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 등장하는 미나토와 요리는 같은 반이다.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괴물〉에 등장하는 미나토와 요리는 같은 반이다.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아직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대형 스크린에 등장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뒤 11월 개봉한 그의 신작 〈괴물〉 시사회 자리였다. 유선 이어폰을 낀 고레에다 감독이 도쿄에서 화상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괴물은 누구게?” 극 중 두 아이가 함께 외우던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관객을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괴물〉의 상영이 시작된 지 10여 분, 마치 2023년 한국을 예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 운동화를 잃어버리거나 물통에 물 대신 흙을 담거나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들 미나토에게 의문을 품은 싱글맘 사오리는 미나토가 담임교사인 호리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오리의 방문을 시작으로, 학교 공간이 영화의 중심에 놓인다. 학교에서 만난 교사, 교장, 아이들이 교차하고 엇갈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초반, 관객은 엄마 사오리처럼 답답한 심정이 된다.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교사 호리도 의심스럽고,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덮어두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다른 교사들도 못마땅하다. 얼마 전 사고로 손녀를 잃은 교장은 기계적인 멘트를 반복하는데,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미나토와 같은 반인 요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에서 엄마 역할을 맡아 찬사를 받은 안도 사쿠라 배우가 사오리 역을 맡아 초반, 감정의 길잡이 구실을 한다. 감독이 “밑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배우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기로 유명한 감독의 이력을 떠올리면 교육 현장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쩐지 불편한 진실이 펼쳐질 것만 같다. 그래서 괴물은 누구인가? 어딘지 불손해 보이는 호리 선생인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교장인가, 계속해서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 사오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집에선 다정하고 눈물이 많은 미나토인가? 괴물을 찾는 데 집중하는 사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구상은 2018년으로 거슬러간다. 고레에다 감독이 사카모토 유지가 쓴 각본으로 연출을 제안받았다. 사카모토 유지는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을 쓴 일본의 대표적 각본가다. 평소 감독은 그의 작품을 보며 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관심사의 방향이 가깝다고 느껴왔다. 줄거리도 읽지 않고, 하기로 결정했다.

각본을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절대 쓸 수 없는 플롯”이었다. “플롯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무엇이 일어나고는 있는데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임선생이 나쁜가, 어머니가 나쁜가, 괴물은 누구지? 나도 모르게 괴물 찾기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극 중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읽으며 화살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생각했던 것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에서 엄마 역을 맡아 찬사를 받은 안도 사쿠라 배우가 〈괴물〉에서도 엄마를 연기했다. ⓒ호호호비치 제공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에서 엄마 역을 맡아 찬사를 받은 안도 사쿠라 배우가 〈괴물〉에서도 엄마를 연기했다. ⓒ호호호비치 제공

3년 동안 작가와 의견을 교환하며 각본을 고쳐나갔다. 그가 보기에 사카모토 유지는 사람을 괴롭히는 각본가다. “일상 묘사를 겹겹이 쌓아가다가 그게 어떤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내가 쓰는 각본의 특징이다. 묘사가 먼저 들어가고 스토리는 나중에 나온다. 유지는 처음부터 플롯 안에서의 스토리텔링이 뛰어났다. 스토리텔링 자체가 사람을 ‘미스리드(오인하게)’한다. 이쪽으로 데리고 가서 착각하게 만들고 또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게 아닌가 싶게 만든다. 생각을 왔다 갔다 하게 하면서 갖고 노는 면이 있다.” 〈괴물〉은 제76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는 3장으로 구성된다. 같은 이야기를 처음에는 엄마의 시선으로, 다음에는 교사의 시선으로 다룬다. 3장에서야 아이들의 세계가 등장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이들의 세계를 나에게 맡기고 싶어 연출을 제안했다는 걸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도심 아파트에 방치된 아이들을 소재로 한 〈아무도 모른다〉를 촬영할 당시 배우에게 대본을 주지 않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면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식이었다. “그때는 순간순간 그 장소에 아이들이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복잡하고 단순하지 않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대사를 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가해자는 누구인가?

등장인물을 단죄하거나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없다. 인물은 어느 곳에서는 피해자고, 어느 곳에서는 가해자가 되길 반복한다. 그가 연출한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에서도 도둑질로 생계를 연명하며 아이를 ‘주워다’ 키우는 비혈연 가족이 등장하지만 악인은 없다. 그래서 감독이 보기에 ‘괴물은 누구인가?’ 고레에다 감독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괴물이 나였구나’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을 거라고 본다. 화살을 돌리다 마지막에 그 화살이 나에게 되돌아오는 구조라는 점에서 각본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굳이 괴물을 찾자면 우리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학급 안에서 계속 등장하는 ‘부추기는 아이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평범한 말이지만 걸리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일반적이다, 남자답다’ 같은 말들이다. 가령 사오리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약속했다며 아들이 일반적인 가정을 꾸릴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상처 주기 위해 쓰는 말이 아니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듣는 소년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누구도 가해를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해를 입게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영화에서 중요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건 극 중 교사나 어머니뿐 아니라 관객석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감독은 본인의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이렇게 썼다. “영화를 본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 그 사람의 일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거나 일상을 비평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괴물〉은 정확히 그런 영화다.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6번째 장편영화다. ⓒ호호호비치 제공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6번째 장편영화다. ⓒ호호호비치 제공

고레에다 감독의 16번째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1995년 〈환상의 빛〉으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예나 지금이나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 감독은 1987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연출 일을 시작해 일본 사회 교육과 복지행정의 문제점, 재일 한국인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뤄왔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극영화도 여러 편 만들었다. 1988년 도쿄도 도시마구에서 일어난 네 아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각본을 쓴 〈아무도 모른다〉와 1960년대 신생아가 뒤바뀌는 사건이 줄곧 발생한 데서 영감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마찬가지다.

〈괴물〉은 철저히 픽션이지만 어쩐지 있음직한 일을 다룬다. 그만큼 일상적인 공간과 인물이 공기처럼 영화를 채운다. 감독 스스로 자신의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에 대해 ‘촬영 세트장에서 은막의 스타를 찍기보다는 실제 길거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다큐멘터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 부분이다.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걷는 듯 천천히〉 중).’ 이번 영화에서도 그 부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는 여전하다.`

교장과 미나토가 함께 관악기를 부는 장면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 ‘아쿠아’가 깔리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고레에다 감독은 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깊이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직접 말한 영화 소개 일부다. “일본의 작은 마을에 있는 아주 작은 학교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다. 하지만 일본의 어느 작은 곳에서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아마 전 세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일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그린 영화로 인식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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