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9일 청년 정치인 모임 ‘정치개혁 2050’은 ‘정치개혁·정당개혁 1000인 선언’을 발표했다.ⓒ시사IN 이명익
3월29일 청년 정치인 모임 ‘정치개혁 2050’은 ‘정치개혁·정당개혁 1000인 선언’을 발표했다.ⓒ시사IN 이명익

내년 총선에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 다시 출마한다면? 절반은 ‘뽑지 않겠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 여론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응답자 중 53.3%는 ‘다른 인물’을 뽑겠다고 답했다. 현역 의원을 찍겠다는 답변은 27.7%에 그쳤다(〈연합뉴스〉 의뢰로 10월7~8일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작 ‘다른 인물’ ‘새로운 인물’들은 선뜻 출마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아서다.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해야 한다(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제22대 총선 법정 선거구 확정기한은 지난 4월10일이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선거구는 결정되지 않았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의 기준으로 삼는 지역구, 비례대표 의석수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경기장(선거구)이 지어지고 규칙(선거제도)이 확정돼야 선수들이 거기에 맞춰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 기반 자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 신인이 선거에 출마하는 건 ‘맨땅에 헤딩’이랑 다를 게 없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중구남구 지역에 출마를 준비 중인 강사빈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의 말이다.

‘선거일 전 1년’이라는 법정 기한이 정해진 건 제19대 국회 때인 2015년 6월이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 획정이 지연됨에 따라, 선거관리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 주민의 반발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그 이후에도 국회는 선거구 확정기한을 지키지 않았다.

선거 6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던 제20대 총선 때는 선거 42일 전(2016년 3월2일)에야 선거구가 결정됐다. 제21대 총선 때는 선거를 39일(2020년 3월7일) 남기고서야 선거구를 확정했다. 이번에도 국회 논의가 늦어지자 9월11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 “국민의 참정권이 온전하게 보장되도록 국외 부재자신고 개시 1개월 전인 10월12일까지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비례제도 개편과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를 두고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개특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현재 원내대표 간 협상으로 넘어간 상태인데, 민주당 내부 여러 사정으로 신임 홍익표 원내대표가 오고 난 이후로는 전혀 진척이 없다. 정개특위 임기 마감(10월31일) 연장 건을 계기로 논의가 개시되겠지만 언제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획정위에 따르면, 당장 선거구별 주민등록인구가 획정 기준(선거구 간 인구 편차 2대 1 이내, 13만5521명 이상 27만1042명 이하)에 맞지 않아 재조정이 필요한 지역구가 30곳에 달한다. 서울 강동구갑과 부산 동래구, 인천 서구을, 경기 수원시무·평택시갑·평택시을·고양시을·고양시정 등 18곳이 인구 상한을 넘어 지역구가 쪼개질 수 있다. 부산 남구갑·남구을·사하구갑, 인천 연수구갑, 경기 광명시갑·동두천시연천군 등 11곳은 인구수 하한 미달로 선거구 규모를 늘려야 한다. 부산 북구강서구을은 부산 강서구가 인구 범위를 충족하면서 지역구를 아예 재조정하게 됐다.

2월13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2월13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현역 아니면, “보이기조차 어렵다”

선거구가 갑자기 변경되면, 선거는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다. 젊은 정치인 육성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는 “어느 지역으로 어떻게 출마해야 할지 결정하기에 상황이 불안정하다. 총선에 출마하려던 청년 정치인들이 갈피를 못 잡고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추후 어느 동네가 지역구에 포함되거나 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치 신인들이 선거 전략을 세우기조차 어려워한다는 설명이다. 출마를 망설이는 민주당 소속 한 청년 정치인은 “나도 그렇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청년들이 주변에 많다”라고 말했다.

선거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문턱은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이다. 도전자들은 “나를 알릴 기회가 없다” “사실상 정치활동을 막아뒀다”라고 토로한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을 정한 뒤(제59조), 기간을 어기고 사전 선거운동을 하면 처벌(제254조 제2항)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원칙적으로 선거일 120일 전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후에만, 제한된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유권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자신을 알려야 하는 처지지만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선거사무소를 차리거나 얼굴과 이름이 적힌 선거홍보용 현수막을 걸 수 없다(옥외광고물법상 당협·지역위원장만 정당 활동을 홍보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적은 정당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적극적 지지와 지원을 당부해서도 안 된다.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직접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전송 대행업체 위탁 전송 불가)를 보내는 정도에 그친다.

공직선거법이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해 정치 신인들이 꼼짝하지 못하는 사이, 현역 의원은 의정보고 활동(공직선거법 제111조)을 통해 유권자를 만날 수 있다. 도전자들은 현역 의원이 의정보고회를 열거나, 보고서, 인터넷, 문자메시지, 축사 등을 통해 의정을 보고하는 일이 “4년 내내 하는 선거운동”이라고 본다. 전국구 국회의원인 현역 비례대표 의원 중 몇 명은 최근 특정 지역구를 대상으로 의정활동 보고를 시작했다. 3년간 대구 중구남구 지역에서 활동해온 강사빈 상근부대변인은 “이제 선거 180일 전이 지나 명함은 직접 나눠줄 수 있게 됐지만,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 수시로 의정보고회를 열 수 있는 현직 국회의원들과는 압도적으로 인지도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갑에 도전하는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현역 의원이 아니면 유권자에게 존재감을 드러낼 방법이 제한된다고 말했다. “지역에 선거사무소가 있으면, 주민들에게 ‘이 동네에 저 사람이 있다’ ‘이 동네에 모여서 하려는 게 있다’라는 걸 눈에 띄게 드러낼 수 있다. 정치 신인들은 후보로 등록한 이후에야 선거사무소를 열고 유권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전까지는 보이기조차 어렵다.”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 따르면, 미국‧유럽 등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이나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제하지 않는다. 예컨대 선거기간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자신을 알리거나 본인이 응원하는 정치인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대신 총선거비용을 통제해 선거 공정성을 확보한다. 예외적으로 프랑스는 선거운동 기간을 두고 선거운동 방법에 비교적 상세한 제한 규정을 둔다. 일본도 한국과 유사하게 선거운동 기간과 방법을 엄격히 제한한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여러 유권자를 만나야 다양한 세력을 만들 수 있다. 그 방법이 제한돼 있다 보니, 청년 정치 신인은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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