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후, 대형 로펌들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겨냥한 이른바 ‘공포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에 없던 두려움이 비로소 생겼다는 뜻일까. 과거 그들에게 노동자 사망사고는 어떤 문제였을까.
이 법은 숱한 산재 사망사고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가깝게는 노동자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를 꼽을 수 있다. 이 법을 만들기 위해 한겨울에 천막 치고 단식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한 산재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그랬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니, 헛헛한 일이다.
하지만 애써 상황을 긍정해볼 수도 있겠다. 이 법의 첫 번째 노림수는 노동자의 생명·안전 문제를 대하는 기업 경영자들의 자세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관련 문제를 직접 신경 쓰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법률 조언을 구하는 기업인들이 많아졌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었다는 뜻 아닐까. 그들이 미리 신경 쓰고 살피는 만큼 노동자들은 안전해지지 않을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해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법은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명ˑ안전 문제는 아예 비켜갔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은 내년 1월이 되어야 보호를 받는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회사 규모에 따라 생명·안전 문제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다. 이보다 더 가혹한 차별이 있을까.
단순히 차별 문제만도 아니다. 이 법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으면 당신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일부 경영자들에게만 보내고 있다. 그 시그널에서 비켜난 경영자가 갖게 될 몹쓸 안도감은 노동자들을 전보다 더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그뿐인가. 그러한 시그널에 두려움을 갖게 된 경영자들은 위험한 업무를 작은 회사들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그래서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보다 더 위험해졌을지도 모른다.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조항은 2021년 1월 국회가 이 법을 만들 때 기습적으로 끼워 넣은 것이었다. 그해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그래서 국회는 반성했을까. 아니다. 그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시키는 법안이 최근 발의되었다(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대표 발의). “바로 시행됐을 때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예상된다”라는 이유를 댔다(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노동자들의 계속된 죽음은 혼란스럽지 않은 걸까. 그 죽음을 멈출 수 있는 혼란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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