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용산다크투어’에 참가한 신민정·김재윤 모자(오른쪽 끝)가 마지막 코스인 용산 남일당 터에 도착해 헌화를 마친 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묵념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월20일 ‘용산다크투어’에 참가한 신민정·김재윤 모자(오른쪽 끝)가 마지막 코스인 용산 남일당 터에 도착해 헌화를 마친 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묵념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09년 1월20일 새벽 철거민들이 용산 남일당 옥상에서 점거 농성 중, 경찰특공대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옥상에 설치한 망루에 불이 나고 있다.ⓒ연합뉴스
2009년 1월20일 새벽 철거민들이 용산 남일당 옥상에서 점거 농성 중, 경찰특공대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옥상에 설치한 망루에 불이 나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예전에는 용산 참사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사들은 되풀이되고,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어요. 15년 전 일이지만 그냥 계속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잊으면 안 되겠다 싶었고, 그때 몰랐던 걸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아들과 같이 왔어요.”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1월20일 오후, 아들 김재윤 군(12)의 손을 꼭 잡은 신민정씨(45)는 서울 용산구 ‘남일당 터’에 국화를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들어선 43층 건물을 일행들이 한 번씩 올려다본 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시작했다. 신씨는 말없이 한 팔로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2009년 1월20일, 이곳 용산 남일당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 32명이 건물 옥상 망루에 올라 점거 농성을 벌였다. 농성 시작 단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고, 망루에 난 불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용산다크투어‘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용산 참사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사IN 이명익
‘용산다크투어‘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용산 참사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시사IN 이명익

용산 참사 이후에도 개발지구에서 쫓겨나는 철거민들은 여전히 많았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 참사를 기억하고 대안적인 도시개발의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취지로 2022년부터 ‘용산다크투어’를 시작했다. 용산역 광장을 출발해 홈리스 텐트촌, 용산 정비창 부지, 전자상가 일대 등을 2시간가량 둘러본 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추모식으로 투어를 마치는 행사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2009년에 발표된 뉴타운 재개발 실태조사를 보면, 재개발 이전에는 전세가 4000만원 미만 주택 비율이 83%였다. 뉴타운 이후 전세가 4000만원 미만은 0%가 되었다. 여기 용산도 전세가 4000만~5000만원 주택들이 있는 동네였는데, 지금은 전세가 13억에서 15억원인 지역으로 변했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서울시 평균인 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 이하다. 이게 용산 참사의 본질이다. 가난한 서민들이 살아가던 곳이 수십억 원 자산가들이 사는 곳으로 바뀌었다. 재개발·재건축·규제완화… 이런 방식의 개발을 우리가 언제까지 용납할지 질문을 던지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용산다크투어 행사 시작 전, 용산 참사 15주기를 맞아 참가자들에게 국화를 나눠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용산다크투어 행사 시작 전, 용산 참사 15주기를 맞아 참가자들에게 국화를 나눠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용산 정비창 옆 고가도로를 지나고 있는 ‘용산다크투어’ 참가자들. ⓒ시사IN 이명익
용산 정비창 옆 고가도로를 지나고 있는 ‘용산다크투어’ 참가자들. ⓒ시사IN 이명익
용산 참사 15주기를 맞아 국화를 손에 들고 있는 ‘용산다크투어’ 참가자. ⓒ시사IN 이명익
용산 참사 15주기를 맞아 국화를 손에 들고 있는 ‘용산다크투어’ 참가자.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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