD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 조선업체 HD한국조선해양의 계열사다. 국내 최다 특수선 건조 실적, 수상함 분야 국내 최다 수출실적을 갖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특수선 부문 수주 목표치를 9억8800만 달러로 책정했다. 지난해 추정 실적보다 약 615% 높다. 오는 2030년까지 특수선 사업만으로도 독자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최근 3000t급 잠수함 2~3대를 도입하는 폴란드의 오르카 프로젝트와 캐나다가 추진하는 3000t급 디젤 잠수함 12척 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폴란드 프로젝트 사업 규모는 약 3조원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규모는 70조원이다. 방산업계에선 KDDX 사업 이후 국내 특수선 시장이 점차 축소되리라고 전망한다. 한화오션이 제기한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 문제는 결과에 따라 이 사업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화오션이 고발한 사건은 경찰청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에 배당됐다. 중대범죄수사과는 권력형 비리와 대형 경제범죄를 직접 수사한다. 경찰은 그동안 왕정홍 전 방사청장이 HD현대중공업에 KDDX 개념설계 입찰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과 한화오션 고발 사건을 묶어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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