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배우 이선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을 경찰이 수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2월27일 배우 이선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을 경찰이 수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대기업 부장 박동훈과 파견직 노동자 이지안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처음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장면에서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말한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그리고 둘은 서로의 비밀을 모른 척해주기로 약속한다. 각자 다른 이유로 무너져 내리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살려낸다. 박동훈은 이지안 덕에 “죽다 살아났다”라고 말하고, 이지안은 박동훈 덕에 “처음으로 살아봤다”라고 말한다. 박동훈을 연기했던 고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았다. 여러 장면과 대사가 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들추었던 언론이 비판받고 있다. 동료 예술인들이 발표한 추모 성명에도 언론과 미디어를 향한 선명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언론은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다. 그것을 실현해야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보도였다고 말한다. 그 권리의 주인 된 입장에서 참 불쾌한 변명이다. 나의 알권리가 배우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데 쓰일 정도로 볼품없는 것이었던가.

일말의 설득력도 없는 KBS의 변명

알권리는 본래 정치적 구호였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가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법제화된 것이다. 굳이 알권리의 역사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꼭 알아야 하는, 알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권리가 있을 뿐이다. 대중의 얄팍한 호기심을 이용한 장삿속을 국민의 알권리로 포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법원의 판단도 그러했다. 언론 보도에 따른 사생활 비밀 침해가 문제되는 사안에서, 언론에 의해 공개된 사항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 대상”에 해당하는지,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표현 내용·방법 등이 부당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모두 따져 위법성을 벗겨낸다. 언론은 누군가의 사생활 관련 사항을 보도할 때, 공중의 정당한 관심 대상에 해당하는 사항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하는 것인지 스스로 섬세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선균 사건에서 그러한 물음에 소홀했던 언론은 여전히 별로 반성이 없어 보인다.

특히 ‘단독’ 타이틀까지 달며 고인과 사건 관계 여성의 사적 대화 음성까지 공개한 KBS는 동료 예술인들의 기사 삭제 요구마저 거부했다. 여전히 “관련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기에” 정당한 보도였다고 주장한다. 일말의 설득력조차 없는 변명이다. 공·사익이 충돌하는 보도의 위법성은 결국 이익형량, 즉 보도를 통해 얻게 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의 비교를 통해 가려진다. KBS의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그 대화를 공개함으로써 실현되는 공익이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고인에게 가해지는 명예훼손, 인격권 침해 등의 피해보다 월등한 것이어야 했다. 해당 보도를 놓고 누가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수신료 가치 실현’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공영방송 KBS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1월12일 배우 김의성씨,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이 KBS의 기사 삭제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조남진
1월12일 배우 김의성씨,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이 KBS의 기사 삭제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조남진

언론만을 탓할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지 말아야 할 것을 반드시 몰라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모른척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과 이지안이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했다. KBS가 고인의 사적 대화 음성을 공개했을 때, 그것을 알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했다. 알 필요 없고, 알아서는 안 되는 사생활까지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망신주기식 보도가 넘쳐날 때, 우리는 그 언론을 향해 정색할 수 있어야 했다. 그의 연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던 나도 그러지 못했다. 그게 참 미안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임자운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