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왼쪽)이 3월22일 선거제도 결의안을 가결시킨 후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할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해 〈시사IN〉이 실시한 국가기관 대상 신뢰도 조사에서 9개 기관 중 국회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그림 1〉 참조). 2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57.7%가 정수 확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찬성은 29.1%). 국회의원들도 의원 정수 확대를 두고 반대 여론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시사IN 최예린
ⓒ시사IN 최예린

공직선거법 개정을 두고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참석하는 ‘전원위원회(전원위)’에서 3월30일부터 2주간 토론에 돌입한다. 국회의원 공론화 작업을 거쳐 선거제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정개특위가 토론의 기반이 될 여러 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결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회의원 수가 늘어날까? 현재까지는 ‘아니다’에 가깝다. 3월22일 정개특위에서 통과한 결의안 3개 모두 국회의원 수를 지금과 같이 300명으로 유지하는 내용이 담겼다(〈그림 2〉 참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애초 정개특위가 고려하던 3개 안 중 2개 안에 국회의원 수 ‘50명 확대’가 포함돼 있었다. 국민 반대를 우려해 국회의원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정수 확대’ 논의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는 의원 수를 늘려 비례 의석을 현행 47석에서 97석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월17일 여야 정개특위 위원들도 자문위 안을 중심으로 전원위에서 논의를 이어가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닷새 뒤인 3월22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돌연 결의안 내용이 ‘정수 유지’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거제도 개편 시도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켜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리기 위해서다. ⓒ시사IN 신선영
선거제도 개편 시도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켜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리기 위해서다. ⓒ시사IN 신선영

우선, 자문위에서 어쩌다 ‘국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는지 살펴보자. 3월17일 정개특위는 자문위에서 제안한 세 가지 안을 일부 수정해 최초 결의안을 마련했다. 세 안 모두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가 핵심이다.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늘리기 위해 의원 정수를 확대하거나(1안과 2안), 지역구 의석을 일부 줄여 그만큼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겠다(3안)는 계획이다.

선거제를 개편하려는 이유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켜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리기 위해서다. 자문위 소속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양극화된 정치를 깨기 위해 비례대표 숫자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매우 적대적인 정치를 벗어나, 중재하고 타협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를 하려면 제3세력의 출현이 필요하다. 지역구(소선거구제)에만 의존해서는 두 정당의 양극화된 구도를 깨기 어렵다. 국회의원(비례대표)을 늘려야 한다.”

자문위가 ‘정수 확대’ 제안한 까닭

‘지방 소멸’ 문제를 정치적 대표성을 보완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도 컸다. 자문위 소속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의 말이다. “수도권의 인구집중이 심해지면서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는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국회의원(253석)의 절반 가까이(121석)가 수도권에서 나온다. 지방이나 농어촌에 발언권을 주는 문제는 지역구로는 안 되고, 권역별 비례대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는 권역별 비례대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 규모가 지금보다 늘어야 한다.”

정개특위에서 3월17일 여야 합의로 ‘정수 확대’를 논의 대상에 올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다. “고질병처럼 도지는 ‘국회 밥그릇 챙기기’(조경태 의원)”, “여당에서 (정수 확대를) 합의한다면 지도부 퇴진 운동도 불사해야 한다(홍준표 대구시장)”. 국민의힘 지도부도 강경하게 반대하며 애초 합의를 뒤집었다. 정수 확대가 결의안에 담기면 전원위원회를 거부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의원 정수 확대에 소극적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정수 유지’에서 접점을 찾았다.

강원택 교수는 “국회에서 논의도 하기 전에 정수 확대가 안 된다는 건 국민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거 아니냐. 국회의원들이 기득권부터 내려놓으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온갖 나쁜 모습 다 보여서 정수 확대에 대한 반대 여론을 만들어놓고, 그걸 핑계로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150석으로 같게 해 300석을 유지하는 안이다. 지난 국회 정개특위 위원이었던 김종민 의원은 당시에도 정수 확대 얘기가 나오자 논의가 거기서 멈췄다고 말했다.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조경태나 홍준표 같은 사람들의 선동을 막을 수 없다. 비례성을 높이려면 정수를 확대하든지 지역구를 줄이든지 둘 중 하나다. 정수 확대는 국민이 반대하고, 지역구 축소는 의원이 반대한다. 의원이 반대하는 걸 선택하는 게 맞다.”

자문위는 몰랐을까? 자문위는 왜 지역구 의석을 그대로 둔 채 비례 의석을 늘렸을까? 선거제에 이해관계가 얽힌 현역 의원을 향한 불신 때문이다. 강원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문위 입장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이야기는 ‘200석(지역구), 100석(비례) 하자’라는 거다. 이렇게 하면 국민들도 (선거제 개혁에)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현역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줄이겠나. 지역구 한 석을 줄이기도 어렵다. 지역구를 줄이겠다는 건 선거제 개혁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300명(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시사IN 이명익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300명(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시사IN 이명익

현역 의원 사이에서도 정수 확대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을 30명 늘리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지역구 220석+비례대표 110석)을 발의했다. 김영배 의원은 “의석을 늘리기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 예산을 늘리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지역구 의석을 줄이면 정수를 늘릴 수 있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정수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기준 국회의원 세비는(수당+경비) 연간 1억5500만원 수준이다.

국민의힘 의원 일부도 정수 확대에 동의한다. 문제는 양당 모두 앞에 나서서 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의원이 없다는 점이다. 정개특위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국회의원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런데 국민이 의원 늘리는 걸 허락해주나. 절대 안 된다. 국회의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회가 신뢰를 얻은 다음에야 증원한다고 해야지, 지금 의원 정수 확대를 얘기하는 건 자기 밥그릇 챙기기로밖에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300명(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발간한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 연구’에는 OECD 국가 의원 1명당 인구수(2022년, 양원제 국가에선 하원의원 수 기준)가 나와 있다. 한국의 의원 1명당 인구수는 약 17만명으로 미국(63만명), 멕시코(21만명), 일본(18만명)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OECD 국가의 의원 1인당 인구수 평균은 약 8만명인데, 이 경우 한국은 대략 의원 642명이 필요하다.

정개특위 소속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 증원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의사 단체가 정원을 늘리려고 할 때마다 결사반대하는 이유가 뭐겠나. 정원이 늘어나면 기득권이 줄어든다.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면, 권한이 분산되고 약해진다. 국민이 국회의원 만나기도 쉬워진다. 그런데 국민 감정은 거꾸로 가면서 여론이 선동적으로 흘러간다. 누가 나서서 돌 맞아가며 정수 확대를 주장하겠나.”

정개특위 소속 양당 의원들은 ‘정수 확대’의 불씨가 다 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결의안은 전원위 토론의 소재로 올리는 것뿐이다. 우리 당 의원들은 의석의 동결‧감원을 주장할 거고, 민주당에서 증원 얘기하는 의원들도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현재 결의안 내용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원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우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정개특위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심 의원은 바뀐 정개특위 결의안을 두고 “전원위의 취지는 모든 쟁점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해 협상안을 만드는 것이다. 양당 지도부가 의원 정수에 대해 의원들의 토론을 사실상 봉쇄했다”라고 비판했다.

선거제 개혁의 다음 순서는 전원위다. 전원위에 출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중지를 모으는 건 국회의원 300명 모두의 몫이다. 박원호 교수는 이렇게 당부했다. “누구나 쉽게 ‘하는 일도 없는 국회의원 확대에 반대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 용기 있는 건 사람들이 싫어하더라도,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의원 정수를 확대하지 않는 방식의 선거제 개혁은 지금의 양당 체제를 온존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의원들이 정수 확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자기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