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월5일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월5일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시사IN 신선영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한 축은 삼성이었다. 재계에서 가장 빨리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와 접촉했고, 가장 많이 최씨 및 그 주변을 지원했다. 삼성과 최씨의 연결고리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지목됐다. 정가·관가·재계·언론에 뻗어 있는 미전실 고위 임원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여기서 나오는 정보력, 이를 통해 권력의 중심부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해온 ‘미전실 시스템’이 국정농단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의 시작과 끝에도 미전실이 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공소장 도입부부터 미전실의 역할과 기능을 상세히 적었다. 이 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미전실과 공모했고, 미전실은 각종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었다. 두 사건을 계기로 이재용 회장은 2016년 12월 미전실 해체를 선언했다. 1959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시절 비서실에서 출발한 그룹의 컨트롤타워는 5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2017년 2월 공식 해체).

최근 재계와 산업·학계에서 삼성 컨트롤타워 재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을 심리한 법원이 2월5일 이재용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직후다. 법원 판단에 대한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리지만 이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미전실 핵심 임원들에 대해서도 전부 무죄가 선고된 만큼, 적어도 컨트롤타워 재건 논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주장이다.

2023년 8월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삼성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2023년 8월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삼성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컨트롤타워 재건 화두 던진 준감위

삼성은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컨트롤타워 또는 지주사 체제를 갖추지 못한 곳이다. SK그룹과 LG그룹은 지주사 체제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기획조정실이 그룹 전체 조타수 구실을 하고 있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 이후 사업 영역별로 3개 TF를 구성했다. 삼성의 전자 계열사들이 참여하는 사업지원TF(삼성전자), 금융 계열사들이 모인 금융경쟁력TF(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을 벌이는 계열사들이 참여한 EPC TF(삼성물산)다.

세 TF는 역할과 기능 측면에서 ‘미니 컨트롤타워’로 불려왔다. 전략 수립과 내부 감사 등 참여하는 계열사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TF들은 사업 영역별로 분리돼 해당 사업 자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과거 미전실의 역할·기능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재계와 산업·학계에서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을 거론하는 쪽은 지금의 TF 구성이 그룹 전반의 투자와 미래전략 발굴에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사결정이 계열사별로 이뤄지니 그룹 전체 자원의 전략적 활용이나 시너지가 제한적이라, 조직의 통합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이 미래 핵심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이오·배터리 등은 모두 미전실이 존재했던 시기에 키운 사업들이라는 점도 컨트롤타워 부활 근거의 한 축이다.

컨트롤타워 재건의 군불을 땐 건 국정농단 사건 이후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지난해 8월 이렇게 밝혔다.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항공모함이다.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준감위는 지난해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복귀를 조건부 승인했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이재용 회장은 미전실 해체와 삼성의 전경련 탈퇴를 동시에 추진한 바 있다. 이찬희 준감위원장 발언 이후 삼성 컨트롤타워 재건설에 힘이 실렸다.

재계 일각에선 다른 시선으로 컨트롤타워 재건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도 있다. 삼성이 미전실 해체 이후 이사회 중심 자율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지만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 배경으로 ‘오너의 모호한 권한’을 지목한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 이후 이재용 회장이 사실상 그룹의 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의 가장 가까운 사례가 지난해 연말 임원 인사다. 수년 사이 위기론이 퍼진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삼성 계열사 전반에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인사 한 달 전부터 나돌았다. 그러나 실제 인사 폭은 역대 최소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삼성전자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과 한종희 부회장(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경계현 사장(대표이사 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삼성전자의 기존 인사 원칙인 ‘신상필벌’에 따르면,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이었다. 올해 초로 넘어온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 선고에 따른 불확실성에 인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 안팎에서 꾸준히 거론되어왔으나 소식이 없는 ‘대규모 M&A’도 결국 ‘오너의 모호한 권한’ 탓에 전문경영인들의 판단만으로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1심 선고에 대해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재용 회장이 기존 경영활동에 큰 변화를 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검찰과 삼성의 공방이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진다면 앞으로 3~4년간은 오너의 모호한 권한과 관련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권한 문제는 삼성의 가장 큰 숙제로 꼽히는 순환출자 구조(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해소, 즉 지배구조 개편 이슈와도 연결된다. 이마저도 삼성이 짧은 시간에 자력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다. 앞서 이찬희 위원장의 발언처럼 계열사들을 완전히 분리할 것이 아니라면 이재용 회장을 ‘대신’ 또는 ‘대변’할 조직과 시스템, 즉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재용 회장과 함께 기소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도 2월5일 무죄가 선고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 회장과 함께 기소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도 2월5일 무죄가 선고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업지원TF와 ‘미사단’에 힘 실릴 수도

컨트롤타워 재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동안 계속해서 지적되어온 삼성의 ‘오너 리스크’는, ‘이재용 회장 권한이 부재한 탓에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될수록 가려진 측면이 있다. 이 회장을 대신할 조직,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지면 그의 재판 진행 및 결과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상 삼성이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재용 회장이 2016년 12월 처음 미전실 해체 발언을 꺼낸 당시, 삼성 내부적으로는 협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의 돌발 발언으로 통하지는 않았다. 부친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경영 전반에 나선 이 회장은 미전실을 불편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키워온 미전실은 지금의 삼성을 만드는 데 절대적 기여를 했지만, 그 기여도만큼 이재용 회장에게 부담스러운 조직이 되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전실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과 업무 중 일부가 변화한 시대상과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완전한 ‘이재용 체제’는 새 조직과 사람들이 채워졌을 때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랐다.

현재 미전실 해체 이후 신설된 ‘미니 컨트롤타워(TF)’ 세 곳과 각 계열사 내부 주요 현안을 처리하는 경영기획실·경영지원실에는 과거 미전실 출신이 포진했다. 과거 200여 명에 달하던 미전실 임직원들이 조직 해체 후 각 계열사 중심부로 흩어졌다. 이재용 회장이 새 조직과 새 사람을 채우기 전 ‘오너 리스크’가 불거졌고, ‘안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전실이 해체됐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는 컨트롤타워가 재건돼도 과거 미전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대체할 조직 구성을 꾸준히 해온 만큼 재건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은 지난해 연말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미래사업기획단(미사단)을 신설했다. 미사단은 앞으로 삼성의 미래 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을 주도한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일부 맡아온 M&A 등 대규모 투자사업도 미사단이 넘겨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이 컨트롤타워 재건 없이 사업지원TF와 미사단에 상당한 역할을 부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은 지난해 10월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이사나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경우,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 사외이사를 뽑아 균형을 맞춘다. 선임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주요 현안 관련 보고를 요청하고 ‘사외이사 회의’를 소집할 권한도 갖는다. 사외이사가 견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취지다. 기업에서 이사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독립성이 높아지면 수직적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컨트롤타워 재건 명분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컨트롤타워 재건 화두를 던진 삼성 준감위는 2월 중순부터 3기 활동을 시작한다. 준감위가 컨트롤타워 부활과 지배구조 개선 등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연임 확정 이후 “컨트롤타워 복원과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 걸쳐 검토하고 노력하겠으나, 성과물의 가시화를 위해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