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7일 과 인터뷰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시사IN 조남진
1월17일 〈시사IN〉과 인터뷰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시사IN 조남진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노인의 우직함이 산을 옮긴다.’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써준 글귀다. 심상정 의원은 2019년 정의당 대표를 맡으면서 의원실 벽 한쪽에 이 문구를 걸었다. ‘언젠가 옮겨질 산’이라는 결과보다 산을 옮기기까지 결코 쉽지 않을 과정이 눈앞에 선명했다. 한때 액자를 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했다.

진보정당 후보로서 대선 두 차례(2017년 득표율 6.17%, 2022년 2.37%), 당대표로서 총선 두 번(2016년 정당 득표율 7.23%, 2020년 9.67%)을 치렀다. 2022년 대선은 뼈아픈 패배였다. 2.37% 득표율은, 윤석열 후보가 0.73%포인트 차이로 이재명 후보를 이기는 데 ‘일등공신’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비아냥거림이 되어 돌아왔다. 대선 직후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의원직에 전념했다.

그사이 정의당은 비상대책위원장만 세 명이 바뀌었다.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지난 총선에서 얻은 정당 득표율(9.67%)보다 낮다. 현재 1.7%(리얼미터, 1월15일 발표)~3%(한국갤럽, 1월12일 발표) 사이를 오간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례대표 1번인 류호정 의원이 신당 ‘새로운선택’으로 합류하기로 하면서도 정의당을 탈당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1월18일 기준). 박원석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 등도 제3지대 합류를 선언한 상황이다.

진퇴양난 속에서 심상정 의원이 입을 열었다. 신간 〈심상정, 우공의 길〉을 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저나 정의당에 대해 덧칠된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제가 느꼈던 점을 그대로 말씀드려야 국민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1월17일 오후, 심상정 의원과 마주 앉았다. 현안부터 물었다.

1월15일 거취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이 다시 민주당 2중대의 길로 가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위성정당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는데.

선거철마다 얼마나 많은 제3당이 만들어졌나. 대부분 실패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정당도 결국 양당에 흡수됐다. 20년 동안 유일하게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양당의 협곡 속에서 버텨온 정당이 정의당이다. 독자성을 지켜오기 위해 애써온 역사가 함부로 폄하돼선 안 된다. 민주당까지 포함한 비례연합정당은 국민들이 위성정당의 재현으로 받아들일 거다. 준연동형 취지가 군소정당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함인 만큼 제3지대 정당들 간에 폭넓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류호정 의원은 신당에 합류하기로 했음에도 탈당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류호정을 데려온 게 심상정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많다.

준연동형제가 통과된 이후 (당선자를) 20명 정도로 예상하고 총선 전략과 비례 전략을 짰다. 원래 20석을 기준으로 20%(4석)를 청년 명부로 할당했다. 1·2번, 11·12번을 청년 자리로 지정한 게 내가 한 일이다. 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지는 당원 투표를 통해 결정했고,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이 1·2등을 했다. 류호정 의원은 이미 화섬식품노조 홍보부장으로 활동 중이었고, 장혜영 의원은 내가 입당을 권유해서 당에 들어왔다. 입당을 권유한 게 ‘발탁’이라면 장혜영 의원을 발탁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위성정당이 생기는 바람에 의석이 5석으로 줄어들었고, 청년 자리로 1·2번을 줬기에 청년 의석이 40%로 늘어나버린 셈이 됐다.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의 ‘페미니즘 행보’ 때문에 정의당 지지율이 빠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청년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2030 여성들의 감정과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갈라치기를 하면서 이슈가 크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 젠더 이슈에 대해 두 여성 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다만 당 차원에서 의제와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관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리더십이 해야 할 문제였다.

1월15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거취를 밝히는 류호정 의원. ⓒ시사IN 조남진
1월15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거취를 밝히는 류호정 의원. ⓒ시사IN 조남진

결국 비례대표 1번이었던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을 향한 날 선 비난을 남기고 신당에 합류하기로 했다.

류 의원이 정의당처럼 작은 정당의 1번 의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가, 그만한 역량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당도, 당사자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다시 2020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비례 공천을 할 것인지.

위성정당에 당해봤기 때문에(웃음). 지금이 그때라면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신중할 것이다.

류호정 의원은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의석을 갖고,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법안을 내면서, 우리가 가장 진보적이라 자위하는 정치는 필요 없다”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수구 기득권 정치 세력이 진보 정치를 폄하할 때 썼던 전형적인 말이다. 그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의석’을 가지기 위해서 20년, 길게는 75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흘려졌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시민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약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면, 그 앞에 진보 정치의 앞걸음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17대 때 민주노동당이 9석이라 법안을 발의하기에는 한 석이 모자랐다. 그때 임종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진보정당과 내 생각이 같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입법권이 나의 정치적 소신보다 중요하다”라며 민주노동당 법안에는 무조건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두고두고 감사한 헌신이다. (류 의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사람들이 탈당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결국 제3정당으로서 미래를 열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정의당에서 출발했던 유능한 당직자들이 이제는 50대인데 여전히 기회를 얻지 못한 상태다. 선거법을 바꿔도 결국은 6석밖에 안 된다는 좌절이 당을 휩싸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당의 미래를 열어내는 데 실패했다.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후과도 컸다. 내가 1세대 리더로서 소임을 완수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도 늘 부채감이 짓누른다.

결국 선거제 개편이 핵심인가? 이번 신간에도 “선거제도 개편 없이 양당 체제를 넘어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라고 썼다.

‘선거제만 바꾼다고 되나? 진보 정치의 효능감을 보여줘야지’ 하는 비난과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밤낮없이 최선을 다했다. 당원들은 박봉을 쪼개서 후원하고 연차를 끌어 모아 캠페인에 나섰다. 출마자는 전세보증금을 빼서 선거 기탁금으로 썼다. 당원·당직자들의 그런 눈물 나는 노력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양당 체제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다당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정의당이 아니어도 좋다. 선거제도가 소수당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할 것인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성정당이라는 꼼수 때문에 문제였다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는 건 아예 제도적 퇴행이다. 민주화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당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병립형으로 가서도 안 되고, 위성정당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1월17일 과 인터뷰하는 도중 의원실 벽면에 걸린 '우공이산' 액자를 가리키는 심상정 의원. ⓒ시사IN 조남진
1월17일 〈시사IN〉과 인터뷰하는 도중 의원실 벽면에 걸린 ‘우공이산’ 액자를 가리키는 심상정 의원. ⓒ시사IN 조남진

그렇다면 왜 정의당에 표를 줘야 하는가?

절실한 분들과 함께할 정당은 여전히 필요하고, 힘을 가져야 한다. 얼마 전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청년이 와서 축사를 해줬다. 그분이 대구 사람이라 국민의힘이 ‘모태 정당’이었다더라. “그런데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정당이 내가 적을 둔 정당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정의당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준 유일한 정당이었다. 그래서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정의당에 가입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의당이 정치 공학적인 계산은 많이 부족할지라도,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도 싫고 민주당도 싫다’는 국민들에게 정의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퇴행이 이뤄졌다. 국민들은 개혁의 창끝 역할을 한 정의당을 기대했을 텐데 지난 3년간 정의당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흩어진 시간을 선명하게 정리해내고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의당에게는 20년 동안 많은 부침 속에서도 버텨왔던 저력과 소명 의식이 있다. 분명 국민들도 정의당이 먼저 다가와서 손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서의 목표는?

수량적인 목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준연동형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정의당이 해온 성과이고 앞으로도 책임져야 할 몫이지만, 지금 우리 당 상황으로 볼 때 ‘병립형이냐, 준연동형이냐’가 이번 총선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의당 스스로 지지율을 회복하고 일어서는 과정에 이번 총선의 성과가 달려 있다. 당원들에게 영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 배우가 했던 말을 들려드리고 싶다. “너무 오래 닫혀 있어서 벽인 줄 알았는데 문이었다”라는. 여전히 정의당을 믿고 함께해주는 당원들, 시민들과 다당제 민주주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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