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마지막은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수경사령관)이 보안사 서빙고실에서 조사받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그날 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12월13일 새벽 4시30분 쿠데타군에게 체포되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되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등 반란군들이 샴페인을 터트릴 때 장태완은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를 받던 장태완은 실패한 진압 작전이었지만 잊기 전에 그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보안사 수사관들이 식사하러 나간 틈을 이용해 장태완은 조서 용지에 그날 밤 10시간 작전 일지를 메모 형태로 작성했습니다(사진). 전두환이 초청한 만찬에 참여한 1979년 12월12일 오후 6시30분부터 반란 진압 진영이 무너져 자신이 체포된 이튿날 새벽 4시30분까지의 10시간을 분 단위로 기록했습니다. 장태완은 이 메모가 담긴 조서를 몰래 간직했습니다. 이 메모를 바탕으로 그날 밤 10시간의 ‘반란 진압 실패 육필 수기’를 썼습니다.

1993년 전두환의 친구이자 ‘믿어 주세요’를 외친 노태우가 대통령에서 물러나자, 12·12를 비롯한 역사 되돌아보기 움직임이 일기 시작합니다. 기자 정희상은 그날 밤 반란군에 맞서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려 했던 진압군을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희상은 장태완을 찾습니다. 장태완은 그날 밤 조서 용지에 쓴 이 작전 일지를 13년간 비밀리에 보관해 오다 기자 정희상에게 넘깁니다.

1993년 5월13일자, 원 〈시사저널〉 기자였던 정희상은  ‘단독입수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 작전 실패 육필 10시간 수기 “반란군을 진압하라”’ 특종 기사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당시만 해도 12·12는 성공한 쿠데타로 ‘쿠데타’라고, ‘반란’이라고 규정도 되지 않았던 때, 기자 정희상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객관적 증인과 증거인 ‘반란 진압 실패 육필 수기’를 최초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다, 조서 용지에 몰래 쓴 ‘반란 진압 작전일지’.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다, 조서 용지에 몰래 쓴 ‘반란 진압 작전일지’.

이 수기는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를 반란 수괴 등 혐의로 형사 처벌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입니다(〈시사IN〉 제485호 ‘역모 와중에 국방부장관은 8시간 연락 두절…“이게 나라냐”’ 기사 참조).

정희상 기자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인 김오랑 소령의 삶도 추적한 바 있습니다(〈시사IN〉 제639호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스러져간 군인 김오랑’ 기사 참조).

‘minju518’. 정희상 시사IN 기자의 이 메일 주소입니다. 기자 정희상은 고등학생이었던 1980년 5월 학살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세대 청춘이 그렇듯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려 했고, 정통 사회부 기자가 되었습니다. 탐사 보도 기자로 외길을 걸어온 정 기자의 취재 수첩 목록에는 늘 ‘5·18’, 그리고 전두환이 올라 있었습니다.

12월1일 금요일 저녁 8시 시사IN 유튜브 [금요시사회]에서 기자 정희상의 12·12 쿠데타 30년 취재기가 방송됩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담지 못했던 생생한 팩트를 날 것 그대로 풀어냅니다.

제작진

프로듀서 : 최한솔 PD, 김세욱·이한울 PD(수습)
진행 : 장일호 기자
출연 : 정희상 기자 

기자명 장일호 기자·최한솔 PD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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