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시달리던 백제 개로왕이 오늘날 화북 지역을 지배하던 북위에 국서를 보낸 적이 있다. 동맹과 원병을 청하는 내용이었지. “만일 (북위 황제) 폐하의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멀리까지 미친다면 속히 한 장수를 신의 나라에 보내 구해주십시오.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 후궁에서 모시게 하고 아울러 자제를 보내 바깥 외양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며 (중략) 무릇 구구한 변방의 작은 나라들도 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천지의 기운과 합하고 위세가 산과 바다를 기울일 수 있으신데 어찌하여 꼬마 아이(고구려)로 하여금 천자에 이르는 길을 막게 두십니까.”
저 국서는 개로왕이 북위의 도움을 얼마나 목마르게 바라고 있는지, 그 도움을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허리를 폴더형 휴대전화처럼 굽힐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천지의 기운을 지니고 위세가 산과 바다를 기울인다’면서 상대방을 떠받드는 한편, 딸을 당신 첩으로 주고, 아들은 당신 외양간에 보내 말먹이를 주게 하겠노라며 바짝 엎드린다. ‘한 장수’만 보내주면 능히 저 ‘꼬마’ 고구려를 칠 수 있다고 북위 황제를 꼬드기고 있지 않니.
어디 나라와 나라의 외교문서뿐이겠어. 목마른 자가 우물 파고, 제 논에 물 마른 이가 물길을 내려고 기를 쓰는 법이지. 뭔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걸 해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꼬리 달린 개가 되고 손바닥에는 지문이 사라지고 이마는 땅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어. 2010년 부여에서 발견된 목간에서 한 이름 모를 백제 사람은 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있구나.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나이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가난하여 가진 것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으면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 아빠는 목간 속에서 이리저리 글을 궁리하며 어찌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을까 마음 졸이는 어느 백제인을 본다. 개로왕이나 이름 모를 백제인이나 다를 게 없지.
우리나라 역사에는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문장가들이 이름을 떨쳤지만 그 가운데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李奎報)를 빼놓을 수는 없을 거야. 어려서부터 천재로 이름난 그였지만 이른바 관운(官運)은 부족했던지 그는 과거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졌단다. 네 번째 겨우 턱걸이를 하긴 했지만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었던 그는 벼슬길에 쉽게 들어서지 못했지. 그로부터 이규보는 그야말로 필사적인 벼슬 청탁 작전에 나선단다.
여흥 민씨 집안 족보에는 이규보의 시가 남아 있어. 그 한 구절. “世家傳閥閱 系出費侯賢(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명문가는, 비후(여흥 민씨 시조의 아들)로부터 나왔네).” 여기서 비후란 공자의 제자였던 민씨의 조상 민자건을 말하는데 중요한 건 이규보가 이 시를 바친 대상은 민식이라는 왕의 최측근이었어. 이 시의 말미에서 이규보는 대문장가답지 않게 작아진단다. “더구나 우리는 척분(성은 다르지만 일가가 되는 관계)이오니 평생에 그 인연을 믿으렵니다(김진우 외 〈한국인 성씨의 역사〉, 춘추필법).” 유감스럽게도 벼슬 한 자리 앞에서 천재 이규보가 스타일을 구기는 건 거기에 그치지 않아.
“선비가 벼슬을 하는 것은 구차하게 일신의 영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정사에 반영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길을 찾고 왕실에 힘을 보태 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함입니다. (중략) 삼십에 벼슬에 오르더라도 오히려 늦다고 하는데, 제 나이 지금 삼십칠 세입니다. 어릴 때부터 쇠약하고 병이 많아 삼십사 세에 흰 털이 보이더니 뽑아도 다시 나기를 그치지 않아 지금은 반백입니다(〈동국이상국집〉 권26, 재상 최선에게 올리는 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걸치고서, 머리가 다 허옇게 되기 전에 ‘제발 벼슬 하나만!’을 부르짖는 측은한 이규보. 여기에 어떤 이씨 성 가진 벼슬아치에게 “귀하신 당신께선 나와 같은 이씨요, 아드님은 나랑 나란히 급제한 분인데, 이는 내 평생의 행운이니, 어찌 이 몸을 낙망에 울부짖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두 손을 비비는 데에 이르면 “아이고 이규보씨, 벼슬이 그렇게 좋소!”라는 외침이 절로 나와.
‘부족한 자식 둔 애끓는 부모’의 뻔뻔한 청탁
조선 시대에는 권력자들 집을 들락거리면서 벼슬을 요청하거나 기타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것을 ‘분경(奔競)’이라 불렀고 이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어.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법과 현실은 항상 멀었고 분경이든 청탁이든 사사로이 다가가 권력자들로부터 떡고물을 얻어내는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단다. 일부 예외는 있었지만 “오직 어르신만을 믿사오니 범상히 여기지 마소서” 하는 당부는 예사로 행해졌고 심지어 일종의 공문서 양식 안내서라 할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아예 청탁 문서의 견본이 버젓이 남아 있단다. “중요한 직임에 뽑히지 못한 이유는 실로 제가 못난 탓입니다. (중략) 삼가 특별히 하해와 같은 은택으로 수령에게 부탁하시와 이번 직임을 바꿀 때 좋은 자리에 뽑히도록 해주소서.”
이런 청탁이 ‘좋은 게 좋은’ 일로 끝날 리 만무했지. ‘맨입으로’ 청탁을 할 리 없었고 ‘마침 적임자가 있어서’ 추천하기보다는 ‘적절한 보상이 있어서’ 추천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매천야록〉에 등장하는 민영환(이분은 후일 개과천선해서 순국 자결하지만 한때 탐관오리로 이름이 높았다)의 이야기는 그걸 증명해. 민영환은 고종 황제에게 줄기차게 벼슬 청탁을 해서 원하던 자리를 얻어냈어. 뛸 듯이 기뻐하며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를 알리는데 어머니는 한심하게 쳐다보며 이렇게 얘기했단다. “네 청탁만 후하게 들어주실 리가 있느냐. 이미 내가 5만원을 갖다 바쳤단 말이다.”
최근 〈시사IN〉은 장충기 삼성그룹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에 담겼던 참 다양한 인사들의 더욱 다채로운 ‘청탁’ 문자들을 공개했어. 개로왕보다도 더 절박하게, 이름 모를 백제인보다 더 공손하게, 이규보가 혀를 찰 만큼 간곡하고 절절하게, 조선 시대 사람들만큼이나 납작 엎드려 ‘삼성’에 뭔가를 부탁했던 분들이 많더구나. 가장 안 된 일은 이런 문제에서 가장 엄격해야 할 언론인들도 스스럼이 없었다는 거겠지. 아들이 삼성전자 ○○부문에 지원을 했는데 “이름은 아무개, 수험번호는 무엇”이며, “무례한 줄 알면서도 부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한 어느 언론사 간부에 이르러서는 아빠는 폭소를 했다. 웃을수록 눈물이 나고 입 안에서 모래가 솟는 듯했지만 말이다.
누군가 아빠에게 물었어. 네가 삼성그룹 장충기 전 사장과 통하는 사이였다면 네 아들을 부탁하지 않았겠느냐고 말이야. 솔직히 모르겠어. 그랬을 수도 있지 않겠니. 아빠도 ‘부족한 자식을 둔 애끓는 부모’이기는 매한가지니까. 혹여 그런 상황이 올까 두려워서 아빠는 이렇게 명토 박아 두고 싶구나. 대가가 따르지 않는 청탁은 없으며, 필연적으로 그 대가는 사회의 기강과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니와도 같고, 성실하고 정직한 이들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와도 같으며 권력자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청탁 속에 공공의 이익을 나눠 먹었던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았다는 것. 내가 한 청탁 하나가 사람 하나를 죽이고 나라의 명줄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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