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소셜미디어(SNS)의 유명인 사칭 사기를 보도한 바 있다(〈시사IN〉 제847호 ‘일확천금 유혹하는 SNS 가짜 유명인’ 기사 참조).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유명 인사를 가장한 광고를 올리고 ‘주식 리딩방’으로 이끄는 수법이다. 보도 한 달이 지난 뒤 제보가 들어왔다. 실제로 사칭 광고에 속아 거액을 사기당했다는 내용이다.

각종 소셜미디어에 유명인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가 올라오고 있다. ⓒYouTube 갈무리
각종 소셜미디어에 유명인을 사칭한 ‘주식 리딩방’ 광고가 올라오고 있다. ⓒYouTube 갈무리

제보자 이성민씨(62·가명)는 계약직 버스 기사다. 출퇴근 시간 통근 버스를 운전하고 월급을 받는다. 여러 직장을 다니다가 2015년 운전 일을 시작했다. ‘직영 기사’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회사 차를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버스를 사서 계약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2021년 버스를 살 기회가 생겨서 적금통장을 깼는데, 결과적으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이씨는 이 돈으로 주식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큰돈을 벌기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적금을 깨서 이미 손해를 봤는데 금리가 낮은 은행에 도로 넣기가 아쉬웠다.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종목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에 비해 이성민씨는 능력도 시간도 부족했다.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도 있었다. 이씨가 다니는 교회 목사는 “주식으로 돈을 버는 건 교인이 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대기업 주식만 샀고 큰 손실도 이익도 보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이씨는 해가 바뀌기 전 주식을 전부 처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이성민씨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하나 봤다. 유명 방송인 A씨가 등장했다. 화면 한쪽에는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내용의 A씨 인터뷰가 나오고, 옆에는 투자 안내가 적혀 있었다. ‘주식 전문가’들의 영상을 볼 때와 느낌이 달랐다. A씨는 증권사 대표나 경제학 교수보다 ‘일반인’ 이씨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 사람이 돈을 번 것처럼 나도 남들이 모르는 비법을 얻으면 어떨지’ 상상했다. 영상 한편에 적힌 카카오톡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내자 곧 “안녕하세요, A입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상대는 “아무개 대학 B 교수와 함께 회사를 설립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네이버 밴드 주소를 알려줬다.

밴드 회원은 120여 명이었다. B 교수는 매일 급등주 전망과 향후 투자 계획을 강의했다. 투자는 ‘단타’로만 이루어졌다. 짧은 기간에 대량으로 사고파는 방식이다. B 교수가 “ㄱ 주식을 얼마에 어느 정도 사라”고 공지를 올리면 회원들은 따랐다. 거래시간은 장 마감 후인 오후 5시 전후. 밴드방 운영자는 자신들이 미국계 기관이라서 개인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고 말했다. ‘분석력’을 강조했지만 다른 강점도 내세웠다. 장외 시간에는 대량 거래가 가능하며 가격 협상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밴드방에서 회원들의 투자금을 모아 자기 기관이 한 번에 거래하면 수익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밴드방에서 알려준 스마트폰 주식 거래 앱을 썼다. 밴드방 관계자가 알려준 입금 계좌로 투자금을 보내면 앱에 표시된 이씨의 주식 계좌에 입금 처리가 됐다.

이성민씨는 홀린 듯 5000만원을 투자했다. 바로 다음 날 10% 이상 수익을 봤다. 매일 B 교수의 지시에 따라 거래하자 점차 수익이 불어났다. 밴드방 운영자는 “모든 회원이 한 몸처럼 움직여 같은 시간에 정해진 수량을 사야 한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탈퇴 처리한다”라고 강조했다. 거래 종목은 상장된 기업 주식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대기업 우량주는 아니었다. B 교수는 종종 이성민씨에게 “자금을 유연하게 사용해야만 안정적 이익을 유지한다” “우수한 투자자는 날카로운 시장감각도 필요하다” 따위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씨 주식 계좌의 수익률이 B 교수의 뜬구름 잡는 듯한 말에 힘을 불어넣었다. 밴드방 운영자는 B 교수가 주로 논산에 머문다고 했다. 논산이 고향인 이성민씨는 친밀감이 커졌다. 그는 5000만원을 추가로 투자했고, 또다시 수익을 얻었다. 총투자금은 1억7600만원. 한 달이 되지 않아 그의 주식 계좌에는 10억원이 찍혀 있었다.

마음속 한편에 의구심이 든 적도 있었다. ‘이전에 상상도 못해본 돈을 이렇게 쉽게 버는 게 정말 가능한 걸까?’ 하지만 이성민씨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지 못했다. 밴드방 운영자가 “주변에 투자 정보가 새어 나가면 회원 모두가 피해를 본다”라며 입단속을 했다.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이씨는 혼자 살고 있다. 자녀들과 왕래도 뜸하다. 주식에 부정적인 다른 교인들과도 논의하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증권사 출신 지인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그는 ‘시험 삼아 주식 계좌에서 출금을 해보라’고 말했다. 500만원을 출금하자 정상적으로 처리됐다. 안심한 이씨는 일단 한동안 기다려보기로 했다.

가짜 광고에 속아 홀린 듯 거액 날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된 건 지난해 12월 말의 일이다. 밴드방 운영자가 갑자기 ‘세금’ 이야기를 꺼냈다. 회원들이 수익을 찾아가려면 수익 22%에 달하는 금액을 자신들에게 입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수중에 돈이 없으니 수익금을 먼저 달라’고 요구했으나 운영자는 약관상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밴드방 메시지로 B 교수에게 통사정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수사기관에 가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주식 계좌를 만들면서 밴드방 운영자에게 주민등록증 사본을 보냈기에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기라고 확신하지도 못했다. 밴드방의 한 회원은 이씨에게 채팅으로 ‘세금을 내니 정말 수익을 돌려주더라’고 말했다. 밴드방이 없어진 뒤 1월 셋째 주에야 경찰서에 갔다. 이미 똑같은 신고가 접수됐다는 말을 듣고 100% 사기임을 깨달았다. 메시지를 주고받은 회원 대부분이 ‘바람잡이’였다는 생각도 이때 들었다. 부끄럽고 헛살아온 느낌이었다. 누구도 믿기 어려워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7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불법 리딩방 사건 개요와 검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7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불법 리딩방 사건 개요와 검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억7000만원은 이성민씨가 어렵사리 모은 전 재산이었다. 버려진 병을 주워 공병 보증금 3000원을 받고 뿌듯해한 기억이 났다. 그는 돈을 쪼개 시민단체와 독립 언론에 후원을 해왔다. 갑자기 손에 들어온 10억원도 이웃을 위해 선한 곳에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투자에 나섰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순이 넘은 이성민씨는 노후 자금이 필요하다. 서울에 집을 장만하고 이왕이면 건물도 하나 사고 싶었다. 범죄 피해자인 이성민씨는 ‘당치 않은 욕심 때문에 사기를 당했다’라는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성민씨는 빚을 지면서까지 투자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빌린 돈을 잃어 주변에 피해를 줬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활비가 떨어진 이성민씨는 지인에게 200만원을 빌렸다. 당장은 형편이 안 되니 월급을 받은 뒤 3월, 4월에 걸쳐 갚겠다고 했다. 이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유사 피해 신고를 취합해 수사하고 검찰에 넘기겠다. 만약 범죄조직을 소탕하면 피해액을 일부 돌려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불법 리딩방 투자 사기 피해자는 약 1만명, 피해액은 2400억원이다. 수면 아래의 피해는 짐작하기 어렵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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