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윤 대통령은 전례 없이 8개 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이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특별법에 대해 ‘국론분열’, ‘재난 정쟁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같은 이유를 들 것이다. 이는 세월호참사 때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참사 특별법에 반대했던 논리다.
그런데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재난을 정쟁화’시켰던 것은 특별법이 아니다. 그 특별법에 반대했던 정부·여당 쪽이었다. 세월호참사 직후부터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은 진도와 안산 등에서 유가족을 사찰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자 ‘반정부세력’, ‘좌편향 세력’으로 규정하며 재난을 정쟁화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정쟁화는 정부와 여당이
실제로 국정원은 2015년 1월21일 ‘세월호 조사위 구성 동향 및 대응 방안’을 박근혜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 내용은 ‘여당 당직자 주도로 세월호 조사위의 행태를 정치 이슈화하여 국민 여론을 환기하고 보수 매체와 단체들과 협조해 특조위 문제점을 발굴, 이슈화하여 국민들의 공분을 조성’하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보고 내용은 박근혜 청와대와 해수부, 특조위 여당 위원들에 의해 실현된 바 있다.
대법원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조윤선, 해양수산비서관 윤학배의 직권남용죄를 인정하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들이 해수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에게 ‘위원회 위원 예정자를 통해 설립준비단의 활동에 개입하는 방안이 포함된 문건을 작성하게 한 행위’는 단순한 직무 보조행위가 아니라 특별법상 독립성 보장 규정, 국가공무원법상 법령준수의무에 반하는 위법한 지시여서 직권남용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참사 특별법은 공무원들이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법으로 일관되게 판단되어 왔다.
세월호참사 특별법과 거의 같은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헌법에 반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여 공익에 반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대통령 거부권은 법안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그 행사를 자제했던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기도 했지만, 삼권분립 자체가 근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를 통과된 법안에 대해 함부로 거부할 경우 그 법안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은 법의 공백 상태에 놓이고 심각한 기본권 침해를 방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법률안거부권은 해당 법안이 헌법에 반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여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될 정도에 행사되어야 하고 헌법상 명확한 행사 요건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도 역사적으로 대통령들은 신중하게 그 권한을 자제해 왔다.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광범위한 책임을 규명하고 진상규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책무에 비춰 너무나 당연하다. 법률안을 거부하여 진상규명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것,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 교훈을 역행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을 면하고자 재난을 정쟁화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함부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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