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에 대한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다. 사람들의 관심도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에는 저금리에 힘입어 투자 붐이 일기도 했다. 갖가지 일확천금 이야기가 일상을 자극했고, 욕망을 건드리는 서사가 넘쳤다. 누구나 쉽게 돈을 불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겪으며 우리는 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금리인상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자극받은 욕망은 리스크로 변해갔다. 물가상승과 부채로 인한 부담은 점점 커진다. 뒤늦게 우리는 막상 돈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다는 점을 깨닫는다. 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 교육받아본 경험이 드물다. 대다수 사람들은 돈을 시스템 바깥에서, 가정이나 직장과 같은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배운다. 경제와 금융에 대한 교육이 공적 시스템에서 외면받을수록, 개인의 경제·금융 역량은 철저히 ‘주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릴수록 더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배경에 따른 격차는 생애 전반에 차곡차곡 누적된다. 격차를 더 벌린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이해력(Financial Literacy)이 화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팬데믹 셧다운 같은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개인이 대응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이 나서야 한다는 접근이다. 이때 필요한 능력은 단순한 금융 지식(Knowledge)과 다르다. 학계에서는 금융 이해력을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설명한다. 복리가 왜 중요한지, ‘월 이자 2%’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고리대인지, 계약에서 약관을 살펴보는 게 어째서 필수적인지 등을 개인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잘 아는 것을 넘어, 최근에는 금융에 대한 태도(Attitude)와 개인의 금융 행동(Behavior)까지 포괄해 전반적인 금융 역량(Capability)을 중요시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런 역량을 갖춰 생애 전반에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금융 웰빙(Well-being)이 정책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금융 이해력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의 금융 역량까지, 개인이 금융에 대응하는 힘을 갖추기 위해 공공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각종 금융 교육 정책부터 실제 교육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펴봤다. 한국보다 조금 더 일찍 금융 교육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미국과 영국을 찾아 이들이 먼저 겪은 경험과 고민을 들여다봤다. 〈시사IN〉은 2주에 걸쳐 금융 교육을 확대한 다양한 사례와 우리에게 필요한 다양한 논점을 소개한다. 먼저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뒤이어 다음 주에는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금융 교육 확대 논의를 살펴볼 예정이다.

여기 등장하는 이야기는 ‘부자가 되는 법’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돈과 관련된 대응력을 갖추기 위해, 공공이 고심하고 논의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특히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한국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돈에 관한 교육’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금융 교육은 끊어진 부의 사다리를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돈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이 한 사회의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머니 하우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5일간 진행된 훈련 코스를 마치고 이수증을 받고 있다. ⓒMyBNK
머니 하우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5일간 진행된 훈련 코스를 마치고 이수증을 받고 있다. ⓒMyBNK

영국 런던은 ‘동서 격차’가 큰 도시다. 런던 서쪽은 노팅힐, 첼시, 켄싱턴처럼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부유한 동네가 많다. 반면 런던 동부에 위치한 뉴엄이나 타워햄릿 지역은 서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일찌감치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뉴엄에서 자란 제리 듀링 씨는 2000년대 초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업에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듀링 씨의 아버지는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신용카드에 의존했고, 은행에서 집을 압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집 안 공기를 짓눌렀다. 당시 그의 나이는 한참 예민한 열여섯 살이었다.

듀링 씨는 당시 두 가지가 아버지의 삶을 지탱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본인을 포함한 가족의 신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역 자선단체 소속 재무 전문가의 자문이었다. 이때 만난 전문가의 자문과 부채 감축 전략 덕분에 그의 아버지는 빚을 줄이고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 이때 한 경험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십수 년이 지나 재무 상담 전문가가 된 듀링 씨는 고향인 뉴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머니(Money) A+E’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A는 자문(Advice)을, E는 교육(Education)을 뜻했다. 머니 A+E는 재정 문제를 겪는 사람들, 이주민 커뮤니티,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과 자문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로 성장했다.

영국 런던은 세계 금융허브 중 한 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인 런던에는 지금도 수많은 이주민이 모여들고 있다. 최근 런던은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유럽과의 연결고리가 무너지면서 금융 도시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수십 년간 영미식 자유시장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서, 영국 전역에서 부의 양극화 역시 확대됐다. 양극화된 세계에서 이주민들을 비롯한 취약계층은 경제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완화해줄 안전망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충격이 찾아왔다. 이 쇼크가 팬데믹이라는 형태로 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도시 런던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봉쇄 기간에 취약계층의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영국 최대 푸드뱅크(무료 식품 배급)를 운영 중인 트러셀 재단(Trussell Trust)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푸드뱅크 이용자가 25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빈곤아동 지원 단체인 CPAG의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계층 10가구 중 6가구가 팬데믹으로 인해 식료품, 공과금, 임차료 등 필수 지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봉쇄가 풀리고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지만,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022년 11월 전년 동기 대비 11.1%까지 치솟으며 정점을 찍고, 지금도 6%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취약계층에게는 2차 충격이다. 트러셀 재단의 푸드뱅크 이용자는 리오프닝 이후 잠시 감소했다가 최근(2022년 하반기~2023년 상반기) 이용자가 300만명 수준까지 치솟았다. 팬데믹 때보다 많은 수치다. 제리 듀링 씨와 머니 A+E는 팬데믹과 뒤이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자문과 교육이 필요한 이들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졌다. 머니 A+E를 비롯한 각종 금융 교육 자선단체와 비영리단체도 2010년대 들어 늘어났다. 국가의 금융 교육 전략 수립과 학교 금융 교육 확대, 다양한 교육단체의 탄생, 그리고 이들에 대한 민간 금융기관의 지원 등이 지난 10여 년간 뒤따랐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 교육

그러나 아직 금융에 대한 이해력(Literacy)과 역량(Capability)을 높이기 위한 각종 지원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갔다고 보긴 어렵다. 구성원들의 금융 역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동의하지만, 금융 교육을 누가 어떻게 제공할지, 여기에 들어가는 자원은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국 사회에서 금융 교육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이 미처 자리 잡히기도 전에 브렉시트와 팬데믹이 연이어 발생했다.

제리 듀링 씨를 비롯해 영국에서 만난 금융 교육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취약계층(vulnerable)’에 대한 금융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돈에 대해 배우겠다’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돈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팬데믹은 이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그래서 취약계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고, 이들을 찾아낼 수 있는 ‘연결고리’가 중요했다.

듀링 씨는 이 때문에 지역 커뮤니티(지역사회, 또는 인종 및 민족 공동체)에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영국 사회에 안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수록 국가 시스템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침묵 속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단체나 커뮤니티, 가령 이민자나 종교 그룹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금융 교육과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제리 듀링 머니 A+E 대표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김동인
제리 듀링 머니 A+E 대표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김동인

머니 A+E는 지난 4년 동안 약 3000명에게 금융 교육·자문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1년 처음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머니 A+E의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들이 2만명에 달한다. 22명이 일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이지만, 정규직 직원 외에도 자원활동가와 프리랜서 트레이너들이 프로그램을 함께 이끌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전체 직원의 3분의 2가 듀링 씨와 마찬가지로 금융과 관련된 어려움을 한 번쯤 겪었다는 점이다. 그는 동료 직원을 한 명 콕 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과 상담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공감(Empathy)이다. 동정(Sympathy)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원을 뽑을 때에도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프레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금융 교육을 받은 이후 자원활동가와 프리랜서 트레이너를 거쳐 매니저가 되었고, 지금은 우리 단체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 조언을 들을 때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머니 A+E 외에도 영국에는 금융 교육을 전담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서로 집중하는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급적 어릴 적부터 금융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런던 쇼디치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마이뱅크(MyBNK)’도 영국에서 손꼽히는 금융 교육 단체다. 청소년과 20대 초반 청년(Young Adult) 금융 교육에 집중하는 마이뱅크는 금융 교육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연구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금융 역량, 각종 금융 위기가 청년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한다. 연령별 금융 교육 수업 교재를 제작·배포하고, 학교 현장을 찾아다니며 금융 공교육의 공백을 채워간다.

마이뱅크에서 특히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머니 하우스’ 프로그램이다. 머니 하우스는 ‘청년 노숙인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영국에서 청년들은 대체로 18세까지 의무교육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집을 구해 자립한다. 그러나 학교 교육은 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이행해야 할 공과금 납부, 세금 납부, 임대차 계약, 계좌 개설, 예산 수립 등을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다. 사회인으로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친 채 사회로 나온 청년들은 금세 노숙인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머니 하우스는 이들을 대상으로 ‘자립하는 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10월24일에 〈시사IN〉과 만난 크리스티안 앤턴 마이뱅크 선임 매니저는 특히 ‘케어리버(Care Leaver)’에게 이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보호 종료 청소년을 뜻하는 케어리버는 한국의 자립준비청년과 비슷하다. 앤턴은 “지역마다 이들 케어리버의 사정이 다르다. 집을 구하면 다행이지만, 돈이 부족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게 좋은 것도 아니다. 서로 다툼이 일어나서 결국 누군가 쫓겨나면 노숙인 신세가 된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안 앤턴 마이뱅크 선임 매니저는 “금융 교육의 목표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사IN 김동인
크리스티안 앤턴 마이뱅크 선임 매니저는 “금융 교육의 목표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사IN 김동인

10년째에 접어든 머니 하우스 프로그램은 이들 초기 청년들에게 삶의 기본 기술부터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둔다.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은행 계좌를 어떻게 개설하고 저축과 빚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체감한 몇몇 자치구(Borough)들은 이제 막 자립하는 10대 후반 청년들에게 머니 하우스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수강하게 하고 있다. 런던 그리니치 자치구에서 머니 하우스 트레이너로 일하는 웨인 조던 씨는 수강생들의 반응도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단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중도 탈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린 친구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금융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자율적으로 배운 내용을 훗날에도 확장해가려는 의지를 갖게 하고, 재정적으로 성장하려는 마인드를 갖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

또 다른 단체인 스위치백(Switchback)은 재소자의 재사회화 과정에서 금융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이 단체의 CEO가 된 시언 윌리엄스 씨는 금융 교육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인물이다. 외교관으로 오래 일했던 윌리엄스 씨는 홍콩에 머물던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를 목격하며 금융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그는 노벨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설립자)의 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고 포용적인 금융(취약계층을 위한 적정 금리의 금융 제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3년 영국으로 돌아온 윌리엄스 씨는 금융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 사회에서도 양극화에 따른 금융 취약계층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그는 영국 내에서 금융 교육과 포용적인 금융 확대를 주장하며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현재 윌리엄스 씨가 대표를 맡은 스위치백도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겪는 각종 경제적 어려움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는 “몇 개월 감옥에 다녀온 사람은 몰라도, 어렸을 때 죄를 지어 몇 년간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세금, 교통, 임대차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모른다. 그래서 이들에게 금융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금융 이해력을 갖추고 사회에 안착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머니 A+E부터 스위치백까지, 각 단체들은 제도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공백’과 ‘빈틈’에 집중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공공 시스템이 보다 탄탄하고 광범위하게 금융 이해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틈’을 더 줄이자는 것이다. 특히 학교교육에서 어릴 적부터 금융 교육이 확대·의무화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이들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 금융 교육 확대의 걸림돌

영국은 2014년부터 학교 금융 교육이 시행되었다. 금융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영국에는 PSHE라는 과목이 있다. 개인(Personal), 사회(Society), 건강(Health), 경제(Economic) 교육을 합친 과목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이 과목에서 다루는 주제는 광범위하다. 마약이 어째서 위험한지, 정신 건강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맺는 법, 미디어 리터러시, 노동자의 권리 등을 혼합 또는 선별해 가르친다. 금융 교육은 이 과목의 여러 섹터 중 하나다. 가령 ‘돈이란 무엇인가’를 2학년(6세)에, ‘돈에 대한 태도’를 6학년(10세)에, 빚과 도박의 위험성은 10학년(14세)에 배우는 식이다. 장단점이 있다. 가령 정신 건강이 취약한 이들 중 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겪는다. 개인에게 돈과 관련한 문제는 노동과 진로, 그리고 건강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제들을 융합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은 PSHE만의 특장점이다.

그러나 현재 영국에서 PSHE를 통한 금융 교육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영국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첫 번째는 학교 금융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 영국 학교들이 PSHE를 학제에 편입해 운용하고 있지만, 학교마다 PSHE에서 다루는 내용을 자율적으로 구성한다. PSHE 커리큘럼에서도 필수인 것과 필수가 아닌 것으로 나뉜다. 대표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금융 교육, 진로 교육 분야는 필수 교육 분야에서 빠진다. 20년 넘게 교단에 섰고, 지금은 영국 PSHE 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제니 바크스필드 씨는 〈시사IN〉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마다 금융 교육 시행 여부가 다르다. 사립학교(영국 전체 학교의 7%)는 PSHE를 필수로 지정하지만 공립은 필수가 아니다. PSHE 과목에서도 약 75~80% 커리큘럼만 필수다. 이때 금융 교육은 빠진다. 교육 시수도 평균 주 1시간 정도다.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란다.” 결국 학교에서 금융 교육을 배우는지 여부는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된다.

머니 A+E의 듀링 씨는 “적어도 GCSE 수준(10~11학년)에서는 금융 교육이 필수 과목으로 다뤄져야 한다. 쥐 해부를 과학 시간에 배우는데 이게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기술은 아니지 않나. 반면 금융은 우리 일상에서 꼭 필요한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커리큘럼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스위치백의 시언 윌리엄스 씨도 “학교에서 (PSHE 외에) 금융 교육을 추가적으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대부분 금융기관의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금융 이해력을 높이려는 노력은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제공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커리큘럼에 포함했다’는 데에서 그칠 게 아니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금융 교육을 공공의 관점에서 확대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2년 3월30일,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던 리시 수낵 총리가 노스요크셔주 노샐러튼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이뱅크가 진행하는 금융 수업에 참여했다. ⓒMyBNK
2022년 3월30일,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던 리시 수낵 총리가 노스요크셔주 노샐러튼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이뱅크가 진행하는 금융 수업에 참여했다. ⓒMyBNK

학교 금융 교육이 처한 두 번째 문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은 기존 PSHE 교사들을 재교육하는 방식으로 금융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바크스필드 부회장은 “교과 범주가 너무 넓다 보니 교사들도 이 교과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하기 힘들어하고, 자신감도 결여되어 있다. 일부 교사들은 자신들이 금융 이해력 분야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금융 수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이뱅크의 크리스티안 앤턴 선임 매니저도 “정부에서 커리큘럼은 만들었지만,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로드맵이나 펀딩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어떻게(How)’가 빠져 있어 우리가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학교 금융 교육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개별 교사들의 역량에 따라 교육 이후 금융 이해력의 편차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교사 역량 문제’는 결국 자원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와 결부된다. 교사들을 충분히 교육하거나, 전문 교사를 채용할 재정적 여력이 있어야 금융 교육의 양과 질 모두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학교 교육에 금융 교육을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겪은 시행착오에 따르면, 단순히 과목을 늘리고 교과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균질한 금융 교육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국을 벤치마킹하는 한국 금융 당국

국가 단위의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금융 교육 확대와 더불어, 영국에서는 금융 이해력 증진을 위한 국가 전략이 수립되어 시행 중이다. 그 중심에는 경제 교육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MaPS(Money and Pension Service)가 있다. 노동연금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각종 금융과 연금 문제에 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2020년 MaPS는 금융 교육을 확대하는 10개년 국가 전략을 수립했다. ‘금융 웰빙을 위한 영국 국가 전략(The UK Strategy for Financial Wellbeing)’이 그것이다. 금융 교육을 일종의 장기적인 국가 전략으로 확립하고, 2030년까지 이행할 정책 목표를 명확히 했다. 이 전략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받는 청년·청소년 인구를 2020년 480만명에서 2030년 680만명으로 200만명 늘리려 한다.

영국 MaPS가 발표한 ‘금융 웰빙을 위한 영국 국가 전략’ 보고서 표지.ⓒMaPS
영국 MaPS가 발표한 ‘금융 웰빙을 위한 영국 국가 전략’ 보고서 표지.ⓒMaPS

이 전략이 단순히 금융 이해력이나 역량에 그치지 않고, ‘금융 웰빙’을 지향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당초 영국 정부는 2015년에 수립한 ‘금융 역량 전략(Financial Capability Strategy)’에 따라 금융 교육을 확대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이 전략을 전면 수정해 ‘금융 역량’보다 포괄적인 ‘금융 웰빙’을 우선시한다. 금융 교육을 받는 청소년·청년을 늘리는 것처럼, 성인들 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저축하는 인구를 200만명 늘리고, 식료품 등 생필품 구입을 위해 신용카드와 같은 빚을 동원하는 사람을 200만명 줄이는 목표다. 영국인의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치려는 전략이다. 핵심은 개인의 재무건전성 확보다.

이같이 금융 교육을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삼으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을 우리 정부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금융위원회는 제2차 금융교육협의회를 열고 ‘금융소비자의 금융 웰빙 증진을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금융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는 영국의 사례를 들며 “금융 웰빙은 금융 역량 강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로 국가 주도의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 금융위가 놓치고 있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막상 영국에서는 MaPS의 활동과 이들이 내세우는 ‘전략과 목표치’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 보수 성향 싱크탱크로, 현 여당인 영국 보수당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회정의센터(CSJ)’는 지난해 6월 ‘온 더 머니(On The Money)’라는 금융 교육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사회정의센터는 10년간 금융 교육 수혜 대상을 200만명 늘리겠다는 MaPS의 목표치에 대해 “야망이 부족하다”라고 평가한다. 지나치게 낮은 목표치라는 것이다.

사회정의센터에서 부채 분야 책임연구원(Head of Debt)으로 일하는 매슈 그린우드 씨는 〈시사IN〉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MaPS의 국가 전략은) 방향만 제시해주고 있다. 전체 그림만 그리고 있어서 아쉽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 형성되는 ‘습관(Habit)’이다. 중등교육에서는 금융 교육이 상당히 보강되었지만 초등교육에서 보다 현실에 기반한 금융 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

메슈 그린우드 사회정의센터 부채 분야 책임연구원은 “어릴 때 형성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사IN 김동인
메슈 그린우드 사회정의센터 부채 분야 책임연구원은 “어릴 때 형성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사IN 김동인

MaPS는 ‘국가 전략’을 수립하기에 앞서 각계각층의 인사를 분과별로 모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앞서 소개한 머니 A+E나 마이뱅크 같은 금융 교육 단체들도 이 자리에 초청받아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머니 A+E를 대표해 전략 논의에 참여한 제리 듀링 씨는 금융 교육 확대를 위해 영국 정부가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듀링 씨는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목적이 바로 금융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인데, 이러한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 금융 역량이 중요하다고들 얘기하지만 팬데믹 이후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빚과 물가상승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MaPS의 국가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전략 논의에 초청받은 시언 윌리엄스 스위치백 대표 역시 “전략만으로는 안 된다. 자원(Resource)이 있어야 한다. 실제 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더 절실하다. 현재 MaPS는 조직은 커졌지만 정부 내에서 발언권이 약하다”라고 지적했다.

영국이 지난 10년 동안 겪은 과정은 한국 사회에 함의하는 바가 크다. 학교 금융 교육을 확대하더라도, 과감한 투자 없이는 교육의 양과 질을 충분히 담보할 수 없다. 국가가 금융 교육 전략을 수립하더라도 구체적인 로드맵과 정책 실현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단순 교육뿐 아니라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자문이 함께 이뤄져야 하고, 금융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을 공동체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금융 당국은 영국을 일종의 ‘성공한 사례’로 평가하며 내세우지만, 막상 이들이 겪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정책 당국이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번지르르한 전략이나 목표치가 아니다. ‘시행착오’라도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교육을 확대하고 정부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금융 교육 확대에서 영국 사회의 좌충우돌 경험을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 사회가 지난 10년간 겪은 시행착오는 한국 사회에도 의미 있는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기자명 런던·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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